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눈에 비친 ‘마약’

더 이상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지난 4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언론의 마약 보도는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변모했다. 유명인 등 선정적인 소재 중심의 마약 보도는 큰 화제성을 가지기에 국민들에게 범죄의 모방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부는 마약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엄벌주의 원칙을 고수하지만, 일각에서는 마약 중독을 범죄와 동일시하는 시선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이제는 마약이 단순 범죄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약 관련 정보와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며 바뀌고 있는 마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The HOANS가 살펴봤다.

 

마약과의 전쟁, 승리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잃은 지 오래다. UN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내일 경우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지난 2021년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31.2명의 마약사범 수를 기록했으며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마약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강조해 왔다. 배우 유아인의 마약 논란과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등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은 가운데, 지난 4월에는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구호는 지금까지 별 영향력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 마약 밀수 적발 건수는 지난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마약범죄에 대해 검거율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의 비율이 높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의 숨겨진 마약 범죄의 비율을 검거율의 28.57배로 산정했는데, 이는 기존 대검찰청 중심으로 정부가 발표한 수치인 10배의 근 3배다. 마약 단속의 통계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지적 대상이다. ▲경찰 ▲검찰 ▲법무부 등 기관별로 집계가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 단속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범죄 단속 건수보다는 수사 자체의 방향성을 개편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

 

역대 정부는 마약 범죄에 대해 엄벌주의를 고수했다. 특히 검찰은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한 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구형하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선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치료와 재활 지원을 강조한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라 투옥과 격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대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마약으로 손상된 뇌를 치료하고 재활, 관리하지 않으면 회복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마약범죄는 타 범죄에 비해 재범률도 아주 높은 편이다. 지난 2021년 기준 마약범죄 재범률은 36.6%이며,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검거된 국내 마약류 사범은 2만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마약사범에 대한 통계가 존재하는 것과 반대로 치료 분야에 대한 데이터와 지원은 한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기관으로 지정된 21개 병원 중 13곳은 실적이 아예 없었다. 이들은 지난해 역시 환자를 받지 않았다. 이에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지금보다 폭넓은 치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 투약은 범죄지만 그 원인인 중독은 질병에 가깝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편 마약 중독자에 대한 처벌보다 치료가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독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는 것이 더욱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중독자 재활 입문에 도움을 주는 약물치료법원을 도입한 미국의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범죄의 무조건적 소탕보다 가장 중요한 중독성 낮추기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리마다 보이는 마약

 

강력한 처벌을 연일 외치고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찾기는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8월 마약과 같은 유해 약물과 관련된 표현을 식품 등에 표시하거나 광고에 넣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등 마약 관련 명칭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기에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업자의 사업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국회 심의를 거치며 전면적인 금지가 아닌 해당 표현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의 일부개정안으로 의결됐다.

마약류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이른바 ‘마약 마케팅’으로 아동과 청소년이 마약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제재 없이 접하게 될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약 마케팅을 제한하는 조례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통과됐다. 현재 해당 내용의 조례는 서울에서만 제정됐고, 경기도와 경상남도에서는 심사에 통과하지 못했다. 이는 마약이라는 용어가 가진 위해성의 해석 소지가 애매하며 상인들의 사적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5년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김기선 전 의원은 “마약이라는 단어를 일상생활 속에 쉽게 붙이는 것은 유해성을 무시하고 중독성만을 강조해서 벌어진 일이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만큼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인식이다. 마약 콘텐츠나 마케팅이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이전과 다른 접근 방법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디어가 광고하는 마약

 

오히려 과도한 보도와 언급으로 마약에 대한 장벽이 낮아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언론이 마약 범죄를 연예인 중심으로 보도하거나 지나치게 상세하게 다루는 등 자극적으로만 다루면서 언론 보도가 오히려 대중에게 마약을 접하게 하는 ‘마약 가이드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KBS 탐사보도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주요 언론사 11곳의 마약 관련 보도 중 약 25%가 연예인 중심으로 보도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유명인 중심의 마약 보도는 선정적인 접근으로 흐르기 쉽다고 지적한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선정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문제 원인과 치료 위주로 보도해야 하는데, 지금은 ‘연예인 A씨가 마약을 해서 잡혔다’는 식의 보도만 자극적으로 나갈 뿐”이라고 설명했다.

상세한 보도 역시 모방범죄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주요 시정 권고 자료집에서 지속해서 자제를 권하는 문제다. 지난해 자료집에도 마약 보도 뉴스가 ▲마약의 명칭 ▲가격 ▲구입 방법 등을 직접 거론하거나 쉽게 추측할 수 있도록 한다는 지적이 실렸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8조에도 약물 묘사에는 동기 유발을 제한하거나 구체적인 묘사를 피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앞으로 마약 보도에 더욱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바라보는 마약

 

마약 문제의 근본적인 한계는 중독 자체를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한편 대중에게 마약의 접근성은 나날이 높아지며 마약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이 가공되는 곳은 미디어 공간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처벌·단속 강화보다도 마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가 먼저 필요한 상황이다.

 

임재원·김수환·김은서 기자

kb1115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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