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대학가 총여학생회, 총여의 미래는?

서울지역 유일하게 남아있던 연세대학교(이하 연세대)의 총여학생회 PRISM(이하 PRISM)이 2019년 1월 7일 학생총투표를 통해 폐지됐다. 지금까지 대학가의 많은 운동을 이끌어왔던 총여학생회(이하 총 여)가 폐지됨에 따라 찬반 입장이 분분하다. 이에 The HOANS가 총여의 역사와 역할, 그리고 총여 폐지를 둘러싼 여론을 정리해봤다.

총여의 역사와 개념

총여란 말 그대로 여학생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워진 단체 이다. 대학총여는 1984년 본교와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뒤, 한때는 30개의 학교에서 잇달아 만들어질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80년대 총여는 사회 전반, 그리고 대학 내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이끌었고, 기업 채용의 남녀차별이나 성 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총여의 반성폭력 운동이 확대되면서 학내 성폭력에 대항하는 학칙 개정이나 대응 제도 확립을 이뤄냈다. 총여는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1996년 한국대학총학생연합 성추행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1997년 성 폭력특별법 제정 및 개정에도 시위를 통해 큰 몫을 했다. 특히 본교 총여는 1983년 학내 교지 <석순>을 창간했다. 이 시기 총여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확립하고 자치활동을 통한 민주시민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독립적 기구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렇게 여성의 인권을 대변해왔던 총여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점점 그 존재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며 폐지되는 추세이다. 근래에 들어 총여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인권을 보호하는 사업에 집중하면서 총여의 업무를 총학이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또한 총여가 여성주의 를 내세우면서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인권 등 광범위한 인권운동을 펼친다면 총여의 회원을 여성으로 한정하거나 총투표에서 여성만을 유권자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총여의 정체성 혼란 속에 건국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는 총여를 총학생회의 산하 기구로 편입했다. 본교는 총여를 다른 학내기구로 대체했다.

마지막 총여도 역사 속으로

서울권 대학 중 현재 유일하게 총여가 남아있는 연세대는 한때 연세대 총학의 산하기구였던 여학생부를 1988년 독립시켜 총여를 신설했다. PRISM이 폐지된 시발점은 은하선 씨의 강연에서부터이다. 2018년 5월 24일 PRISM과 인권축제 기획단의 주관 하에 은하선 씨의 강연이 개최됐다. 그러나 은하선 씨는 과거 예수 십자가 모양의 자위 기구를 판매하고, 자신이 출연한 방송에서 거짓 전화번호를 퍼트리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5월 24일 연세대 내에서는 강연 개최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는데,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크레센도’의 단체 채팅방에서 한 학생이 시위자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어 게시하자 이를 규탄하기 위한 서명운동 또한 진행됐다.

이후 강연 강행과 총여의 행동에 반발한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제29대 연세대 총여학생회 퇴진 및 재개편 추진단(이하 추진단)이 결성됐다. 추진단은 6월 13일 학생총투표를 소집해 총 여학생회 재개편 요구안을 투표에 부쳐 가결했다. 재개편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재개편 추진단은 해산했고, 이후 총여학생회폐지위원회(이하 총폐위)가 6월 26일 신설됐다. 총폐위는 과거 추진단을 통한 총여와의 소통이 잘 진행되지 않았고, 총여의 존재 명분이 없다고 판단해 총여 자체를 폐지하고 ‘성폭력담당위원회’(이하 성폭위)를 신설하는 것으로 대체하고자 만들어졌다. 총폐위 측은 성폭위의 기조가 “성폭력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룸으로 학내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보다 안전한 학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7월 10일 총여 재개편 관련 간담회가 실시돼 재개편 프로젝트팀이 구성되고 재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어 9월 3일 총여학생회장 송새봄(연세대 철학 15)씨가 사퇴하고 프로젝트팀은 11차에 달하는 회의를 개최하며 총여 체제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총폐위는 11월 26일 총여와 관 련된 회칙을 삭제하고, 성폭위를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학생총투표를 발의하기 위한 공식서명을 진행했다. 총투표는 지난 1월 2일부터 4일까지 총 3일간 진행됐으며 투표율 54.88%, 찬성 78.92%, 반대 18.24%의 결과로 연세대 총여 폐지가 결정됐다. PRISM 측은 투표가 강압적으로 진행됐으며, 만장일치를 지향하는 중앙운영위원회가 다수결을 따랐다는 것에 실망을 표했다. 또한 기구는 폐지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자치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주장했다.

총여 폐지를 둘러싼 논란

PRISM의 폐지 절차가 진행되면서 총여의 존재 의의를 비롯해 폐지 찬반에 대한 논란도 뜨거워졌다. 폐지를 찬성하는 측의 가장 큰 논거는 총여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들을 총학 차원에서도 해결할 수 있으므로 총여의 존재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총여의 업무는 ▲여학생 인권 보호뿐만 아니 라 ▲소수자 인권 보호 ▲전 학생 대상 복지사업 등으로 확장돼 왔다. 따라서 전체 학생을 대변하는 총학 또한 동시에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총여를 따로 두기보다는 폐지하거나 성인권 침해사례 담당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등 기구 수준으로 축소하는 재개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총여 폐지 찬성의 다른 근거 중 하나는 편향적인 학생회비 사용에 대한 불만이다. 총여는 ▲생리대 배부 사업 ▲여학생방 관리 ▲여성질환 예방주사 캠페인 등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재원으로 성별에 관계없이 전체 학생이 납부한 학생회비를 사용한다. 총폐위는 “총여의 기본적인 위 치는 학생기구지만, 오늘날 총여는 근본 존재 원인을 망각하고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기구로 변질됐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총여 폐지가 ‘보편사회로의 완전한 편입’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학생들을 약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해 이들의 교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총폐위 측은 인터뷰에서 “여학생들을 약자라고 가둬뒀던 인큐베이터가 사라지기 때문에 학생사회는 오히려 전보다 더 평등해질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총여가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권익을 보호하는 인권운동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써 그 존재의의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총투표로 총여를 폐지하는 것은 인권운동에 대한 *백래시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PRISM의 전 학생회 장 민선 씨는 “인권운동으로써 총여의 활동은 누군가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번 총투표의 결과도 인권운동에 대한 백래시라고 생각한다” 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총여 폐지 투표는 총여의 필요성에 대한 담화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인권의식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총여 폐지에 대해 ‘다수의 횡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투표에 따라 총여가 폐지된 후PRISM의 선언문 ‘우리 아직 여기 있습니다’에는 총투표에서 지켜진 민주주의는 ‘다수결’밖에 없었다는 비판이 실렸다. 단순히 다수결을 통해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금지하고 그 단체를 폐지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이다.

총여의 내일

대학가의 총여는 사라지는 추세이다. 2015년 홍익대, 2017년 숭실대, 2018년 성균관대, 2019년 연세대 등 대다수 대학의 총여는 폐지되거나 공석으로 남았다. 총여는 80년대 초중반 당시 남초 사회였던 대학가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신설되고 확산됐다. 그러나 19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며 대학 내 여성인권이 신장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총여의 존재 의미가 흔들리면서 대학가 총여들이 폐지되는 추세로 이어졌다.

최근 총여는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권운동을 이어나간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폐지에도 불구하고 성균관대 성성어디가, 연세대 PRISM 등은 서로 연대하며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총여 폐지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 시대상과 필요에 맞는 총여의 존재 이유와 그 형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백래시: backlash. 정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

 

김효재·김동현 기자

hyojae196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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