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장 벌어지는 세계 반도체 시장, 한국은?

전 세계 각국은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와 코로나19를 겪으며 반도체 경쟁에 사활을 걸게 됐다. 이에 따라 각국의 반도체 대규모 투자와 글로벌 기업 간의 인수합병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인다. 이에 세계 반도체 시장 경쟁의 단면을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1983년 삼성이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이래 1990년대 64M, 256M, 1G D램 등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이후 반도체는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했던 비중은 2009년엔 9%인데 비해 2020년 19.3%로 대폭 상승해, 현재 월간 반도체 수출액은 100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반도체 관련 시설 투자 계획과 연구·개발(이하 R&D) 투자를 발표했다. 규모 및 기술 확보를 위한 기업 간 인수·합병(이하 M&A)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각국 정부의 투자와 지원도 이어져 이러한 위협에 대응해 국내 반도체 산업 보호와 지원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춘추전국시대 개막하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종합반도체 최대 경쟁사인 인텔은 유럽과 미국에 각각 약 110조 원, 22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공장을 2개씩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반도체 제조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 영역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로 보이며 지난 3월 인텔이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스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와 일맥상통한다. 반도체 분야 시총 1위 기업인 대만 TSMC도 지난 4월 애리조나 공장 건설 등에 3년간 약 116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 간 M&A도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특히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저장장치로 쓰이는 반도체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활발하다. 지난달 낸드플래시 3위 업체인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2위 업체인 일본 기옥시아와의 합병이 논의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탈은 약 1조 6,200억 원에 매그나칩반도체를 인수하기로 발표했고 현재 관련국의 매각 관련 심사를 받고 있다.

한편 각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 정책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6월 급증하는 자국 반도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우선순위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미국 의회는 현재 약 61조 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을 추진했다. 지난달 23일엔 미 상무부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을 상대로 45일 안에 재고 등의 내부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는 반도체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중국도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한 대규모 국가 펀드 지원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양안 인민관계조례를 개정했고, 한정된 국토로 인해 제한되는 생산량을 극복하기 위해 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EU와 일본 등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세워 해외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자국 기업들을 다시 불러오는 리쇼어링과 신흥 기업 지원을 통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도체 전쟁, 발발한 이유는?

 

세계 반도체 공급사슬은 국제 특화와 분업 체제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반도체 공정 과정을 자본 집약적인 영역과 노동 집약적인 영역으로 구분해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런 체제의 경우 한 국가의 생산 차질이 전체 공정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는 취약점이 있다. 일례로 지난 4월 대만 TSMC에서 발생한 6시간가량의 정전 사태로 제작하던 웨이퍼 전량을 폐기하면서 한화로 수백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르네상스 ▲소니 ▲NXP 등 전 세계의 자동차 기업들은 심각한 반도체 품귀 현상에 시달렸다. 게다가 텍사스의 한파와 일본의 화재 등 자연재해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로 반도체 수급에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이 심화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는 기존 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이에 자국 산업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확보하려는 정책 기조가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간의 상호의존보다는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기술 탈동조화 확대로 반도체 패권 다툼이 고조됐다는 점 역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주요국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공급망 개편을 진행해왔다. 한국무역협회의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정책과 공급망 변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바이든 정부 역시 반도체 등 4대 품목의 공급망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고 자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밝혔다. 과거 트럼프 정부도 ▲ZTE ▲화웨이 ▲SMIC 등 중국 기업들에 반도체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중국 역시 이에 대한 반격으로 14차 5개년 계획에서 반도체 생산 내재화 정책을 선언하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했고 중국 기업 제재에 동조하는 제3국 기업에 가할 손해배상청구 조항을 마련했다. 이렇듯 양국 간의 정치적 충돌이 격화하면서 반도체 분야 경쟁 양상이 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된다.

반도체 수요 증가도 경쟁 심화에 기여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을 포함한 비대면 환경이 조성되면서 ▲5G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 기술을 포함한 각종 스마트기기의 중요성이 커졌다. 실제로 이에 탑재되는 서버용 반도체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외에도 ▲자율 주행차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 구현을 위한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등 다양한 첨단 산업에 활용되자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육성에 경쟁이 과열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는 K-반도체, 대응은?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은 보다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강구하고 나섰다. 지난 8월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약 15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를 세계 1위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설립 ▲평택 반도체 공장 완공 ▲DS 부문 신규 고용 등의 방침을 내놨다. SK 역시 반도체 투자 유치를 위해 SK 스퀘어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위탁생산 업체인 키파운드리 인수 계획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정부 역시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주력했다. 지난 5월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를 통해 2030년까지 K-반도체 벨트를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인공지능(AI)혁신 센터 설립 ▲R&D 세액공제 ▲반도체 인력 3만 6천 명 육성 등이 있다. 이외에도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 발표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에 약 1,208억 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전하는 등 금융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반도체 관련 법안 개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화학물질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안전기준이 79개에서 413개로 대폭 상향됐고 저압가스 배관 검사가 의무화된 바 있다. 안전이라는 대원칙에는 이견이 없지만 세부적인 법령과 그 이행 방법에 있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지워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배관 검사과정에서 공정 올스탑이 불가피한데 안전진단 완료까지 약 14개월이 소요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팩트 경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데도 물질 1개당 1,000만 원이 들고, 설비를 바꾸는 데는 최소 1억 원이 필요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지난 8월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일부 유해화학물질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반도체특별법’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각 부처 간의 극명한 입장 대립이 그 이유로 언급된 만큼 기업과 정부, 관련 부처의 긴밀한 협력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는 상태다.

 

효자 종목 반도체를 지키기 위해선

 

반도체 시장에 격변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각국이 반도체 경쟁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효자 종목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영역인 만큼 세계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국내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충분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김하현·신재용·유민제 기자
dop3568@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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