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후문] 새로운 생명을 지지하는 방법

지난 8월 30일 국내 첫 임신 레즈비언 부부인 김규진 씨와 김세연 씨가 SNS를 통해 건강한 딸 라니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규진 씨는 2019년 미국 뉴욕에서 김세연 씨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벨기에 난임병원에서 정자를 기증받았다.

지난 6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규진 씨가 출산을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2021년 프랑스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시절 “난 와이프가 있다”는 말에 “그렇구나, 근데 애는 낳을 거지?”라는 상사의 대답을 들으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김규진 씨는 자신이 선택한 김세연 씨와의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낀 것을 계기로 “내가 행복하니 자녀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출산을 마음먹었다.

이들 부부의 임신 소식은 각종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김규진 씨가 해외에서 직접 접해 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댓글 창에는 “정상인들에게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강요하지 말라”,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란 말인가” 등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기보다 임신 사실을 비난하는 글이 난무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 “냄새나고 구역질 난다” 등 원색적인 악플까지 쇄도하는 모습에 나의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아이의 장래를 우려하는 말들이 한국에서 발 딛고 살아갈 라니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 들었다.

아이를 걱정한다면 라니의 성장 환경을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떨까. 아이의 탄생과 아이를 둘러싼 사회에서 무엇 하나를 부정해야 한다면 아이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를 부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로 고쳐 나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가 속한 가정의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자라나는 시간 동안 가정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생활동반자법 도입이 시급하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돌보며 사는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이다. 현재 한국에서 혼인을 인정받지 못한 김규진 씨, 김세연 씨 부부는 서로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즉 함께 살아가면서도 중대한 의료상황이나 장례에 함께할 수 없고 4대 보험에서 서로를 배우자로 명시할 수 없다. 김세연 씨는 김규진 씨와 아이를 양육해야 함에도 육아휴직 사용조차 불가능하다. 라니의 가족이 엄마가 둘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한 복지를 받지 못한다면 법리에도 어긋날뿐더러 가족 일원인 라니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용적인 환경도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다.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아존중감도 함께 정립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포용적인 환경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포용적인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에서 그 답을 찾았다.

홍 교수는 혐오를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로 정의했다. 그는 “여대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예쁜 옷이나 구경하니 불행한 거다”와 같은 낮은 수위의 차별적 언사조차 대상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고 그들을 무시해도 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시킨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그런 말들이 자꾸 발화될수록 그런 이미지가 더욱 강화돼 사실로 둔갑하고 이것이 다시 차별을 낳게 된다”며 해악이 있다면 이런 발화 역시 혐오 표현이라고 말했다. 설령 우려가 섞여 있더라도 말이다.

아이의 탄생을 “괴이하고 병적인 상황”으로 매도하는 말이나 “아이가 무슨 죄냐”는 걱정을 빙자한 말은 건강하고 예쁘게 태어난 라니를 순식간에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걱정이라는 명목으로 아이의 자아를 부정하는 언행은 그 자체로 모순이며 아이의 성장에 심각한 해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생후 3개월을 지난 라니가 행복하게 크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혐오 없는 시선’이다.

 

박예나 기자

june2310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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