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탈학생회 소고

한 조직 내에서 소멸과 해체에 대한 위기의식은 때로 그 단체에 대한 각성의 계제가 된다. 그러나 학생회만큼은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회에서의 위기 담론은 실로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낮아지는 투표율과 비상대책위원회의 성립은 학생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끊임없이 지적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 역시 실무자들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숙제를 풀지 못한 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엔 2년 연속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시국은 학생회 체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할 시대적 상황으로 등장했다.

이 위기의식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새로운 고찰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이 담론을 구성하는 여러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망각한 지점들을 고발해야 한다. 그 관점이 효용이 없다고 밝혀질 경우, 학생회의 해체는 하나의 흐름에 종속된 시의적절한 수순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학생회에 찾아올 변화에 구태여 부정적인 반응을 취할 필요가 없다.

비상대책위원회와 탈정치화, 대표성의 부재, 감소하는 투표율, 정치적 무관심의 세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이 위기의식 속에 얽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학생회의 옹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 탈정치화는 실존하는 학생회에서 획득하지 않으려 하는 선택적 거부 기제이며, 비상대책위원회의 대표성 부재에 대한 논의는 대표자의 유무만이 학생회의 정상·비정상을 판단하는 척도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매년 겨울 등장하는 학생 대표자 선거의 투표율 감소도 학우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문제와 결부돼 학생회의 위기를 설명하는 일반적 배경에 불과하다.

학생회가 해체될 것을 ‘위기’로 상정한 채 그것의 존망 여부를 걱정하는 것에 앞서서, 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정상이라고 표방되는 학생회를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정치적 결사체, 복지단체, 자치활동의 기반-역시 그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해결해야 하는 이슈들이 산재해 있으며, 청년과 대학생 역시 그에 당사자성을 지니는 계층으로서 투쟁의 주체에 다름없다. 하지만 학생회라는 조직은 이제 규모의 측면에서나, 구성원의 다양성에서나 그러한 운동의 주체가 되거나 그것을 조력하기에는 별로 끌리는 플랫폼이 될 수 없다. 최근 학생회의 체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의제를 다루는 청년 정치의 지형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학생회가 가지고 오는 키워드인 ‘복지’는 학생회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적 사업으로, ‘굳이 학생회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만약 전술한 내용을 불편한 수사로 치부한다면, 불행히도 아직까지 학생회는 복지사업을 해야 하는 납득할 만한 충분한 당위를 세우지 못하였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에 따라 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그에 따라 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이제 타당성을 갖지 않으며, 조직의 존속은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머지않아 학생회의 시대가 끝날 것이다. 학생회에 대한 향수가 있는 전임자들이나 오늘날에도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자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몇 년 내로 학생회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해체 또는 현실 인식을 통한 재편이라는 두 가지 미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회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비단 당위에 대한 논설이 아닌 지금까지 학생회를 설명하던 언어에 대한 의문 제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역설하는 데 실패한다면 현재로서 학생회는 종국에 전자의 결론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건축 14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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