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가 반갑지 않은 사람들

지난달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29년 만에 우승을 확정 지으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 너머 어두운 면도 드러났다. 한국시리즈 티켓 전량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디지털 기술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소외됐다. 74세 노인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티켓을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면 나 같은 노인들은 어떻게 보란 말인가”며 “MBC 청룡 때부터 팬이었는데 경기 한번 못 보는 게 너무 아쉽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디지털 소외란 무엇인가

 

디지털 소외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사회에서 관련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경제·문화·사회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디지털 취약계층으로는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금융 ▲문화·예술 ▲음식점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이뤄지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다.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된 대표적인 분야는 티켓 예매다. 지난 추석, 귀성길 승차권 예매가 100%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은 예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전 좌석 중 10%를 할당해 노인·장애인 우선 예매를 진행했지만, 이런 정보를 몰랐거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면 예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면 예매는 비대면 예매가 끝난 이후 소수의 잔여석 대상으로만 진행돼 잔여석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역이 붐비기도 했다. 이마저도 대부분 입석이라 서서 가는 불편함을 견뎌야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실시한 ‘2022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 고령층 중 인터넷을 연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28.5%에 그쳤다. 온라인 예매뿐만 아니라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인건비 절약을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의 소외는 더 심각해졌다. 이들에게 키오스크란 한 번 버벅거리는 순간 뒷사람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고 다음부터는 시도조차 꺼리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 와중에 삭감해버린 예산

 

윤석열 대통령은 UN총회에서 “디지털 격차 해소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내년도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격차 해소 기반 조성’의 내년 예산으로는 428억 6,400만 원이 편성됐다. 이는 올해 예산인 895억 1,000만 원에서 50% 가까이 삭감된 것이다.

예산 삭감 탓에 정부 예산 지원으로 운영하는 전국 1,000곳의 디지털배움터가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디지털배움터에서는 주로 노인과 같은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키오스크 활용 능력을 키우는 등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내년부터 디지털배움터 개소 수를 1,000곳에서 800곳으로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과기정통부와 전국 지자체는 디지털 강사 및 서포터즈로 올해 약 3,600명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절반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 의원은 “디지털배움터는 국민 반응이나 효과가 상당히 높다”며 “교육생들의 만족도가 목표인 80점을 넘어 96.3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내년 예산 삭감은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공언한 디지털 격차 해소를 역행하는 것이다”며 “디지털 격차가 더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디지털 격차 해소 관련 예산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편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지자체에서 200곳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계산하면 내년에도 1,000곳 정도로 같은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항상 소외 계층의 시각에서

 

요즘 사회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새로운 기술은 인류 전체를 이롭게 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디지털 취약계층은 그 기술의 이점을 누리기에 앞서 남들보다 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디지털 소외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다. 예산 삭감이 가져올 파장을 경계하고 디지털 교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동아리 ‘실버라이닝’

 

본교 봉사 동아리 ‘실버라이닝’은 스마트폰 사용의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스마트폰 교실을 운영 중이다. The HOANS가 실버라이닝 회장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윤(경영 22), 최유진(교육 22), 하성호(심리 18)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봉사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이: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손전등 켜는 방법을 연습한 뒤 끄는 방법을 까먹어 서로에게 밝은 빛을 쏘아대기도 했다. 대낮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듯해서 귀여운 장관이었다.

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한창 유행할 때 어르신과 같이 좋아하는 가수에 투표도 하고 응원전광판 앱을 설치해서 함께 응원 멘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전광판에 응원 문구를 고민하고 꾸미면서 소녀처럼 좋아하던 그 어르신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하: 자판을 잘 치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자판 활용법을 가르쳐 드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글을 입력하지 못하면 가족 또는 지인과의 소통에 제약이 생긴다. 소통의 방식이 바뀐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화가 한 사람을 가족 공동체에서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판 입력 방법을 배우신 뒤로 따로 먹을거리까지 챙겨줄 만큼 고마워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봉사활동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또 언제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지.

이: 함께하는 매일이 보람차다. 어르신들은 좋았던 거 있으면 바로 짚어주시고 자꾸 뭘 쥐여 주려고 하신다. “손주보다 낫다”, “스마트폰 수업 오는 게 내 업이다”, “너무 배우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뿌듯함을 안고 돌아갈 수 있다.

최: 편찮으시다면서도 이 수업은 꼭 들어야 한다면서 오시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그럴 때 동아리 활동이 어르신들에게 정말 의미 있는 활동임을 느낀다. 매일 토요일 오전 봉사 활동하러 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부원과 어르신들과 함께하다 보면 에너지를 얻어간다.

하: 영어 단어나 디지털 기기에만 있는 개념을 설명해 드리는 일이 어렵다. 예를 들어 와이파이나 모바일 데이터가 필요한 앱을 구분하는 방법을 어르신들께 설명해 드려도 잘 이해하시지 못할 때가 있어 곤란하기도 하다. 설명 방법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필요할 듯하다.

 

– 디지털 소외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문화 지체 현상의 일부라 생각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의 발달 속도는 아주 빠르지만, 그것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적응하도록 돕는 시스템은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교육 후반부 회차에는 키오스크 이용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등 디지털 소외현상을 여러 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최: 스마트폰 수업에 열정적이던 어르신들도 스마트폰 사용이 느리다고 자책하거나 겁을 내시는 경우가 많다. 이 활동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돼 누군가의 도움을 받겠지”하고 생각한다. 편리함과 신속함도 좋지만, 노년층을 배려하는 문화 또한 형성되길 기대한다.

하: 어르신들은 집단정체성을 반영해 자신은 노인이니까 당연히 디지털 기기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봉사활동 때 정보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디지털 소외 현상을 조금 더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키오스크의 경우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 압박감을 느끼시는데 너그러운 태도와 사회적 지지가 필요할 듯하다. 디지털 소외현상이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정상우 기자

jungsw060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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