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진실의 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통치 기간까지의 부당한 사건들이 진실을 다시 알릴 기회가 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개정됐는지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지난달 20일 제20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법)’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과거사법은 2005년 제정 이후 15년 만에 개정돼 다시 진실규명의 근거로써 그 역할을 하게 됐다. 과거사법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전후 시기 ▲권위주의 통치 기간 중 발생한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공권력의 행사 등으로 왜곡·은폐된 진실을 밝혀 국민의 화해와 통합을 이룩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법률에서 언급하는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의 범위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상해·실종사건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 사건 등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출범했다. 과거사위는 4년간 373건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이때 다뤄진 대표적인 사건은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 사건 ▲인민 혁명당사건 ▲진보당 조봉암 사건 등이 있다. 위원회는 법률에 따라 4년간의 조사 기간을 마치고 2010년 폐지됐다. 이렇게 과거사법은 역할을 다하고 명목상의 법으로 남는 듯했다.

 

형제복지원, 과거사법을 되살리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통해 과거사법과 과거사위는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에 걸쳐 발생했으며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인권유린 사건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은 부산 지역의 ▲고아 ▲노숙자 ▲통행금지 시간 이후의 통행자 등을 잡아들여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구타와 성폭행이 빈번히 발생했으며 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련의 사건들이 형제복지원 단독으로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 이후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국내외 언론의 취재와 사건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당시 사건의 실행과 은폐에 부산시 공무원들과 고위공직자, 검찰 등 공권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1987년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문제가 불거지자 박인근 원장 등 사건의 직접적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지만 박 원장은 겨우 2년의 복역을 거쳐 출소했고 어떠한 벌금도 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이전 과거사위의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과거사위 출범 당시 피해자들이 과거사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해 일 년간의 신청 기간 동안 사건을 접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잊힌 부산 형제보육원 사건은 2012년 사건의 피해자인 한종선 씨가 저술한 ‘살아남은 아이’가 출간되고 여러 언론에서 다뤄지며 다시 알려졌다. 부산 형제보육원 사건이 다시 표면 위로 떠오르면서 과거사법과 과거사위가 재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순탄치 않은 과거사법의 길

과거사법이 다시 주목받으며 기존 과거사위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활동했으나 활동기간은 물론이고 과거사규명을 요청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이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실질적인 보상책이 미비하다는 문제점도 존재했다. 실제로 보상을 받지 못한 유족들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2013년부터 ▲과거사위의 추가적인 활동 ▲과거사규명 신청기한 연장 ▲진실규명 조사 방법의 보완 ▲실질적인 배상 방법을 포함한 개정안을 계속해서 발의했다.

하지만 과거사법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관련 개정안들이 폐기됐으며 20대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이후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강한 반발을 맞아야 했다. 우선 과거사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기존 과거사위는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8명을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한국당은 이러한 방식을 유지할 경우 ▲대통령 ▲대법원장 ▲여당의 추천인원이 모두 친정부 성향이 될 수밖에 없기에 과거사위가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은 과거사위의 구성 방법에 대해 ▲대통령 추천 1명 ▲국회의 여당 교섭단체 추천 4명 ▲야당 교섭단체 추천 4명으로 총 9명을 추천해 구성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배상조치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통합당이 갈등을 빚었다. 특히 민주당과 통합당은 과거사법을 통과하기로 합의한 지난달 7일 이후에도 이에 관해 극렬하게 대립했다. 민주당은 개정안에서 정부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해에 대해 명예회복과 보상 방법을 규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한 조항을 제안했다. 하지만 통합당은 민주당이 제안한 배상 조치를 위해서는 4조 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과거사법, 다시 한번 진실을 향해

민주당과 한국당 및 통합당의 갈등으로 과거사법 개정안의 심사는 계속해 지연됐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향해 심의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의원은 “한국당 지도부가 과거사법을 통과시킬 의지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공권력에 희생된 무고한 국민에 대한 진실규명,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배·보상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공식 입장”이라며 민주당의 비판을 부정했다. 한국당은 오히려 민주당이 법안심사를 위한 소위원회 회의부터 상임위원회의 전체회의까지 야권의 수정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법안의 심사통과를 강행했기에 합의가 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잘못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 되고 있는 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해 이는 소위 ‘날치기’로 통과된 법안이니 다시 행안위로 가지고 와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한국당 및 통합당이 갈등을 빚으며 과거사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처럼 폐기되는 듯했다.

김무성 통합당 의원이 중재에 적극 참여하면서 여야의 갈등은 해결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5일 김무성 의원은 국회에서 고공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 씨와 만나 면담 후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 등을 만났다. 이후 행안위 여·야 간사는 7일 “조속한 시일 내 과거사법 수정안을 마련하고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통합당과 민주당은 과거사위에 대해 대통령이 지정한 상임위원 1인을 임명하고 야당과 여당의 추천을 통해 각각 상임위원 1인과 비상임위원 3인을 임명해 총 9명으로 구성하는 통합당의 제안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배상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을 추가하지 않고 다음 국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에도 배상 의무를 규정했던 조항은 제외됐다. 개정된 과거사법에 따라 과거사위의 조사기간은 기존의 4년에서 3년으로 축소됐으며 기한연장 한도는 2년에서 1년으로 축소됐다. 과거사위의 조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진실조사를 위한 자료를 거짓으로 제출하는 등의 행위에 대한 과태료를 상향조정하고 과거사위 위원에 대한 협박 및 폭행 등에 관한 벌칙조항을 신설하는 내용 또한 담겨있다. 이러한 과거사법 개정안은 지난달 20일 국회의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의 과거사법과 과거사위는 대중들에게 전반적으로 알려지지 못했으며 조사기한과 신청기한이 짧다는 문제점으로 진실규명이 필요한 많은 사건을 기회를 놓쳤었다. 하지만 과거사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과거사위가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과거사위의 활동이 다시 시작됨에 따라 이전에는 규명하지 못했던 사건들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 전망된다.

 

 

오성원·박찬웅 기자

osw08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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