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언어의 힘

며칠 전 영화〈컨택트(2016)〉를 시청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하고,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그들의 언어인 ‘헵타포드어’를 깨우치며 대화를 시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영화다.

영화 속 외계인이 사용하는 헵타포드어는 마치 붓으로 그린 둥근 원과 같은 모양새를 가진 비선형 문자다. 한글이나 영어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글을 쓰고 읽는 선형 문자와 달리 문장의 시작과 끝이 없을뿐더러 한 방향으로 글을 읽고 쓰지 않는다. 과거 시제와 미래 시제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화 속에서 헵타포드어를 깨우친 여주인공은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처럼 선형(liner) 사고에서 벗어나 일반인과는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게 된다.

 

“한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에 맞는 사고체계를 가지게 된다.”

 

영화의 한 등장인물이 말한 이 대사는 실제로 언어학계에서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 불리는 언어상대성 가설과 상통한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독일어에서는 남성명사지만 스페인어에서는 여성명사로 쓰이는 ‘열쇠’를 두고 각국 화자가 어떻게 기술하는지 살펴본 실험이 대표 근거로 인용되곤 한다. 독일어 화자는 열쇠에 대해 무겁다, 딱딱하다며 기술한 반면 스페인어 화자는 ▲작은 ▲빛나는 ▲값비싼 등 어휘를 사용해 기술했다. 서로 다른 성별 명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가른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도 위 가설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작중 등장하는 지배자는 소설 부록에서 ‘신어’를 만들어낸다. 신어에서는 free를 ‘~이 없다’라는 의미로만 사용할 뿐 ‘자유’라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 자유 또는 지적 자유와 같은 개념은 신어를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이를 통해 〈1984〉 사회 속 주민 저항과 반발을 막으려는 의도다.

이처럼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가설은 다양한 작품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언어학계에서는 언어 상대성 가설의 타당성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듯하다. 필자는 언어학도가 아닌지라 가설 타당성에 대해서는 깊게 알 수 없지만, 나름 고민 끝에 적어도 언어와 사고가 일말의 관련성을 지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두 가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한국인이 ‘우리’라는 관형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my family’, ‘my country’ 등 my(나의)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반면 한국에서는 ‘우리 가족’, ‘우리나라’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공동체 의식이 발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외국에 비해 가족적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고모, 숙부 등 친족 관계를 칭하는 언어가 발달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두 번째 이유는 오늘날 사회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만연해진 혐오 정서에 더불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혐오 표현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생각해보라. 김치녀, 한남 등의 표현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누가 김치녀와 한남인지, 누가 아닌지 구분하려 애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프레임을 씌우기 바쁘고, 김치녀와 한남으로 명명된 자들을 혐오하고 배척하고 있다.

애당초 혐오 표현이 생겨나지 않았더라면 그만큼 혐오가 줄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지 못한 언어가 좋지 못한 사고방식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나날이 혐오 표현이 늘수록 우리 사고는 혐오와 배척에 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물론 사견일 뿐이니 반박은 언제든 환영이다.

정채빈 기자
jcbid102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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