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MBTI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유형과 특성을 나눠 설명하길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검사이자 이젠 자기소개 시간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은 대화 소재다. 나의 MBTI는 ISFP인데, 좋고 나쁘다는 기준이 상대적이라고 해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이는 유형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내 MBTI 유형을 몰랐다. 검사는 해 봤지만 굳이 그 결과를 외우지 않고 바로 잊어버렸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MBTI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때 결과를 저장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이 ‘나’라는 사람을 향한 관심으로 물었던 건지 16가지 알파벳 조합과의 일치를 찾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 보면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성격 유형을 사람을 판단하거나 구분하는 잣대로 삼는 것이 반갑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분법적 가정으로 나의 행위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MBTI 검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와 맞는 MBTI 궁합’이라는 창이 뜬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궁합이 맞는 사람을 대화나 행동이 아니라 성격 유형만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 어이없었고, 이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점에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기업 면접에서도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면접관은 지원자에게 MBTI를 묻고, 지원자는 기업에서 선호하는 유형을 대답한다. 기업 측은 그저 긴장 풀기용 질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지원자들은 내향형에 감정형 인간이라는 이유로 혹여나 감점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특정 MBTI를 가지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더 나은 인간상에 자신을 맞추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자기애는 찾아볼 수 없다.
ISFP. 말 그대로 풀이해 보자면 내향적이며 현실적이지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인간이다. 긍정적인 요소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인 인지 능력이지만 상상력이나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로 그마저도 반박된다. 나는 모두에게 MBTI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거만하게 표현하자면 16가지 유형으로 설명될 정도로 내 성격은 단순하지 않다. 이는 모든 이에게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능한 고유의 특성이다.
처음 나를 마주한다면 내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조용한 상황을 불편해하며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질문을 꺼낸다.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을 알기에 먼저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 스리슬쩍 종적을 감추거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내향성을 지녔을 뿐이다.
상상력을 요하는 사고나 가정 섞인 질문들에 큰 흥미를 느끼진 못하나, 나도 한 번쯤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곤 한다. 단지 현실적으로 소득이 없는 대화를 하기보단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겨둘 뿐이다. 감정적이라고 해서 슬픈 영화를 보고 매번 오열하진 않는다. 날카롭고 논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선 차가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이 매사에 무계획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과 학회, 봉사와 학업까지 모두 책임감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 계획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나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의 모습이다. 혹여나 MBTI가 J형이 아니라고 해서 회사 면접에서 점수를 깎일 이유도 없으며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외향적인 척 자신을 포장할 필요도 없다. 겨우 네 개의 알파벳에 실망하지도 말고 기대하지도 말자.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결정이며 개인의 책임이다. 성격은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경험과 결정을 통해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다음부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MBTI를 물어보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네가 제일 좋아하는 너 자신의 모습은 무엇이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성격의 발달은 그곳에서 온다.
임재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