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인격을 담는 지갑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가계와 국가 모두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기고 있다. 지속된 경제 침체는 생계형 범죄를 증가시키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최근 화제가 된 몸이 불편한 데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일감이 끊겨 열흘을 굶다 구운 달걀을 훔쳐먹은 40대 일용직 노동자에게 검찰이 징역 18개월을 구형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남성의 이야기는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굶주림으로 빵을 훔쳐 오랜 옥살이를 한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코로나 장발장’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러한 생계형 범죄는 생존이라는 본성과 직결된 금전적 여유가 부족할 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이나 법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음을 절절히 보여주는 예시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돈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만의 특권으로 여겨지는 생각, 더 나아가 도덕적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 느끼게 한다.

 

“몰랐나, 원래 인격이라는 게 지갑에서 나오는 법이지”

 

문득 영화 ‘도둑들’에서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금전적인 여유가 인격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대사가 담고 있는 의미이다. 인격도 부유한 사람들이나 갖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블랙 유머였을 것이다. 이 짧은 대사 한마디는 인격과 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사람으로서 품격’이란 뜻의 인격이 지갑에서 나온다는 말은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으로 남는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원래 지갑에 들어있어야 할 돈이 없다면 인격이 돈을 대신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우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원하는 물건과 교환한다. 코로나 장발장은 생존을 위해 구할 수 없던 돈 대신에 지갑 한쪽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인격을 달걀과 교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도둑들에서 지나가는 듯한 대사는 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성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들렸다.

인격마저 지불한 코로나 장발장에게 사회는 상습적인 절도라는 이유로 징역 18개월이라는 가중처벌을 내렸다. 사회가 개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목적 중 하나는 범죄 예방에 있다. 형을 내림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범죄를 예방할 뿐 아니라 범죄자 또한 형벌 이후에 재범을 예방하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장발장에게 이 기능이 잘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생계형 범죄는 특성상 궁핍한 환경 속에서 구직 활동이 어려워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 번 범죄를 저지르고 나면 ‘감방에 갔다 왔다’는 꼬리표가 붙어 취업 기회가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궁핍한 상태는 지속되고 다시 생계형 범죄를 반복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사회는 이런 범죄자를 사회와 일정 기간 격리하는 보안의 기능에서 형벌의 역할을 다 했다고 여긴다. 범죄 행위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계형 범죄의 재발에 대해서 예방의 기능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적절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아래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노동시장이 형성되며 오래전에 상품화됐다. 그러나 코로나 장발장 사례처럼 인격같이 인간적인 모습까지 금전적 가치로 환전돼 시장의 거래수단으로 사용되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것조차 알지 못했던 코로나 장발장은 듬성듬성 구멍 나 있는 사회의 안전망 바깥으로 빠져나가 있었다. 사회가 지켜주지 못해 일어난 일에 대해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일이다. 강도 높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루빨리 사회의 안전망이 빈틈없이 메꿔지길 바란다. 한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생계형 범죄를 그만둘 수 있도록 말이다.

 

 

김동현 기자

justlemon22@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