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나침반의 저주

선장 모자 쓰는 법이 아직 서투른 A는 이제 막 배의 함장이 됐다. 뱃사람으로서 내딛는 첫 발걸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파릇파릇한 야망은 이내 시들었다. 선임 뱃사람들이 쓰던 부정확한 자석반은 오차라곤 없는 신형 나침반으로 교체됐다. 바다 너머를 누비며 두근대는 모험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건너편 대륙으로 주문된 화물 운송 계약서가 대신한다. 선장실 벽을 메운 해도에는 이제 더 채워 넣을 곳이 없다. A는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 대가로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저주에 걸렸다.

가치 상실의 시대다.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열정과 이상을 말하기는 힘들다. 꿈을 꿀 나이라는 20대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말하는 이가 드물다. 사회가 고도화되며 새로운 가치가 싹 틀 여지를 찾기 어려워졌다. 공백을 채울 상상력 대신 목표를 빨리 달성하는 경주마적인 능력이 사회가 젊은이에게 바라는 기대가 됐다. 완성된 엄밀함은 축복이라고, 자석반의 오류가 주는 불안감과 빈 해도를 바라볼 때의 두려움을 스스로 아느냐고 의문이 들 때면 괜스런 자책만을 더한다.
문제 의식은 20대를 넘어 모든 사회 구성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 막 경제 개발에 나섰던 시대에는 ‘잘 살아 보세’라는 힘찬 구호가, 독재 정권의 말미에서는 ‘조국의 민주화’라는 숭고한 모토가, 21세기에 막 들어서는 ‘권위주의 타파’ 열풍이 사회 구성원들을 이끌었다. 역사에 남은 가치는 불안정성과 희박한 가능성 사이에서 움텄다. 현재 사회 저변에 깊숙이 깔린 가치관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바탕으로 일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변화하는 시대상이 새로운 사회 담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들 심화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갈등과 균열이 공감을 가린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시대 정신 대신 기초가 얕은 부실한 담론 여러 개가 사회에 병존한다. 공동체를 여러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고 구성원 간의 반목과 갈등만을 키운다. 우리 공동체의 가치 모색은 모래톱에 좌초했다. 손을 걷어붙이고 밀지 않으면 물 위로 뜰 수 없다. 언제부터였을지 모를 사회적 관성만이 점차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꿈을 대신하고 있다.

가치 방향성을 어디로 잡을 것인지는 구성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가치에 대한 고민과 건설적인 담론을 포기할 때 그 자리는 염세적 허무주의만이 자리하게 된다는 점이다. 진정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공동체의 ‘효율성’과 ‘가치’가 별개이며, 가치에 대한 담론 부재가 구성원들의 열정과 동인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가치관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수많은 개인들은 공동체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열정과 꿈은 비어있는 곳을 채우면서 날개를 편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가치 담론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 나가는 시도가 절실하다. 공동체가 비록 고도화되고 거대해져서 우리의 가치관과는 상관없는 외적 요인, 혹은 거대한 흐름에의해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 결국 방향을 주도하는 것은 공동체를 이루는 행위자들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관성의 알을 깨고 나가 우리의 미래를 주도하자.

 

최승원 기자
202015006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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