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강제 징용 현장

옛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부지 안에 위치한 조병창 부속건물의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6월 미군 기지 주위 토양의 오염 정화를 위해 조병창 부속 병원 등 3개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 청원 등에서 조병창의 역사적 의미를 이유로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이후 문화재청이 인천시와 국방부에 재차 유예 신청을 하면서 지난달 17일부터 철거는 유예된 상태다.

조병창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운영했던 무기공장을 일컫는다. 즉 일제 전쟁범죄의 흔적이고 그 안에서 행해진 강제 동원과 노동착취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총 8개의 조병창을 건설했으나 패전 후 조병창은 대부분 철거되거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캠프마켓 반환이 공식 결정되자 부평 조병창은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유일한 조병창으로써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졌다. 문화재청 또한 “원형 일부가 남아있고 정밀 조사와 고증이 필요한 건물”이라며 조병창 보존 의견에 힘을 실었다.

한편 국방부는 환경공단과의 조사에서 해당 건물이 중금속과 유류에 의한 안전 부적합 판정을 받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물론 주위 토양 오염을 정화하는 것은 주변 지역 주민의 안전과 원활한 부지 이용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오염 상황과 역사적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없이 내려진 철거 결정은 성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더해 비용의 문제로 인해 역사적 의미가 큰 유적을 철거하는 것의 적절성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복원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한 번 철거된 건물의 역사적 의미가 온전히 복원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변 토양 오염 등 문제를 고려했을 때 보존만이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걸맞은 논의가 필요함은 분명하다. 인천시, 국방부, 전문가, 시민, 관계자의 협업으로 조병창의 가치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거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