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하는 안암 상권

점심시간이면 친구를 찾기 힘들 만큼 인파로 붐비던 정경대 후문은 추억 속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반년 넘게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그로 인한 비대면 수업은 안암 상권에 큰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역시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룰 2학기 개강을 기해 The HOANS에서 코로나19로 시름하는 안암 상권의 현황을 짚어봤다.

 

고려대학교 상권은 캠퍼스를 둘러싼 형태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본교와 함께해왔다. 초기에는 본교 정문 및 제기동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상권을 형성했으나 점차 안암동 로터리 주변으로 중심상권이 이동했다. 2000년 12월 안암역 개통 후에야 본격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안암역 사거리에서 시작되는 참살이길 상권이 성장했다. 본 기사는 ▲개운사길~정경대 후문 ▲안암역~안암오거리(참살이길 및 이면도로) ▲이공계 후문 앞을 통칭하는 ‘안암 상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고대생과 동고동락

안암 상권은 20대 인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전형적인 대학상권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0년 6월 인구분석 자료에 따르면 안암 상권의 유동인구는 20대가 23%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주거인구 또한 20대가 29.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안암 상권은 특히 20대 중에서도 본교 재학생이 주요 소비층이다. 부족한 문화 자원 탓에 타 지역에서의 유입 인구가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촌, 홍대입구와 같이 서울시에서 손에 꼽는 대학가는 영화관, 쇼핑몰 등 다변화된 유흥시설을 보유한 데 비해 안암동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게의 폭이 좁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현재 고등학교 한국 지리 교사인 김 모(지교 87) 씨는 “안암동엔 상대적으로 이용자 수가 적은 6호선이 지나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훨씬 접근성이 좋고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된 주변 대학가를 택한다”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본교에 의존하던 안암 상권은 코로나19 사태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학기 강의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본교 학생이 주를 이뤘던 안암동의 유동인구가 대폭 감소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19년 5월 안암역 일일 승하차 평균 인원은 각각 16,428명, 16,533명이었던 반면, 2020년 5월엔 8,224명, 8,356명에 불과했다. 이는 2019년 7~8월 일일 승하차 평균 인원인 11,995명, 11,902명보다도 낮은 수치로 지난 학기에 방학 기간보다 적은 왕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년 1학기 초부터 안암동에서 자취 생활을 해온 이 모(경영 19) 씨는 “지난 학기에 수강한 수업이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돼 자취방에 머문 적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가끔 동아리 활동을 위해 안암동에 올 때도 놀랄 만큼 거리가 한산했다”며 안암 상권의 불황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데이터로 보는 경제적 충격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권정보시스템을 기반으로 개운사길부터 안암오거리로 이어지는 안암 상권을 분석한 결과, 올해 7월 집계된 안암 상권 내 음식점 수는 총 340곳으로 작년 12월 대비 30곳(-8.11%)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폐업하지 않은 음식점도 매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안암 상권 내 음식점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대비해 약 반년 만에 48.79% 하락했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세를 보이던 4월과 5월엔 해당 업종의 매출액이 전월 대비 각각 7.3%와 8.14% 소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감염이 산발적으로 계속되고 있어 코로나19 발병 이전 수준의 매출액까지 도달하기엔 갈 길이 멀다. 또한 최근 기록한 매출액의 상승세마저도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집단감염 여파에 의해 다시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용실과 복사대행업체를 포괄하는 생활서비스업종은 52곳에서 53곳으로 업소 수가 1곳 증가했다. 그러나 매출액의 감소는 더욱 뚜렷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대비해 약 85.2%의 매출이 줄어들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다만 해당 업종도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4월을 기점으로 매출액이 상승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노래방, PC방 등으로 대표되는 오락·여가업종은 안암 상권 내에서 코로나19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업종에 해당한다. 업소 수는 31곳에서 33곳으로 2곳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28.24% 감소해 세 업종 중 가장 적은 감소 폭을 보였다. 5월엔 매출액이 전월 대비 21.96% 상승하는 등 코로나19의 여파도 조금씩 회복해가는 듯했다. 하지만 오락·여가업종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위기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정부가 지난달 18일 노래방과 PC방을 비롯한 12개 업종을 고위험시설로 지정함에 따라 안암 상권 내 오락·여가업종 역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로 듣는 경제적 충격

코로나19 확산 이후 안암 상권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중식당 ‘언니네 반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사실상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된 후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어려운 사정을 전했다. “언니네 반점은 그래도 기숙사와 빌라 근처에 있어 적자 직전의 현상 유지는 가능하지만 참살이길에 위치한 상점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며 안암 상권 전역을 향한 우려를 표했다. 이어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약속과 모임을 안암 상권 내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카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암역 4번 출구 옆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는 “8년이나 이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해왔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은 처음”이라며 “코로나19 발병과 장마 등의 악재가 겹치며 매출이 70% 가까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임대료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올라 “전에는 소상공인지원금을 받아서 임대료를 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가게를 유지하기도 벅찬 현황을 전했다. 참살이길에 위치한 칵테일 바 ‘더 헙’을 운영하는 C 씨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 2월 매출이 60%가량 줄었으며 “이후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지만 다시 감소하는 모양새”라고 밝혔다.

안암동 1가~5가를 관장하는 한국외식업중앙회 성북구 지회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관계자 D 씨는 “안암에는 주로 학기 초에 이뤄지는 신입생 모임을 비롯해 대규모 인원의 모임을 기대하고 자리 잡는 소상공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반기뿐만 아니라 하반기에도 위축세가 계속될 것 같다”며 걱정스런 심정을 털어놨다. D 씨는 특히 “월세 700만원~800만원 대의 대규모 업소가 먼저 무너지고 작은 규모의 업소는 이득을 보지 못한 채 버티고 있다”며 상권 위축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안암 상권을 위한 도움의 손길

한국외식업중앙회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안암 일대의 가게에 배부하는 등 안암 상권의 위생 관리에 힘쓰는 한편 상권 중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D 씨는 ”정부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외식업 상인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자 했다”면서도 “여행 관련 업체를 비롯해 더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는 업체가 즐비해 상인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착한 임대인 운동 활성화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거는 등 상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덜어주기 위해서도 애썼으나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 건물주는 약 10%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마저도 “평균 2개월 정도의 단발적인 임대료 인하에 그쳤다”며 협회의 노력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본교생의 자발적인 도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말 박선우(경영 16) 씨를 필두로 결성된 프로젝트팀 Ensemble은 안암 상권을 중심으로 ‘선결제 쿠폰 발행 서비스’ Enemble 1.0을 운영했다. Ensemble이 업체에 선결제 금액을 지불하고 해당 업체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Ensemble 1.0은 지난달까지 ▲쭈불쭈불 ▲튄닥꾼닥 ▲카페 브레송 ▲히포크라테스 스프 ▲일곱평 ▲무르무르 드 구스토 총 6개의 상점과 제휴를 맺었으며 누적 매출 약 299만원, 선결제액의 75%가 회수되는 성과를 거뒀다다. 이에 더해 지난달엔 펀딩 신청 인원에게 9월 3주 간 최대 40% 할인된 가격으로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안암 레스토랑 위크 프로젝트’ Ensemble 2.0을 선보였다. 와인바 미뇽은 10시간 만에 주문이 마감되기도 했으며 Ensemble 측은 총 주문 144건, 총액 315만 7500원의 펀딩 금액을 마련했다고 알렸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는 고려대 맛집 정보 애플리케이션 ‘sofo’에서 업주들이 무료로 광고를 게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년 3월 기준 sofo에 매일 접속하는 적극 이용자층은 약 6,000명에 달해 큰 홍보 효과를 기대함 직하다. 고파스 측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총 80개 점포가 해당 서비스를 신청했으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올해 말까지 서비스를 연장해 운영할 계획이다. 덧붙여 고파스 대표 운영자 박종찬 씨는 “sofo에 후기를 올리면 획득할 수 있는 ‘고파스 코인’을 모아 교환이 가능한 상품 목록에 고파스 굿즈, 문화상품권, 커피숍 상품권 등을 2학기 중으로 추가할 예정”이라며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학생과 상권의 선순환을 돕는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쉽지 않을 비상

한편 본지가 인터뷰한 A 씨와 B 씨 모두 “2학기에 절반 정도의 학생이라도 대면 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나아질 것 같다”며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13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서 월말까지 200~300명 안팎을 기록하며 전국적 대유행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에 방역 당국은 지난달 19일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고, 대규모 확산세에 지난달 30일부터는 수도권을 대상으로 ▲오후 9시 이후 음식점 포장·배달만 허용 ▲프랜차이즈형 커피전문점 포장·배달만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실시했다. 이와 같은 코로나19 재확산의 여파로 안암 상권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제적 충격은 더욱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안암동에 학생들과 업주들의 웃음이 가득할 날을 기대한다.

*지난달 19일 기준 업소 수는 20년 7월까지, 매출액은 20년 5월까지의 자료를 제공한다.

 

조수현·김원겸·민건홍·이채윤 기자

shcho71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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