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에 두 명의 사공,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최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하 장 실장)과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이하 김 부총리) 사이의 갈등설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같은 행정부 소속의 두 경제 전문가 중 누가 과연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이냐는 것이다. 두 수장이 그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이하 문 정부) 경제 정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두 개의 경제 노선,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문 정부의 경제 기조는 소득주도 성장론자인 장 실장과 혁신성장론자인 김 부총리의 ‘경제 투톱’ 체제의 아래에 있다. 저임금노동자 및 가계의 임금 소득을 증가시켜 늘어난 소비로 수요를 늘려 기업의 생산 확대를 도모한다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현재 장 정책실장이 맡고 있다. 혁신성장은 기업의 혁신을 촉발해 경제발전을 촉진한다는 주류경제 및 전 정권에서도 일관적으로 시행돼왔던 공급주도 정책으로 김 부총리가 그 수장이다. 하지만 두 경제수장 간의 서로 다른 노선 탓에 이들 사이의 갈등설이 점화되고 있다. 일자리와 투자 및 생산 등 핵심 경제지표가 바닥으로 추락한 가운데 두 경제 사령탑이 서로 다른 경기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가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두 개로 나뉜 권한, 갈라진 정책

문 정부는 장 실장과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 하에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 일자리 대책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생산·투자·소비의 ‘트리플 부진’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한국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6월 산업생산은 전 월보다 0.7% 줄어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설비투자는 5.9% 감소해 4개월 연속 마이너스의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부작용에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고용지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7월 취업자는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월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 폭을 보이며 1년 전보다 5,000명이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에 장 실장은 현 상황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진단하면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띠고 고용상황이 개선될 것이니 송구스럽지만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다른 누구보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간 추진한 경제정책의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 개선 및 수정 방향을 검토하겠다”라는 말로 장 실장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많은 경제 전문가 역시 정부의 혁신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경제컨트롤타워를 재정비하는 등 정책을 개선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

장 실장과 김 부총리의 이상기류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들의 불협화음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당시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음날 김 부총리는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반박하며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신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갈등은 8월 6일에 재점화됐다. 청와대 일각에서 김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을 ‘투자 구걸’이라고 표현하며 비판한 것에 대해 김 부총리가 “혁신성장에 도움이 되면 규모와 업종에 불문하고 방문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발표를 낸 것이다. 이어 9일에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최근 청와대와 정부 내 갈등이 있다”며 “정부가 대통령 말도 안 듣고 자료도 안 내놓으면서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실명 거론은 없었지만 상황상 장 실장과 김 부총리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이라는 추측이 대부분이다. 19일에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도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다시 한번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를 밝혔고, 이에 두 경제 관료들이 갈등을 넘어 ‘분업’에까지 이르렀다는 시각이 공론화됐다.

두 경제수장의 ‘동상이몽’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두 가지로 갈린다. 우선은 두 수장이 경제 패러다임을 새로 바꾸고 정책 방향과 속도를 맞춰 나가는 과정에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시각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모두 대선부터 이어진 문 정부의 주된 경제 노선인 만큼 서로의 이견을 차츰 좁혀나가며 협력한다면 경제를 부양하는 두 날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노선 자체가 서로 대립하는 측면이 많은 만큼 경제 활성화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힘들고, 불화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땐 자칫 경제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서로 발맞춰 시너지 효과를 꾀해도 모자랄 불황 시기에 경제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두 수장의 파벌 싸움이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문 정부의 행보는 두 경제수장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엔 충분치 못하다. 최근 문 정부는 친기업 행보를 보이며 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혁신성장론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대표적 예가 바로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잠식을 막기 위한 은산분리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완화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달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의료기기 인허가 제도를 ‘선허용 후규제’ 방식으로 바꿔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불어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부터 기업 총수와의 만남 또한 진행하고 있다. 초기 중소기업에 의한 혁신경제 성장을 주장했던 문 정부의 경제정책이 다시 대기업 중심으로 운용되는 양상이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소득주도 성장 특별위원장으로 경질된 것도 역시 문 정부가 혁신성장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8월 28일 소득주도성장을 “사람 중심 경제”와 “시대적 사명”이라는 말을 통해 표현하며, 최저 임금 인상 등의 기존 정책을 강력하게 이어나갈 것을 표방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소득 불평등 완화’가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된 재분배 지표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문 정부가 상반돼 보이는 견해를 동시에 보이는 이유는 문 정부의 기조가 기업 위주의 ‘혁신성장’과 분배 위주의 ‘소득주도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앞선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두 정책이 공정경제 기조와 함께 “반드시 함께 추진돼야 하는 종합세트”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기조가 사실상 상반되어 경제적 비효율과 충돌을 낳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의 새로운 과제

최근 문 정부는 내각 관료를 교체하고 재정비하는 등 정권 2기에 돌입했다. 경제 문제는 문 정부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중대한 사안 중 하나로 꼽히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 불경기 속에서 두 수장이 상반된 정책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양상은 국민에게 그리 신뢰를 주지 못한다. 권력 관계상으로 타당한 것은 행정부 내각인 김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대통령 참모인 장 실장은 그림자 속에서 조력자 역할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정부 2기의 주된 과제는 두 수장의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여러 지표를 통해 실질적 효과가 부족하다고 드러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을 재고하고, 이에 비교해 미비하게 지원됐던 혁신성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삐걱대는 동거’를 끝내고 한국 경제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문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풍환·김해솔·김효재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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