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의료계에 새 물결 일으키나

간호사의 업무 명확성과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일명 ‘간호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코로나19 이후로 간호사 처우 문제가 주목받으며 간호법 제정 찬성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법안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의료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양측이 대립하는 가운데 간호법은 현재 국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간호법 제정 요구와 이를 둘러싼 시각들을 살펴봤다.

지난 5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대한민국 간호 현장 실태와 주요 요구’를 조사한 결과 간호사의 이직률은 15.2%로 전체 산업군 이직률인 4.9%의 3배 이상에 달했다. 높은 이직률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조건이 지적된다. 이뿐만 아니라 같은 기관의 ‘2021 정기 실태조사’에서는 ▲업무 과다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구분 ▲업무 외 직무 수행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고 간호사의 독립된 업무를 보장하는 ‘간호법’ 제정이 요구되고 있으나 의료계의 반발이 심해 난항을 겪고 있다.

 

한때 ‘국민영웅’ 간호사들 현재 갈 곳 잃어

 

간호사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듯하다. 의료법 제36조 5항에 따르면 각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환자 수에 맞게 의료인의 정원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최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병원이 간호사 법정 정원 기준에 미달하고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7~2019년 의료기관의 간호사 법적 정원 미준수율은 조사 의료기관 중 43%(4,775건)에 달한다. 이에 대해 정부가 행정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2015~2019년 119건으로 매우 드물었다. 현행법상 실질적인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역부족인 상황이다.

간호사 채용 부진은 이전부터 지속한 고질적인 문제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한계에 달했다. 당시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간호 인력이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에 대규모 추가 채용이 이뤄졌다. 이처럼 간호사들은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에 최전선에서 노력했으나 코로나19 유행 세가 줄어들자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됐다. 대거 신규 채용으로 늘어난 간호사 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실시된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의 ‘코로나19 병동 간호사 부당근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병동 폐쇄 후 코로나19 치료에 참여했던 간호사 중 일부가 기존 근무 부서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이들 중 60.3%는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 압박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코로나 병동이 폐쇄된 후 기존 부서로 돌아갈 수 없어진 간호사는 잉여 인력으로 취급되며 ‘헬퍼’ 역할만 맡게 됐다. 헬퍼는 기존 근무부서와 상관없이 간호 인원이 부족한 부서를 전전하며 기본적인 업무를 도와주는 간호사를 의미한다. 이에 한 간호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쓰다 버려지는 소모품 취급을 당해 절망했다”며 한탄했다.

 

논란에 휩싸인 간호법 제정안

 

간호법이란 임금 및 근무 환경 등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다. 지난 2005년과 2019년에 간호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당시 의료계 내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합의를 보지 못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며 간호사 처우에 관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이에 간호계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다시 한번 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은 각각 간호법 제정안을 내놓았다.

현재 보건복지위원회는 3건의 법률안을 각각 본회의에 상정하는 대신 이를 통합한 간호법 대안을 제시했다. 해당 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와 더불어 환자의 간호 요구 및 요양 등을 위한 간호 행위로 규정한다. 또한 ‘간호사중앙회’의 설립과 간호사의 근무 환경 개선 및 인권침해 방지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17일 의결돼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상태며 간협은 신속한 정식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현 간호법 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의료법에 명시된 간호사의 업무를 단순 ‘진료 보조’에서 ‘의사의 지도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수행’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간호사의 업무에 있어 독자적인 수행 권한을 인정하는 내용이기에 논란이 일었다. 이에 간협은 1951년에 제정된 현 의료법이 기술 발전과 인구 노령화 등으로 변경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OECD 38개국 중 33개국이 이미 간호사 업무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법안을 시행 중에 있다며 그 효과성이 입증됐음을 피력했다. 국제간호협의회(ICN) CEO인 하워드 캐튼 역시 대한간호협회의 간호법 제정 촉구 활동을 글로벌 모범 사례로 평가하며 지지 사실을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의협은 간호법이 간호사의 이익만을 위한 법안이라며 그 공정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 간호사의 처우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해 다른 모든 보건의료인력과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기타 의료직종도 독립 법안 제정을 요구해 기존에 팀 체계로 이뤄지던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무너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타 의료 종사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간호조무사협회와 요양보호사 단체도 간호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제정안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에 ‘간호조무사 및 요양보호사의 관리 감독’이 포함돼 있는데 이 때문에 기타 보건의료 직종 고유의 업무가 간호사에 의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역시 간호법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법이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지나치게 확대해 기타 의료 종사자의 생존권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다.

 

간호법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

 

국민은 간호법 제정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입장이다. 보건복지위원회의 ‘위드코로나 시대 2021년도 주요 보건의료‧복지 분야 정책현안에 관한 국민 의식조사 및 정책적 시사점 연구’에 따르면 간호법 입법에 대해 ▲찬성 70.2% ▲반대 9.3% ▲잘 모름 20.6%로 찬성 여론이 다수다. 정치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간호법 제정에 긍정적 입장을 보인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은 여야 공통공약”이라며 입법 추진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간호사 업무를 단독 규정한 법안이 다수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간호단독법 ▲일본의 보건간호사조산사간호사법 ▲영국의 간호법 등은 1950년 이전에 제정됐다. 이외에도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포르투갈 등 수많은 나라들이 간호법을 입법화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간호사를 위한 단독법은 없으나 공중보건법 안에 간호사와 관련된 요건이 포함돼 있어 직종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국가들은 실질적으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독립적으로 인정하고 정당한 대우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현행법상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불명확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해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간호법,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간호사 1,016명을 대상으로 ‘감염병 위기상황에서의 간호사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58.9%의 간호사가 ‘업무 수행 중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답했고 ‘환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경험했다’는 답변은 67.1%에 달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7.7%는 ‘이직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한민국 간호계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발생할 경우 간호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간호사의 안정적인 업무 환경 보장 및 처우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간호법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여전히 의료계와의 협의가 요구된다. 간호사 외 다른 의료종사자의 처우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 의료업계 전체와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이번 간호법 제정 논란이 대한민국 의료인 업무 환경의 질이 향상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원한다.

 

 

김은서·유성규 기자
cat375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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