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한국 축구의 범인은 누구인가?

지난달 7일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단에 2:0으로 패하며 아시안컵 4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16강 사우디전과 8강 호주전에서 극적인 연장 승부 끝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국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요르단에 발목 잡히고 말았다. 대회 전부터 아시안컵 우승 후보로 불렸던 우리나라 대표팀이지만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대회가 끝난 직후에는 ▲선수 ▲감독 ▲협회 모두 여러 가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충격적인 4강 탈락은 누구 때문인가.

태극마크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했나

지난달 15일 영국 매체 ‘더선’은 “요르단전 하루 전날 대표팀 간판선수인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이 저녁 식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탁구를 즐기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뜨려고 하자 베테랑 선수들이 이에 반발했고 서로 간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강인을 포함한 젊은 선수들에게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강인 측은 논란에 대해 일부 인정하며 지난달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직접 “큰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흥민이 형을 직접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드렸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이 태극마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가대표 자리는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에게 부여하는 영광의 자리다. 또한 축구 대표팀은 어떤 국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국가의 거울 같은 존재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위 선양을 한 선수에게 병역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따라서 국가대표로서의 혜택을 받는 동시에 사명감 또한 가져야 하지만 일부 선수는 대표팀을 혜택의 자리로만 여기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병역 혜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대표팀 센터백 김민재는 작년 우루과이와의 A매치에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에서 “국가대표직을 내려놓고 클럽팀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국가대표의 자리를 군 면제나 우승이 있을 때만 참여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어려울 때도 진심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몸 상태가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국가대표 자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뛰어야 한다. 특히 선수들 간의 생겼던 마찰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무게를 가볍게 여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영광뿐 아니라 그 무게까지 꺠닫기를 바란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감독

대회 하루 전날에 선수들 간의 마찰은 분명 다음날 경기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조직이 어디 있겠는가.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 마찰은 대표팀을 한 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대표팀에서 이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그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하는 별명 중 하나는 ‘치어리더형 감독’이다. 감독답게 경기에 임하는 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을 북돋아 주는 역할만 한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뚜렷한 전술이 없다면 선수들의 갈등 상황을 중재하며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그저 방관했다.

클린스만은 경기 외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유럽파 선수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해외에 체류하는 등 감독직을 불성실하게 수행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대회 중 계속되는 전술 지적에도 클린스만은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응했지만 4강이 그 한계였다. 이에 감독 경질 여론이 거세지며 결국 지난달 16일 경질되고 말았다. 경질 후에도 인터뷰에서 아시안컵 탈락과 관련해 선수들 간의 불화를 꼽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었다.

클린스만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이 선임 전부터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서 우리가 배신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전부터 클린스만은 선수로의 능력을 출중했지만 감독으로의 능력은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세부적인 전술이 없고 대부분의 감독 업무를 코치에게 맡기는 등 프로 의식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선임 당시 국내 많은 축구 팬은 물론이고 독일 언론까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으니 이런 결말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이런 클린스만을 고평가하고 감독직을 맡기며 기대를 걸었다.

클린스만 선임 과정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협회 내 입지 강화를 위해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설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던 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거세진 비판 여론에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을 경질하기로 했지만 정 회장은 물러나지 않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정 회장은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선임 과정은 여타 감독의 선임 과정과 같았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클린스만이 경질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먼저 정몽규 회장에게 장난삼아 감독직을 제안했다”며 “정 회장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표했다”고 밝혀 그 또한 신뢰가 가지 않는 상황이 됐다.

욕먹을 수밖에 없는 국가대표 자리

다함께 축구 대표팀 경기를 보다 보면 선수가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을 때 사방에서 ‘저것도 못 넣는다’는 욕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국가대표 경기는 선수끼리의 대결을 넘어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국민 간의 대결로도 볼 수 있다. 축구의 경우 11명의 싸움을 넘어서 우리나라 5천만 명의 싸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경기에 과하게 몰입하다 보면 흔히 나올 수 있는 욕이다.

축구 대표팀 경기에서는 아무리 강팀과의 경기더라도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오곤 한다. 따라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선수는 대회 동안 강도 높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스트라이커 조규성이 여러 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많은 비판이 이어졌는데 그중 일부는 조규성의 헤어스타일을 문제 삼거나 방송 출연을 문제 삼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조규성이 과도한 비판 여론 때문에 경기에서 위축돼 더욱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역으로 조규성을 비판했던 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공격수는 자국민에게 욕먹는 일이 허다하다. 조규성이라고 해서 이러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세계적인 선수 리오넬 메시 또한 과거 승부차기 실축으로 우승컵을 놓치자 자국민에게 은퇴 소리까지 들으면서 거세게 비판받았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못한다면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조규성을 향한 비판은 축구 외적인 것과 연관되고 있다. 축구 외적인 것이 축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비판의 방향이 무작정 축구 바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인스타그램 테러와 같은 비판의 방식은 매우 적절치 않으며 축구 외적인 것을 축구와 계속해서 연관 짓는 것은 그 비판의 본질을 깨뜨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번 아시안컵과 함께 한국 축구에 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한국 축구를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필요한 순간이다. 축구를 너무 사랑하는 팬으로서 선수와 협회에 많은 말을 남기고 싶어도 조금은 기다려보는 것이 어떨까.

웃음과 박수 속에 마무리하는 다음 대회가 되기를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의 라인업은 황금기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며 유럽의 빅클럽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이를 황금기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결국 성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수 ▲감독 ▲협회 ▲팬 모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선수 한 명이 국가대표를 나간다고 해서, 감독이 바뀐다고 해서, 회장이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노력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아시안컵의 탈락은 누구 하나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다음 대회는 모두가 행복하게 웃으며 박수받으며 끝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한다.

정상우 기자

jungsw060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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