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타조사는 정녕 무실해졌나

지난달 26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또 하나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조사) 면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예타조사는 대규모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경제성을 평가하는 예비조사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건설·정보화사업’은 예타조사를 통과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는 해당 훈령에 포함된 면제 조항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예타조사를 면제받은 국책사업 규모는 약 70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신공항 법안이 통과되며 누적 면제금액이 80조 이상으로 늘었다. 정치권에서 조사 면제를 남용하는 이유는 대부분 토건 개발을 통해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서다. 이번 특별법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기에 처리됐다. 경제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재정 투입은 국민 전체에게는 손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예타조사를 면제했다는 변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타조사 평가 기준에는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미개발된 지역을 위한 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건설사업의 경우 수도권은 경제성과 정책성만을 바탕으로 사업 추진을 결정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지역 균형발전 가산점을 따로 부여받는다. 가산점을 포함해서도 예타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들은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지역 균형을 위해 조사를 면제한다면 그것은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원활한 국가 경영과 국민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원칙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예타조사 면제가 관행처럼 자리 잡는다면 재정 악화는 물론이고 국정의 기본 질서도 위협받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침체하는 경제 상황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민의 등에 더 큰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정계가 각성하여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정치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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