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후진기어를 넣고 이념 전쟁으로 “좋아! 빠르게 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쟁점으로 부상하며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국방부는 홍 장군이 ▲공산주의 ▲빨치산 ▲연해주 사건 참여 이력이 문제 된다고 주장하며 육군사관학교 내부에 설치된 흉상 철거를 강행했다.

국방부는 해당 내용을 담은 공식 문서를 발표하고도 기자회견에서 잇따른 질의에 입장을 번복하는 서투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역사학계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내부 의견만을 갖고 몰아붙인 국방부를 향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뜬금없이 시작된 흉상 철거 논란의 배후는 사흘 후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입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에서도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조작, 선전·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다”면서 격려사를 빌어 국민을 상대로 한 이념 전쟁을 선포했다.

어쩌면 철거 논란은 이념 전쟁의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해방 직후로 돌아간 게 비단 정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첨의 문법 역시 회귀했다.

그 격려사에 대한 답사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시커먼 먹구름 위에는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면서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낸 구국의 지도자, 우리 민주평통 의장이신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태양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은 역사를 찾아봐도 드물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민족의 태양’으로 추앙받았고, 북한 헌법에는 ‘김일성 동지가 민족의 태양’이라 나오는 구절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북한에만 뜨는 줄 알았던 태양이 남한에 다시 뜬다는 이야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이런 시대착오적 작태가 나라를 어디로 이끄는지 뉘우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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