짊어진 국방의 의무, 잃어버린 장병 인권

꾸준히 제기돼 온 군 장병 처우 문제가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격리 장병 대우 문제까지 지적되며 장병 인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 속 군 당국의 장병 대우와 고질적인 문제점을 The HOANS에서 조명한다.

 

코로나19가 쏘아올린 고질적인 군대 내 병폐

 

최근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일부 부대에서 휴가 복귀 이후 격리 병사에게 부실 급식을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군 당국에 비판이 제기됐다. 논란이 된 51사단이나 36사단은 물론 이전에도 훈련소, 오지 부대 등에서 병사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던 만큼 국방부와 육군은 열악한 환경을 제공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국방부 측은 최근의 논란이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비상시국 속 ‘과잉방역’에 기인한 특수한 문제라고 주장했으나 예견된 문제였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오랜 문제로 지적된 군 내 가혹행위나 내부 고발자 보복 등은 군의 해이한 장병 인권 의식을 보여줬다. 즉 군이 위기 상황에서 일맥의 태도로 장병 처우보다 확진자 차단 등의 가시적 성과를 중시한 것은 당연하다는 비판이다. 본 기사는 최근 논란을 중심으로 군 부실 식단 문제와 군 내 인권침해 실태를 다룬다.

 

논란의 중심, 군 부실 식단

 

군의 부실 식단 논란은 이따금 등장한 이슈였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 없이 흐지부지 넘어갔었다. 작년 2월에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코로나19 격리 장병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급식 사진이 올라온 후 부실 급식 논란이 일었다. 당시 국방부는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급식 사진을 공개하고 코로나19 격리 장병에게는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해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전날 밤 국방부 군수관리관실에서 급히 예하 부대의 급식 사진을 수집해 ‘잘 나온’ 사진만 추려 공개한 것으로 알려져 되려 논란을 키웠다. 그럼에도 부실 식단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작년 10월 휴가 복귀 후 격리된 육군 제36사단 병사들에게 부실한 식사가 제공됐다며 군인권센터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등 공허한 문제 제기만 반복됐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처음 부실 식단 논란이 제기됐던 SNS에서 51사단의 격리 장병에 대한 부실 급식 실태가 폭로되면서 다시금 논란을 촉발했다. 폭로글과 함께 올라온 부실 식단 사진은 ‘교도소에 제공되는 식단보다 못하다’며 여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제1보병사단과 39사단 부대에서도 부실 식단 논란이 터져 나오며 부실 급식 문제가 전국 부대에서 만연한 문제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논란 직후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해당 부대 간부 개인의 배식 실패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부대에서 문제가 밝혀진 만큼 간부 개인의 문제로 일축하기 어렵다. 국방부의 해명이 사실이더라도 간부 개인의 결정으로 부대 전체의 식단이 흔들리는 시스템 자체가 개선돼야 한다며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급식 문제, 이유는?

 

부대에 부실 식단이 제공된 원인으로는 터무니없이 낮은 군 급식 예산 증액률이 지목된다. 기획재정부의 2021년도 나라 살림 예산 개요에 따르면 전력운영비 중 급식 및 피복 예산 증가율은 2.4%로 15.5% 상승한 농축산물 소비자물가지수와 심각한 괴리를 보인다. 이에 더해 2019년 국방부의 예산 불용액이 약 4,700억 원 정도로 중앙 정부 부처 중 가장 많은 불용액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급식 예산증액이 어려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예산 부족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군 당국의 예산 관련 운용에서도 구조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효율 중심의 군 급식체계 자체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군은 식자재별로 1년 치를 미리 계약하고 식자재를 공급받는다. 이런 방식은 식자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식자재 수급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는 위험을 부담한다. 식단도 모두 조리병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군무원 영양사는 일부 대규모 부대에만 배치된 실정이다. 이렇듯 효율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장병 급식의 맛과 영양 같은 질적인 문제가 뒤로 밀려나게 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 수뇌부가 청년 장병들을 어떻게 잘 먹이고 재울 것인지 고민하는 데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라며 효율 중심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급식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밝혔다.

 

부족했던 국방부의 대응

 

논란이 된 부대에서 부대가 부당하게 대응했다는 제보가 올라오며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자신이 51사단 예하 부대 소속 병사라고 주장한 글쓴이는 “논란 후 모든 병사의 카메라 검사를 했고 해당 게시글을 올린 병사는 사이버보안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을 예정”이라며 군 내부에서 보복성 징계가 이뤄지고 있음을 폭로했다. 그뿐 아니라 지난달에는 격리자들을 챙겨줘야 한다며 일반병들에게 부실급식을 하고 있다는 추가 제보가 들어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폭로 열흘 만에 서욱 국방부 장관과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공동으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문제 제기에 국방부도 대응책을 내놓았다. 군은 격리 장병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메뉴 누락 없이 온기가 유지된 도시락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격리 기간에 휴대전화로 부대 매점(PX)에 필요 물품을 신청할 수 있는 ‘PX 이용 도우미 제도’를 운영할 방침이다. 일반 장병의 급식에 대해서도 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고등학생 급식 예산의 80%도 되지 않던 일반 장병의 1인당 한 끼 급식 예산 2,930원을 내년까지 3,500원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간편 뷔페식 조식 시범 도입 ▲배달음식·푸드트럭 등 급식혁신사업을 연 4회서 월 1회로 증편 ▲시범 운영 중인 병영식당 민간위탁 사업 확대 등 많은 개선책이 제안됐다. 그러나 국방부의 늦은 사후 처방식 대응에 여론은 냉랭한 분위기다.

 

격리 장병 인권침해, 군은 늑장대응

 

육군 장병의 부실 급식 논란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코로나19 격리자 수용 시설의 상태와 격리자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산간에 위치한 한 공군 부대에서 지난 1월 코로나19 의심 병사와 그 접촉자를 난방과 수도 시설이 열악한 공간에 사흘가량 격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럼에도 공군은 해당 부대에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아 여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도 병사들에 대한 인권유린 방역 지침이 알려지며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화장실 사용 제한과 입소 후 10일간 샤워 금지 등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과잉방역 지침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육군 측은 신병 입소 시 대규모 인원이 일시에 유입되므로 효과적 방역을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으나, 군 인권 전문가는 “배식은 한 곳에 모여 하는 상황에서 세면 금지와 화장실 제한 등의 조치는 과도한 방역”이라며 훈련소 측의 대응을 비판했다. 또한 군인권센터 보도자료에 따르면 해병대의 경우 1차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입소 2일 차까지만 샤워와 세면, 양치 등을 통제하고 이후에는 생활관별로 사용 인원만 제한하고 모두 가능하도록 조치했다고 알려졌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육군훈련소 화장실 이용시간의 과도한 제한에 대해 “감염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배변까지 통제하는 상식 이하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육군훈련소장은 방역과 인권이 조화될 수 있는 방역 지침과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말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했다. 육군훈련소장은 가장 문제시된 화장실 사용 제한에 대해 지난달 3일부터 기다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조치했다고 밝혔으며, 양치와 세면· 샤워를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한 매일 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SNS 제보와 언론 보도로 사안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군 내 인권침해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군의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질적인 군대 내 가혹행위

 

군 내 인권침해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22사단 임 병장 총기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이 발생한 2014년, 잇따른 군 내 가혹행위 사건으로 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다. 당시 여론은 국방부에 병영문화 개선을 촉구하며 거세게 반응했다. 이에 국방부는 ‘병영문화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군 생활에 위협이 되는 가혹행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위원회는 부대 내 스마트폰 사용과 가혹행위 및 군대 내 부조리를 색출·엄벌하는 것을 병영 악습을 척결할 대책으로 내놓았다. 초급간부의 전문성 제고와 안전한 병영환경 조성을 위한 방안도 논의됐다.

그러나 여러 대책이 무색하게 군 내 가혹행위 관련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군사법원이 발표한 군대 내 폭행 및 가혹행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5년간 총 4,275건이 집계됐다. 이는 그 직전 5년간 발생 건수인 3,643건에 비해 약 600건 증가한 수치다. 늘어나는 가혹행위 관련 지표들은 국방부가 복무환경 개선을 위해 제시한 병영문화 혁신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작년 10월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사전적 예방 대책의 실효성이 없는 데다 사후적으로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가혹행위에 대한 군내 처리가 미흡하다고 질책했다.

최근에도 가혹행위와 관련된 피해가 폭로된 바 있다. 지난달 국방부에서 육군의 한 병사가 군대 내 가혹행위와 군 병원의 오진으로 5개월째 거동이 어렵다는 의혹으로 감찰 조사에 나선 사례가 있었다. 해당 병사는 훈련 도중 인대가 파열돼 통증을 호소했지만 소속 부대는 꾀병일 수 있다며 이를 묵살했다. 두어 달이 지나서야 민간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부상이 재발하자 재수술을 받았으나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5개월간 걷지 못했다. 이에 국방부는 육군 부대뿐 아니라 군 병원이 진료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감찰 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를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지속케하는 군의 고질적인 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가혹행위 피해를 입었을 때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혹행위를 당했을 때 취한 조치를 묻는 문항에 ‘참았다’로 응답한 비중이 76.7%에 달했다. 이는 2002년 조사에서 나타난 75.9%보다도 증가한 수치다. 파악되지 않은 가혹행위 사건이 많을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폭력적인 군대 내 문화가 사건의 발생과 해결 모두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의 인권친화 국방개혁은 어디에?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에서 ‘장병 인권 보장 및 복무여건의 획기적 개선’을 포함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군의 고질적인 장병 인권 문제 해결을 목표로 ▲군대 급식 질 향상 ▲병사 봉급 인상 ▲공무상 부상 치료비 전액 지원 ▲군 장병 인권 보호 강화와 같은 세부과제들이 설정됐다. 정부는 2019년과 2020년 발간한 국정과제 평가에서 해당 세부과제가 상당 부분 시행됐고 이에 따라 장병 복무 여건과 인권 보호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병사 봉급 인상 부문에 있어 병장 기준 병사 월급은 2017년 약 21만 원에서 올해 약 60만 원으로 약 3배 인상됐다. 공무상 부상 치료비 전액 지원 부문에서는 군보건의료법 시행령이 작년 10월 개정돼 병사의 단체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정부는 군 급식 부문에서도 ▲브런치 제공 ▲복수 및 자율 메뉴 제공 등 급식혁신 사업과 함께 메뉴를 다양화하고 계약방식을 개선하고자 시도했다. 인권 보호 차원에서 군 의문사 사건 관련 법안을 처리하고 국방부 인권자문위원회를 위촉하는 등 가시적 성과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장병의 복무 여건과 인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며 세부과제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병사 단체보험 가입 사업에서 국방부가 모호한 기준하에 비용을 추계하면서 해당 사업에는 66억 원가량 감액된 예산이 편성됐다. 이에 차후 보험사와 계약 성사 여부가 불확실해졌으며, 계약을 진행하더라도 시행 시점이 내년도 예산 편성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된다.

또 정부는 군 급식의 질 개선을 성과로 내세웠으나 정부는 가시적이고 홍보가 쉬운 메뉴 다양화 등 정책에 몰두하는 한편 급식 예산에는 약 8% 증가한 타 군비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을 할당하며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최근의 논란은 근본적인 분배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함을 보여줬다.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에만 몰두할 뿐 장병의 실질적 생활에 관한 문제에는 무관심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군의 인권 의식, 언제쯤 높아질까

 

개선되지 않는 부실 식단 문제와 가혹행위로 인해 불안한 군 생활은 장병의 인권에 위협을 가한다. 정부와 국방부는 부실 급식 문제에는 예산증액을, 가혹행위 등의 사고에는 관련자 엄벌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발생시키는 본질적인 폐단에는 침묵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군대 내의 구조적인 원인 개선과 장병 인권에 대한 군 당국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들이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김동현·김원겸·신형목 기자
justlemon2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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