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이 되고 싶었던 ‘한푸’

한복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 네티즌 간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 논쟁의 시작에는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의 모바일 게임 ‘샤이닝 니키’가 있다. 한국 네티즌들은 이것이 ‘동북공정’의 일환이라며 하루빨리 정부적 차원에서의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한복 동북공정’ 논란의 전말에 대해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게임으로 시작된 갈등의 불씨

 

지난 10월 29일 샤이닝 니키는 한국 서버를 런칭한 기념으로 한복 의상을 출시하겠다고 SNS를 통해 공지했다. 이 공지는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한복은 한국의 고유 의상이 아니므로 표기를 정정해야 한다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논란이 한국까지 번지자 한국 네티즌 또한 반박에 나섰고 결국 샤이닝 니키 공식 트위터 계정은 한-중 네티즌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문제를 더욱 키운 것은 중국 게임사 측의 대처였다. 지난달 4일 페이퍼게임즈는 웨이보 공식 계정을 통해 “한국 서버의 유저가 조국(중국)을 욕할 경우 채팅 금지 및 계정 정지시키겠다”며 “중국 고유의 전통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고수하며, 국가의 존엄 또한 지키겠다”는 등 중국 여론을 적극 대변하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논란이 된 한국 서버의 모든 한복 의상 아이템들을 파기해버렸고, 한국 유저들의 비난이 계속되자 결국 다음 날 한국 서버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서비스 종료 안내 공지에도 “조국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인 사실을 퍼트렸다”며 게임사의 대처에 불만을 표출했던 한국 유저를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에 더욱 한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한복을 삼키려는 중국의 검은 손길

 

한복을 둘러싼 한중 갈등은 샤이닝 니키 사태가 처음이 아니다. 사태 직전에도 중국인 일러스트레이터 ‘올드선’의 그림이 한복을 도용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복이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전통 의상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에는 중국이 한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바뀌었다. 한복과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는 조선족이 아니라 ‘한푸’다. ‘한푸(漢服)’는 한족 왕조의 전통 복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한복(韓服)과 달리 사전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아 정확한 정의조차 불분명한 신조어다. 오늘날에는 주로 명나라 때 복식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기조를 앞세워 중화 문화, 즉 한족의 문화를 보급하고자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기존에 중국의 전통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만주족의 전통복 치파오 대신 한족의 전통복 한푸로 한족 중심의 중화 사상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푸 복장의 공연이 이뤄지고 2013년에 시탕(西塘) 한푸 문화제가 시작되는 등 국가에서 한푸를 적극 홍보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내에서도 한푸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오픈마켓 타오바오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중국 내 한푸 판매량은 작년 대비 146% 급증했다. 계속된 상승세에 힘입어 한푸 매장의 해외 진출 또한 고려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푸는 한복과 외형적으로 거의 유사하다. 이를 근거로 중국 네티즌들은 SNS ‘한푸 챌린지’를 통해 한복은 한푸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전문가들의 반론 및 분석

 

전문가들은 중국 측 주장에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본다. 중국 측은 ‘명나라 복식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옷은 중국의 옷이므로 한복은 한푸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한복은 한민족 전통의 복식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 한복 외에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입었던 의상들도 모두 한복이며 이는 중국의 전통 복식과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의 한복 또한 명나라의 영향을 일부 받았지만 치마나 바지를 크게 만드는 등 독자적인 특색이 있었다. 김소현 배화여대 패션산업학과 교수는 M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망건과 갓에는 중국 드라마에서 나온 형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복은 명백히 우리의 문화”라며 중국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한푸와 한복의 선후 관계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송나라 때까지 한푸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해 한복과 많이 달랐으나 명나라 때 이르러 한복과 외적으로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오늘날 한류와 유사한 ‘고려양’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숙원잡기, 궁중사와 같은 중국 역사서에 기술됐듯 13세기 중엽 이후 원나라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고려의 음식과 옷이 유행한 현상을 고려양이라고 부른다. 특히 숙원잡기에 따르면 초기 원나라 고위 여성들이 고려인의 옷을 보고 비슷하게 입기 시작한 후 이런 경향은 명나라에 들어서 남성과 평민에게까지 전파됐다. 한푸가 한복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 일각에서 갑작스럽게 한복을 자신들의 문화로 편입하려 하는 것은 K팝 등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 대항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JT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기본적으로 반(反)한류가 잠복돼 있는데 중국이 한국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생각해 모방하고 싶은 것은 한국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한푸 논란의 원인을 분석했다. 또 다른 시각으로 이정남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푸 부흥 운동에 대해 “중국 내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며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성숙한 제도나 가치를 못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역사 왜곡,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심각성을 인지한 한국 네티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의 한복 관련 역사 왜곡을 알리며 대응 중에 있다. 일례로 트위터에서는 중국의 ‘한푸 챌린지’에 대응하는 ‘한복 챌린지’로 한복이 우리나라의 전통복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캠페인이 활성화됐다. 한편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한-중 한복 갈등을 일으킨 샤이닝 니키 게임사의 만행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은 6,8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여론을 의식하고 정계에서도 관련 논의가 언급됐다. 지난달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정부가 가진 채널을 총동원하여 ‘한복이 우리 것, 중국 게 아니다’라는 걸 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중국의 노골적인 역사 왜곡은 오랜 기간 이어져 왔으나 이에 대한 외교부의 대응은 유감 표명에 그치는 등 다소 미온적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의 강경 대응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정남 교수는 “정부 차원보다는 민간 차원의 학계나 공공외교 측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밝히는 한편 과도하게 중국 문화를 배척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한국의 문화를 흡수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그 범위 또한 넓어지면서 정부가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내 결속력 강화를 위해 중국 정부가 앞장서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 문화가 제일이라는 민족 논리를 기반으로 한 공세는 점점 팽배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시적인 대립으로 끝나지 않을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문화·역사 왜곡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대응 및 비판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요구된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지식을 배양하고, 사실에 기반해 문제에 맞설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원겸·최혜지 기자
202015007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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