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후문] “대한민국 평균”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 〈마스크걸〉을 봤다. 주인공 모미는 음악적 재능이 있지만, 외모로 인해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아간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을 채우지 못한 열등감으로 모미는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예쁜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우상화해 짝사랑한다. 한편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몸매를 드러낸 채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모미는 자기 삶에서의 괴리에 혼란스러워하던 중 각종 사건에 연루되고, 성형수술을 거치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모미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를 통해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타인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SNS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연출된 세상’을 자신의 일상인 것처럼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car)와 가난(poor)의 합성어로 고급 외제차를 소유했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단어 ‘카푸어’, 실력을 갖추지 않고 골프를 하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단어 ‘골프 허세’ 등 작년에 만들어진 신조어들이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올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평균 올려치기 문화’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인생에 대한 이미지가 상향 평준화돼 있다는 것이다. 요즘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서울권 대학 졸업’, ‘월급 세후 400만 원 이상’, ‘수도권 아파트 소유’ 등 대단히 비현실적인 조건들이 청년들의 ‘평균’인 것처럼 정의해 놓은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연히 실제 평균과는 상당히 괴리된 내용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속해 있는 나는 ‘과연 남들이 정의하는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평범함’에 대한 삼엄한 기준이 생기고 결국 청년세대 전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평범해지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 모든 사람이 평범하다면 우리 사회는 역동적이지 못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될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낙관주의와 반항 정신인데 말이다.

얼마 전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인생의 4분의 3을 빼앗기고 있다’는 글귀를 보았다. 사회에서 정한 평균을 따라가려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평균도 결국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모래 기둥 위의 성 같은 존재다. 대부분이 가식과 거짓인데 SNS를 보면 우리는 자신만 불행하고, 결혼과 출산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낀다. 이 흐름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 자신은 내가 믿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 허황된 평균이라는 잣대로 날 평가할 때 새로운 표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 온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을 존경하면 다른 사람도 그대를 존경할 것이다’는 공자의 말을 되뇌어 본다.

이 글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당연한 소리를 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SNS 속 사진이 아니라 ‘나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부풀려진 ‘평균’에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인형진 기자

dundisoft@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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