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 어디까지 왔나

지난 7월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보복하고자 일본이 경제전쟁을 감행한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면서 국내 반일감정이 고조됐다. 분노한 국민은 일본에 대응하고자 ‘일본 불매운동’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 기업 제품을 불매하고 일본 관광을 지양하는 불매운동 효과 여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으나 국민의 많은 참여와 관심 속에서 오랜 기간 진행 중이다.

NO JAPAN, 불매운동의 현주소

일본 제품과 기업 이름이 적힌 불매리스트가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며 불매운동이 추진력을 얻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불매리스트에 포함된 ▲닌텐도 ▲도요타 ▲무인양품 ▲아사히 ▲유니클로 ▲제트스트림 ▲ABC마트 등의 일본 기업 제품은 불매운동 이후 국내 수요가 급감했다. 특히, 지난달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의원이 공개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6월 마지막 주 국내 유니클로의 카드 매출액은 59억 4천만 원에서 7월 넷째 주 17억 7천만 원으로 70%나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같은 기간, 무인양품도 59%, ABC마트도 19% 감소했다는 집계는 불매리스트가 상당한 타격을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브랜드 전체 매출액은 같은 기간 102억 3천만 원에서 49억 8천만 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마트의 일본 제품 매출 전년 대비 감소율도 ▲맥주 62.7% ▲라면 52.6% ▲조미료 32.9% ▲화장품 약 20%로 나타났다. 일본 불매운동이 유명 브랜드 제품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하게 가시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확실한 불매운동을 위해 일본 기업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가 드러나 전범 기업으로 재평가된 기업도 적지 않다. 이번 불매운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노역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밝혀진 ‘오카모토’가 대표적이다. 오카모토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된 시기부터 일본 군부에 군수 물자를 조달해 왔다. 군수 물자 중에서도 특히 위안소에 콘돔을 공급한 오카모토는 이후 1944년 조선 경성에 콘돔 생산 공장을 세워 독과점으로서 일본군의 위안소를 공급처로 삼아 성장했다. 불매운동 이전까진 오카모토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독보적 1위였으나 오카모토가 전범 기업임이 밝혀지면서 오카모토에 대한 국민의 여론 또한 돌아섰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맞대응이 주된 목적이던 초기와 달리, 불매운동의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전범 기업을 심판해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목적이 새롭게 등장한 결과로 분석된다. 올해 불매운동 이전부터 꾸준히 일본 기업의 제품을 불매한 이정민(한국외대 정외 18) 씨는 “일본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반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외교와 경제문제를 떠나 국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불매운동임을 주장하며 역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강조했다. 오카모토뿐만 아니라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기린 맥주 등도 전범 기업임이 알려지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지분이 일본과 한국 양국에 동시 소유된 기업의 경우, 불매운동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현재 불매운동의 대상이 돼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다이소’는 사실 한국 기업이다. 일본 다이소는 2대 주주로 지분의 30% 정도를 보유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분류된다. 반면, 국내 다이소는 ‘아성HMP’를 대주주로 하는 엄연한 한국 기업이지만 일본 다이소와 국내 다이소를 하나의 다이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한일관계가 좋지 않을 때마다 다이소는 불매운동으로 인한 타격을 받아왔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이소 관계자는 “글로벌 시대에 외국 기업이 지분을 투자하는 일은 흔한데 이를 두고 불매운동까지 벌이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김규진(정외 19) 씨는 “애매하게 일본과 연관된 자국 기업의 제품을 불매한다면 오히려 자국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불매운동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확산하는 지금, 더욱 정확한 일본 기업 구분 기준에 대한 정립이 시급해 보인다.

차별성 있는 불매, 그 영향력은

엄밀히 말해 일본 불매운동은 이전부터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이는 주로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 ▲위안부 관련 망언 ▲독도 영유권 문제 등과 결부됐다. 그러나 이번 불매운동은 이전보다 온·오프라인을 통한 불매 여론의 장기적 노출과 전 세대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진다. 특히 SNS 계정에 달리는 해시태그는 이번 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 수와 불매운동의 효과를 체감하게 한다. 지난달 16일 14시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 생성된 #불매운동은 약 1만 8천 개, ‘#일본_불매운동’은 약 2만 개가 넘는다. 최근 일본의 화장품 기업 ‘DHC’가 일본 극우 논객들의 혐한방송으로 논란이 되자 ‘#잘가요DHC’라는 해시태그가 1천 개 넘게 달렸다. 지난달 11일 성신여자대학교 서경덕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DHC 불매 캠페인을 제안한 이래 놀라운 속도로 해시태그가 쌓인 것이다. 시민들이 해시태그를 십분 활용해 불매운동을 인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불매는 단순히 불매(不買)에 그치지 않고 불매(不賣)까지 영향력을 넓혔다는 점에서 기성 불매운동과 차별점을 지닌다. 편의점 업계는 지난달 1일 자로 ‘수입 맥주 4캔 1만 원’ 할인에서 일본 주류를 모두 제외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일본산 제품을 선물세트에서 제외했으며 대전시약사회에서는 경제보복이 철회될 때까지 일본산 의약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제품 수입량 자체가 크게 줄었음은 수치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관세청은 7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6월 기준 790만 4천 달러에서 45.1% 감소한 434만 2천 달러, 일본 맥주 수입량은 6월 기준 9천 462t에서 5천 131t으로 45.8%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관세청 자료 기준 작년 동기 대비 98.8% 급감한 수치다. 이외에도 6월 기준 7월 수입량이 ▲사케 69.4% ▲골프채 60.2% ▲가공식품 38.1% ▲화장품 37.6%로 일본 제품 수입이 전반적으로 큰 감소 추세를 보였다.

기업의 물건을 보이콧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 여행 불매운동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 주요 관광지 4곳인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후쿠오카에서의 8개 카드사 매출액은 6월 마지막 주에 약 165억 원을 기록했으나 7월 넷째 주엔 약 133억 원으로 19%가량 매출액이 감소했다. 뱃길에서도 승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부산해양수산청에 따르면 7월 1일 이후 지난달 18일까지 부산 기·종점 국제여객선 승객 수는 6월보다 ▲대마도 57.4% ▲시모노세키 40.6% ▲후쿠오카 37.5% ▲오사카 항로 36.8% 등 전반적으로 큰 감소 추세를 보였다. 부산항만공사의 주간 단위 분석 자료를 보면 7월 첫째 주 27.2%던 승객 감소율이 지난달 둘째 주에는 72.8%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부산과 대마도 이즈하라 항로를 다니던 여객선들은 지난달 18일부터 모두 운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여행상품의 시장 경쟁력이 더는 예전 같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불매의 화살, 어디를 향하나

일본 불매운동으로 또 다른 고충을 겪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국내 소재 일식집이다. 지난달 매일경제는 운동이 시작된 이후 매출이 절반가량 급감한 서울 소재 일본식 선술집의 사례를 보도했다. 이처럼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았더라도 점주들은 노심초사한다. 불매운동이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식문화를 멀리하자는 움직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가정식 브랜드 ‘후와후와’는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자사 공식 SNS 계정에 “국내 순수 브랜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젊은 고객층이 많은 강남역과 상수역 일대의 일식집 대부분은 “모든 식자재는 국산이다”라거나 “일본 맥주를 취급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고객의 불안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쉼터에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라고 홍보한 업소도 적지 않다.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갈등도 두드러진다. 불매운동이 길어지면서 참여하는 쪽과 참여하지 않는 쪽이 서로를 힐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참여 세력의 가장 큰 불매운동 반대 이유는 운동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선동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운동이 과열된 나머지 일본산 설비를 사용하는 병원을 가지 말자는 등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불매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사례를 통해 불매운동 전반을 폄하하는 자세는 우려된다.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운동이기에 감정이 선행되는 것은 필수적이고 언론은 운동을 평가하거나 계도하기보다 객관적 정보 전달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객관적 수치에 근거했을 때 불매운동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관세청 대일 수입실적 통계자료에 따르면 ▲소비재 ▲원자재 ▲자본재 가운데 지난해 전체 수입에서 소비재가 차지한 비중은 약 5.6%에 불과했다. 정부는 지난달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핵심소재 산업의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소재·부품 국산화 과제는 1990년대부터 제기된 과제였던 만큼 이번 대책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장기적·전략적인 과제 설정이 인력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와 언론 대부분이 불매운동을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판단을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 모(경영 19) 씨는 “불매운동을 비롯한 양국 갈등이 정치 유세와 마케팅에 이용되는 듯해 언론의 지나친 강조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는 의견을 밝혔다.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시작한 불매운동이 오히려 시민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시점이다.

복잡한 건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 현지 입장도 다양하게 나뉜다. 주요 보수 언론은 현 정권의 결정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베 총리가 집권 초기부터 언론을 이용해 온 만큼, 일본 주류 언론사는 불매운동을 보도할 때 반일감정에 초점을 두면서 의미를 축소하고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권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적은 인터넷 뉴스에서는 한일 갈등의 장기화 움직임을 염려하는 시선이 많이 나타난다. 기업 대상 신문과 잡지 클리핑 서비스를 제공하는 ELENT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화이트리스트 관련 사설을 게재한 46개 신문사 가운데 단 3곳만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지지했다. 주요 언론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까지 지난달 17일 사설을 통해 아베 정권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 시민들도 일본 정권의 강경한 입장과 여론 압박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의 보도와 달리 일본 내 여론은 대부분 정권의 경제 조치를 강제노역 판결에 대한 의사 표시로 이해하고 있다. 3년째 일본서 유학 중인 이 모 씨는 “뉴스에서 정권에 불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기에 판결이나 경제적 영향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이뤄지지 않으나 혐한 논조를 띤 발언을 계속해서 다루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내 소녀상 전시 중단 논란도 전시 실행위원들에게서 한일관계를 고려해 내려진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소녀상이 전시된 기획전인 ‘표현의 부자유, 그 후’의 실행위원장 오무라 히데아키가 아베 1기 내각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지닌 전 자민당 의원이었다. 전시 장소인 나고야 시의 시장이 소녀상 전시가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다며 전시를 중단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태도에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시되는 이유다.

한일관계가 예상치 못한 국면에 접어든 만큼 정권에 더욱 신중해지길 요구하는 여론이 주를 이룬다. 지난겨울부터 도쿄에서 유학한 허 모 씨는 신주쿠역에서 ‘NO 아베’, ‘연대 항의’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일본인들을 봤다며 “일본 시민사회의 여론을 마냥 혐한 감정으로 일반화할 순 없다”고 말했다. 도쿄도시대학 이홍천 부교수는 본인의 칼럼을 통해 극우 언론을 제외한 다수의 신문사는 양국의 대화와 외교적 차원의 갈등 해결을 강조하는 사설을 개시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의 대외적인 입장과 시민사회의 주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만큼 일본 정권 역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거나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눈치와 자의, 불매와 반일 사이

지난달 6일에는 서울 중구청에서 ‘NO! 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문구가 적힌 깃발들을 세종대로 변에 설치했다가 하루도 안 돼 철거하는 촌극이 있었다. 경제보복을 강행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 국민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수렴한 결과였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본인의 SNS에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불매운동 자체가 “시민들에게 참여에 대한 압박감을 주고 비이성적인 차별의 구실이 되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는 성균관대학교 구정우 교수의 말은 우리에게 불매가 진정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단속반을 자처하면서 유니클로 매장을 감시하고 사진을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상황을 보고하는 ‘유파라치’도 등장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불매 호조를 위한 당연한 행위라고 옹호하는 한편 이러한 행위가 불매 강요 풍조를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불매가 확산됨에 따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일본 제품이나 문화를 소비하고도 알리지 않는 ‘샤이재팬’ 현상도 줄을 잇고 있다. 두 달이 넘게 이어지는 불매 속에서 불매가 피동이나 사동은 아닌지, 이성적인 반일(反日)의 기준은 어디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해솔·권민규·김윤진·박효정 기자
pinensu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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