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광장] 영화 ‘목격자’ 속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

“나는 살인을 봤고 살인자는 나를 봤다.” 흔해 보이는 스릴러물의 플롯을 가진 이 영화는 시작부터 ‘범인’을 공개한다.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설정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 속의 공포를 통해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비판을 던지고 있다. 이유 없이 사람을 살해하는 소위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인에 대한 비난 뿐 만 아니라 살인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방관자 심리, 그리고 아파트 집값을 지키기 위해 무관심으로 일관한 물질만능주의의 팽배와 집단 이기주의까지. 무정하고도 인색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실망은 영화 속에서 흐르는 주선율이다.

주인공 ‘상훈’은 살인 사건을 목격하자마자 112에 이를 신고하려 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거실 형광등이 켜지자 상훈은 범인에게 들켰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창밖을 내다보고 자신의 아파트 층수를 세고 있는 범인과 눈이 마주친다. 이후 상훈에겐 경찰에게 신고할 기회를 비롯해 자신이 목격한 것을 털어놓을 기회가 여러 번 주어진다. 공포감에 이성을 잃은 그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만 온 신경을 쏟는다. 상훈이 침묵을 지킬수록 피해자는 늘어나고 가족에 대한 위협도 잦아진다. 많은 이들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방관하는 상훈의 행동을 비이성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영화가 영감을 얻은 사건에 따르면 상훈의 행동은 예상 외로 현실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목격자’는 1964년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 29세였던 여성 제노비스는 강도에게 무차별 난자(亂刺)로 살해당했다. 범인은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제노비스를 폭행하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폭행하길 반복했다. 살인 방식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사건을 목격한 집단의 방관적인 태도였다. 범행 장소가 아파트 단지 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대담히 행동했다. 제노비스는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으며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목격하거나 구조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무려 38명에 달한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신고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방관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현대 사회의 비정함을 보여준 이 사건을 기억하고자,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일컫는다.

무관심이 만드는 이런 비극은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히 일어난다. 10여 명의 행인 모두가 무관심으로 일관한 ‘먹자골목 집단 폭행 사건’, 한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피해 여아를 600m나 끌고 갔으나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등 유사 사례는 많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제임스 프렐러의 소설 ‘방관자’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친구가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며 아파하는 것을 봐도 침묵하고 외면한 채 끝까지 방관자로 남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내가 꼭 나서지 않아도 타인이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괜히 이런 일에 엮이면 피곤해진다는 우려가 침묵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이 작품의 ‘고발’은 단순한 회피 심리를 겨냥하며 끝나지 않는다.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아파트 이미지와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합의 하에 침묵을 유지한다. 형사의 탐문 수사에도 “봤어도 못 본 척하지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데에 끼고 싶겠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한 주민의 말이 이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주변의 이웃이, 무고한 한 시민이 죽어나가는 현실보다는 재산의 물질적 가치가 더욱 중요한 현실이 돼버렸다.

묻지마 살인, 집단 이기주의, 무관심과 방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모든 모습들이 현실 사회를 반영한다. 리얼리즘이야말로 이 영화를 유쾌하거나 통쾌하기보단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다. 우리의 불쾌함은, 이러한 장면들이 충분히 우리 곁에서 일어날 수 있거나 이미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영화 속에서 의도된 작위적인 불쾌함이 아니라 잊고 있던 현실의 불쾌함이 되살아났다면, 우리는 이 감정을 단순히 넘겨선 안 된다.

김해솔⸳김지용 기자

pinensu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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