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람 목숨이 먼저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딱딱한 법조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목숨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지난달 말, 21세기 한반도에서만큼은 이에 예외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새벽 어업지도선에 승선해 업무를 진행하던 중 사라진 공무원 이 모씨는 다음날 오후 북한 인근 해상에서 발견됐고, 총격음 이후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우리 정보 당국은 사실상 북한군에 의해 피살 및 소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 측의 잔혹한 대처에 규탄한 것은 자국민이 목숨을 잃은 중대한 사건인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정치권 일부 인사는 이번 사건을 남북 관계를 개선해나갈 초석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평화’가 도래하면, 그는 ‘잘’ 죽은 것일까.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비무장인의 피살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후속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눈 감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다. 한 여당 최고위원은 “민간인이 월북하려다 우리 군에 피살당한 적도 있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자 “국보법 위반자를 감싸면서까지 왜 의혹을 부풀리느냐”고 반박했다. 당장 북측에선 이 씨를 월북자가 아닌 악의적 불법침입자로 규정해 말이 맞지 않는 상황이다. 이 점은 차치하더라도 사안의 핵심은 월북 여부가 아님을 정녕 모르는 것인가.

피살된 공무원이 설령 월북을 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일지라도 북측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권에서 북한의 야만적, 반인륜적 민간인 사살이라는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죽어도 될 월북자’ 프레임 속에서 피살된 공무원 측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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