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주 69시간 근무제, 개혁일까 개악일까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일명 ‘주 69시간 근무제’라 불리는 근로 시간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이에 The HOANS에서 근로 시간 개혁안에 각각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밝힌 김진영 교수 그리고 우원식 의원과 그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찬성 측 –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前 한국노동경제학회장)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69시간 근무제에 어떤 입장인지.

언론에서 주 69시간 근무제라고 칭하지만 요지는 근로 시간 개혁이다. 주 69시간은 일을 몰아서 할 때 한 주에 최대한으로 근로할 수 시간으로, 평소에는 주 52시간이 적용된다. 게다가 어떤 특정한 주에 69시간을 일하려면 노사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시급한 이슈다. 세계경제포럼의 국제경쟁력지수를 보면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효율성 지수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근로 시간 개혁은 필요하다.

 

정부가 근로 시간 개혁을 시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가 아닌 월·연 단위로 고정하고 그 안에서 시간 배분을 유연하게 하자는 목적이다. 목적대로라면 한 주에 몰아서 일하고 다른 주에는 휴가를 모아 휴식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만약 연 단위로 관리 단위를 정하면 개혁안에서는 한 해에 최대 440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이는 주당 12시간씩 연장근로가 가능한 현행 제도에서 한 해에 최대 624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것과 대비하면 약 70%에 해당한다. 휴가 시간은 더 늘어나는 셈이다.

 

근로 시간 개혁이 가져올 이점은 무엇인지.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노동자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한다. 노동자에 대한 국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직장에 만족하지 않는 한국 노동자의 비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는 노동시장이 경직돼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파트타임 근무자의 비중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출산·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

 

근로 시간 개혁이 과로를 부추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번 개혁안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했다. 앞서 말했듯 연장근로를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합의도 필요하다. 만약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시키면 불법이고 사용자는 처벌받게 된다. 물론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 ‘69시간 일하고 장기휴가 간다는 말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지.

노동자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 시간 저축계좌제’가 포함된 것으로 아는데, 이를 이용하면 몰아서 일하고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 제도가 실제로 얼마나 자주 활용될지는 시행해봐야 알 수 있다.

 

윤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큰 틀에서 봤을 때 맞는 방향이라 본다. 정부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개혁하면 반발이 클 수도 있기에 이번 개혁안에서는 근무 시간조정과 임금체계 개혁에 초점을 두고 최소한의 개혁안을 내놓았다고 보인다. 정부의 개혁안이 엄청 혁신적이지는 않다. 연장근로시간을 월, 분기 연 단위로 유연화하자는 의견은 예전부터 나왔고 이번에 구체화한 것이다. ▲이직 ▲해고 ▲대체근로 문제 등 고려해야 할 노동시장 유연화 이슈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근무 시간과 관련해 앞으로의 어떤 방향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정부도 결국 노사 간의 사적 계약에서 벗어난 제삼자이기 때문에 역할이 제한된다. 그래서 문화·사회적인 규범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근로 시간은 긴 편인데 근로 시간당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짧은 시간 안에 축약된 성장을 한 우리나라만의 관습일 수도 있는데, 근로 시간에 사적인 일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시간만 채우면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듯하다. 이제는 일할 때 확실히 일하고 일하지 않을 때는 확실히 쉬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근무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반대 측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69시간 근무제에 어떤 입장인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은 한마디로 ‘저녁 있는 삶의 폐기’라 할 수 있다. 노동을 줄이고 워라밸을 지키기 위해 장시간 노사정위원회와 국회가 8년간의 논의 끝에 2018년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주 69시간 근무제는) 주 52시간의 안착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은 퇴행적인 ‘과로사 조장법’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주 69시간 도입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정부가 69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주 52시간이 안 지켜지는 업종이 많아 탄력적으로 운용하게 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안 지켜진다면 잘 지켜지도록 환경을 조성해야지, 근무 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한참 잘못된 방향이다. 이미 중소기업이나 IT·온라인 게임업계처럼 프로젝트 성으로 일하는 곳에서는 마감 시한을 앞두고 밤낮없이 일하는 ‘크런치 모드’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시간을 더 탄력적으로 운영해서 더 많이 일하게 풀어준다면, 장시간 근무를 정부가 법으로 장려하는 꼴밖에 안 된다.

 

– 69시간 근무제가 가져올 폐해는 무엇인지.

현재 심각한 경기둔화와 일자리 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근무 시간 개편은 자칫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사람이 많은 근무량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또 다른 근무자를 채용할 유인이 없게 된다. 중소기업의 여러 가지 고충도 이해하나 중소기업이 월 100시간, 1년 720시간까지 연장근무를 늘린다면 누가 중소기업에 가서 일하려 할지 반문하고 싶다. 오히려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 69시간 근무제가 과로를 부추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번 근무 시간 개편방안에서 69시간 노동을 하기 위해선 다음 근무까지 11시간의 휴식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 11시간 휴식이 없다면 최대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주 64시간을 11시간 휴식 없이 일하게 될 경우, 24시간 철야 근무도 문제 되지 않고 사흘 연속 밤샘 근무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4주 평균 근무 시간 64시간이 넘으면 뇌혈관 및 심장 질병 발병 등 소위 과로사와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주 69시간 근무제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에 있어서 절대적 후퇴다.

 

– ‘69시간 일하고 장기휴가 간다는 말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지.

있는 휴가도 다 못 쓰는 곳도 많은데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어라’는 정부의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미 정부가 2015년부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가저축제’ 제도를 실험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매년 11일씩 연가를 3년 치 몰아서 일하고 33일 휴가를 연속으로 쓸 수 있게 했으나 막상 휴가를 쓰려고 하자 일은 많고 눈치 보는 사람도 많았다. 장시간 노동은 법제화하면서 휴식권 보장은 인식 개선 차원으로 두면 안 된다. 노사 조직률이 14%에 그치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69시간 근무 여부를 결정한다면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 정부의 69시간 근무제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한 마디로 ‘전근대적인 과거로의 회귀’다. 근무 시간 개악은 쉴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 스스로가 결정할 기회를 박탈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녁 있는 삶과 워라밸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근무 시간과 관련해 앞으로의 어떤 방향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노동의 질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주4.5일제나 주4일제로 가야 한다. 국민적 합의와 동의도 얻지 못하는 주 69시간제는 당장 철회하고 국민이 행복한 삶, 워라밸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정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정상우·유성규 기자

jungsw060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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