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산을, 홍콩의 외침

지난 9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이하 송환법)을 정식 철회하는 홍콩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송환법 철회를 주장하던 시위는 오히려 민주화 운동으로 그 성격이 넓어지며 격화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위의 발단과 전개를 The HOANS에서 정리해봤다.

정부 대 시민, 격동하는 홍콩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항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31일에 시작한 시위는 6월이 되자 홍콩 전역에 급속도로 번졌다. 홍콩 입법회가 송환법 도입을 추진하자 시민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세력이 커진 것이다. 6월 9일과 16일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각각 100만 명과 2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시위에 집결했다. 홍콩의 인구가 약 736만 명이므로, 홍콩 시민의 1/4가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인 셈이다. 경찰 측에서는 ▲곤봉 ▲고무탄 ▲최루가스를 동원해 시민들을 압박했고 시민들은 5년 전처럼 우산을 펼쳐 탄압에 맞섰다. 시위가 끊이지 않자 홍콩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시민들을 압박했다. 정치깡패들을 동원해 위협하는가 하면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무력진압이 빈번해짐에 따라 시위대 역시 무장하면서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시민들은 우산 대신 안전모를 썼고 철회하는 대신 민주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랜 대규모 시위 끝에 홍콩 정부는 송환법을 정식 철회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시위대가 해산하고 정국이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가 이뤄진 순간에도 거리를 행진하며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를 외쳤고, 송환법 철회를 위한 시위는 민주화를 위한 시위로 변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지난 10월 긴급법을 발동하고 복면금지법을 시행하는 등 반(反)중국 시위에 대한 대대적 진압을 예고했다. 체포된 시위자들에 대한 경찰의 성폭행 논란이 일고 고문치사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사태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계엄령 가능성과 무력진압의 공포가 가득한 홍콩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과거와도 사뭇 흡사하다. 정부와 시민이 민주화를 두고 긴 시간 대립하면서 홍콩은 더욱 아비규환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중국, 송환법 논란의 발로

시위의 전개를 살피기에 앞서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홍콩은 원래 중국의 영토였으나 19세기 중반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하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며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 ▲고도자치(高度自治) ▲항인치항(降人治港)의 원칙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가 두 가지 체제를 지니는 정치제도를 뜻하는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홍콩은 여전히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예시이다. 또한 홍콩은 고도자치에 의해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입법 ▲행정 ▲사법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보장받고 있다. 항인치항은 홍콩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 통치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이 보기에 ‘자치’는 유명무실이다. 우선, 홍콩 자치구의 수장인 홍콩 행정장관이 1200명의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선거인단은 ▲상공, 금융계 대표자 ▲전문업계 대표자 ▲노동, 사회서비스, 종교 등 분야 대표자의 직능단체 및 ▲홍콩 구의회 의원 ▲홍콩 입법회 의원 ▲홍콩 전국인민대표회의 의원 ▲홍콩 전국정협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야당은 이들 중 약 4분의 3을 친중파로 봐야 한다며 ‘체육관 선거’를 지적했다. 이에 더해 홍콩 기본법에 따라 최종적으로 중앙인민정부가 임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시민들은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베이징 당국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람 장관은 여론조사에서 30%대 지지율에 그쳤으나 50% 이상의 지지를 달리던 후보 대신 당선돼 국가보안법 재추진 등 거침없는 친중 행보를 보여 왔다.
허울뿐인 자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홍콩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바로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이었다. 송환법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지역이나 국가에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해당 국가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송환법은 범죄 진압에 있어 국제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대부분의 국가에 제정돼 있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의 미묘한 관계 아래 송환법이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여 부당한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례로 중국 권력층을 비판하는 서적을 판매하는 퉁뤄안 서점의 주주와 직원들을 중국이 납치해 조사한 것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 만약 송환법이 통과되면 반중 인사 탄압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홍콩의 민주주의가 더욱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은 송환법 철회, 그러나 시위대는 ‘불만족’

시민들의 여론이 거세지자 람 장관은 지난 6월 15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다. 특히 18일 기자회견에서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의 열기가 식지 않자 홍콩 정부는 7월 9일, ‘송환법은 죽었다(Bill is dead)’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은 발표였기에 홍콩 정부가 송환법을 재추진할 여지가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적확한 표현을 통해 송환법을 확실히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9월 4일에 대내외적 압박을 받던 람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officially withdraw the bill”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송환법의 공식 철회를 선언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된 지 약 석 달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더불어 람 장관은 담화에서 “안보실장이 차기 입법 회의에서 법안 철회 동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질적인 후속 조치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해당 보도 이후 홍콩 증시는 전날 대비 4% 가까이 폭등하며 홍콩 내외에서 송환법 사태와 그로 인한 정국의 불안정이 종결되리라는 기대감이 드러났다.
그러나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끈 단체인 민간인권전선과 홍콩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송환법 철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위대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람 장관의 발언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총 다섯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람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한 송환법의 공식적인 철회는 홍콩 정부가 이 다섯 가지 요구사항 중 한 가지를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위대의 입장이다. 시위대는 “다섯 가지의 핵심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의 “5 Key Demands, Not One Less”라는 구호를 외치며 나머지 네 가지 사항을 관철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사항은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이다. 앞선 네 가지 요구사항은 이번 시위의 발단 또는 진행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문제들이다. 그러나 행정장관 선출 방식과 관련한 논란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불과 5년 전인 2014년 9월부터 약 세 달간 이어진 ‘우산혁명’이 대표적이다. 우산혁명의 발단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이었다. 해당 선거안은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친중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로 제한한다. 시민들은 베이징 당국의 입장으로 편향된 인사가 홍콩의 대표가 되는 선거 구조는 부적합하다며 반발했다.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해 ‘미완의 혁명’으로 불리지만 행정장관 직선제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이번 시위 또한 송환법에 대한 반대에 그치지 않고 반중 양상을 띠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홍콩 독립운동가인 에드워드 렁 본토민주전선 총비서가 2016년 제시한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가 대표 구호 격으로 자리 잡은 것은 시위의 반중 성향이 짙어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백색테러’와 격화되는 시위

지난 7월 21일에는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 상의에 마스크를 착용한 다수의 남성들이 시위대를 향해 쇠막대기와 각목을 무차별하게 휘두르기도 했다. 이른바 ‘백색테러’로, 괴한들 중 일부가 아시아계 폭력조직인 ‘삼합회’나 친중 세력과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더욱 커졌다. 경찰의 출동이 늦어지고 체포 태도 역시 소극적이었음이 알려지면서 현재 친중 세력-마피아-경찰 세 세력 간의 공조 관계가 의심되고 있다. 백색테러 사건은 위 사건을 비롯해 3개월 사이 무려 9건이나 곳곳에서 발생해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연이은 백색테러가 홍콩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에 대한 진압이 강경해지는 만큼 시위대도 거세게 저항의 뜻을 표출했다. 특히 대규모 시위보다 게릴라식 형태의 시위를 늘려 정면충돌을 피하고 대응수위를 높여 갔다. 지난 8월 5일에는 20개 부문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파업이 대거 진행됐다. 파업으로 인해 당일 예정됐던 수백 편의 항공편이 취소되었고 교통편 이용에 큰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대규모 점거와 같은 행동을 통해 홍콩의 경제 및 시스템을 마비시키며 강력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시위대는 홍콩 부두에 게양된 오성홍기를 끌어내려서 바다에 던지거나 대형 성조기를 시위 현장에서 휘두르는 등 한층 거세진 반중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폭력 사태를 우려한 민간인권전선은 예정된 시위를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젊은이들 대다수가 시위 강행 의사를 보이며 자체적으로 운집하면서 격렬한 충돌 없이 시위가 마무리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늘어나는 사상자, 긴급법까지?

홍콩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도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시위자 한 명이 가슴에 경찰이 쏜 권총 실탄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가 경찰의 실탄에 맞은 것은 처음으로, 부상자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으로 밝혀져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홍콩 경찰은 “경찰의 중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며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민간인권전선은 “실탄 발사 영상을 확인하고 해당 경찰의 행동은 적절치 않다고 결론 내렸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적했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해당 사건을 통해 시위가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언급하며 시위대의 반정부 시위는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현지 소식을 전했다.
이 외에도 시위 도중 체포돼 실종됐던 의사 한보생 씨를 비롯한 시민들이 변사체로 발견되며 경찰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날이 선 대치 속에서 홍콩 정부가 긴급정황규례조례(이하 긴급법)를 근거로 시위대가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 정부 측의 일방적인 법안 통과에 시민들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나서며 해당 법안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긴급법은 영국 식민 통치 시절 제정된 것으로 행정 수반에게 사회 질서 회복을 위해 ▲언론·출판 검열 ▲통신 제한 ▲교통 통제 ▲인원의 억류·추방 ▲법원의 영장 없는 시설 내 진입과 수색 허용 등 사실상 모든 규제를 도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민간인권전선을 비롯한 시위대는 이 법안의 시행이 점차 확대 적용되어 홍콩 시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침해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홍콩 야당 의원 클라우디아 모는 긴급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긴급법은 더 많은 억압적인 규제 도입의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콩을 바라보는 시선

홍콩의 민주화를 향한 시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 시위가 장기전으로 진행됨에 따라 홍콩 경제에도 큰 타격이 가해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기관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한화로 약 6천억 원 정도가 홍콩에서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또한 자본 이탈의 속도가 더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홍콩이 아시아 경제 허브라는 타이틀을 잃을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폴 찬 모포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 GDP 성장률을 애초 예상인 2~3%에서 0~1%로 낮추고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진다면 올해 전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일 수도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주요 수익원인 관광 부문에서도 올해 8월에서 9월 홍콩을 찾은 관광객이 작년 동기 대비 39% 가까이 감소하는 등 뚜렷한 위축세가 관찰된다. 특히, 최대 성수기라 불리는 국경절 연휴 기간 홍콩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 120만 명에서 60% 넘게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홍콩 정부는 ▲상업용 차량에 대한 연료 보조금 지원 ▲여행업 재정 지원 등에 약 3천억 원을 투입하는 등 침체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외국 정치권의 반응 또한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홍콩 시위를 중국 정부가 천안문 사태와 같이 진압한다면 양국 무역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홍콩 시위의 결과가 다방면으로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 발언에서 중국 내 금기어에 해당하는 천안문 사태를 언급한 것은 중국 정부에 상당한 압력이라는 평이다. 미 하원도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을 비롯해 이른바 ’홍콩 3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법안들에는 ▲홍콩의 자치 수준 평가에 따른 경제·통상 우대 혜택 부여 검토 ▲홍콩 기본 인권 억압 책임 인물 미국 비자 발급 금지 및 자산 동결 ▲시위 진압 장비의 홍콩 수출 중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외에도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이 중국 정부의 홍콩 정책을 맹비난했으며 지난 8월 G7 정상회의에서는 ‘홍콩 시위가 폭력적인 사태로 진전하지 않도록 대응하라’는 성명이 채택됐다.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자치권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유럽연합의 성명과 같은 외국 정치권의 홍콩지지 목소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힘겨운 시위, 끝은 어디에

시민들은 몇 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촛불을 밝혀 홍콩 정부와 베이징 당국에 맞섰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영국 가디언에서는 시위 참가 후 무기력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실제로 시위 발생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위자가 최소 9명 이상이라는 내용을 보도하며 홍콩 시민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위대의 이러한 행동이 ‘순교’로 우상화될 수 있는 위험성에 주목한다. 안타까운 선택이 조국을 위한 영웅적 면모로 추앙받으면 연쇄작용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홍콩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폭언과 고문에 이어 극단적 선택까지 나타나는 홍콩 민주화 운동이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힘겨운 시위는 이제 홍콩 시민들의 일상이 돼버렸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할로윈에는 시민들이 홍콩 전역에서 할로윈 코스프레를 한 채로 시위에 참여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코스프레의 경우에는 복면금지법에 직접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위대 중 다수는 홍콩 경찰의 인상착의를 빌려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일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면을 쓰고 진압에 맞섰다. 홍콩 경찰 측은 “반정부 구호를 외치면 가면을 벗을 것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할 시 즉시 체포하겠다”며 대치를 이어갔다. 11월이면 지난한 시위는 대규모로 번진지 어느덧 반년이 된다. 베이징 당국의 지원을 받는 홍콩 정부와 본토의 치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서 정부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위대의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홍콩을 위해 그들이 다시 펼친 우산이 쉬이 접히지 않을 전망이다.

*백색테러 : 1795년 프랑스 혁명에서 백합 문양이 상징이던 왕당파가 혁명파를 보복한 것에서 유래됨. 권력자나 지배집단이 반정부 세력에 가하는 폭력적인 탄압으로, 현재는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테러로 의미가 확장됨.

 

권민규·박찬웅·조수현 기자
dmaria47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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