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 정치·경제적 진행상황 및 영향

지난 7월 4일 일본이 대(對)한국 보복적 수출규제의 일환으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고, 지난달 28일부터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의 사태로 평가받으며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2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일본경제침략 관련 비상대책 연석회의에서 일본 정부를 겨냥해 “전면적 경제전쟁을 선포하는 일방적 경제침략 행위”라고 했으며,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일 경제전쟁으로 국가성장률이 연간 최대 3.1%p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가주력산업인 반도체 업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돼 각계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경제전쟁의 촉발원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한 이후 한일관계는 줄곧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간 한일은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일 간 무역의존도는 외교 갈등과는 별개로 발전했다. 일본관세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대한국 수출 비중은 매우 높은 편으로, 2000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일본의 수출국 순위에서 한국이 중국, 미국을 이어 꾸준히 3위를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2019년 6월까지 일본의 총무역금액에서 한국의 비중 또한 유일하게 4위에 자리매김했던 2000년도를 제외하고는 흔들림 없이 3위를 유지했다. 이에 일본이 제 살 깎아먹기를 감수하면서까지 경제전쟁을 촉발한 원인으로는 빈번했던 분란 중에서도 소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에 대한 대법원판결이라는 관점이 주력이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었다. 주요 쟁점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조인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책임이 소멸했는지 여부였다. 한국 대법원은 “과거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이 지급한 3억 불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 성격이 아니”라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각자에게 저마다 위자료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일본 정부가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를 번복했다고 반발하며 보복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외교 사안을 부당한 경제보복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자국 내외에서 제기됐다. 국내외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베 정부가 경제전쟁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다각적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6년여의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침체한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의 위기감을 타파하려는 노력의 발판으로 풀이하는 한편, 미·중 무역전쟁 및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으로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소외된 자국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극단적인 대응 전략을 채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경과①: 거듭된 공격

지난 7월 1일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세 품목의 대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불화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대일 의존도가 2019년 5월 말을 기준으로 90%를 초과한 상황이라 일본의 제재에 민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비축해둔 물량이 2개월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 수출규제 초기부터 우려가 격화됐다. 지난달 2일,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 각의를 결정했다. 표면적 명분은 ‘불소 등의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 제재 이행 위반의 의혹’이었다. 화이트리스트란 군사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 첨단 기술을 기업이 수출할 때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국가 목록이다. 화이트리스트에 지정된 백색국가는 해당 물품 수출이 일본 자국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신뢰하고 수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시점까지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총 27개국이 포함돼 있었으며 한국은 유일한 아시아 백색국가였다. 그러나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일본은 한국을 안보 우방국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내비쳤다.

덧붙여 지난달 7일 일본은 기존의 백색국가를 ‘그룹 A’로, 비백색국가를 ‘그룹 B·C·D’로 재분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편 이후 한국은 그룹 B로 분류돼 리투아니아 등 10개국과 함께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한 국가’ 수준으로 취급받게 됐다. 이 여파로 대일의존도가 높았던 가공소재와 전자기기 등을 비롯해 15개 분류 1,100여 개 품목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3년에서 6개월로 수출허가 유효기간 단축 ▲1주일에서 90일로 수출허가 처리기간 연장 ▲심사지연 및 추가서류 제출 요구 가능성 등의 불이익을 의미한다. 이제 일본에서 해당 물품의 군사 전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하면 기존에 거래하던 기업들도 한층 복잡한 장시간 심사 절차를 거치고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해당 물품을 수입할 수 있다. 한국의 3대 주요 수입국 중 하나였던 일본이 통제할 수 있는 품목의 범위가 넓어 사실상 전 산업계가 긴장 상태에 놓였다. 지난달 28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래 더욱 급변하는 실정 속에서 각종 분야에 미칠 여파 및 귀추가 주목된다.

경과②: 정부 차원의 방어

한국 정부가 수출규제에 맞대응하면서 본격적인 경제전쟁의 양상이 전개됐다. 지난 7월 3일 ▲청와대 ▲여당 ▲정부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 원가량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일본 의존도를 낮춰 경제전쟁에 대응하려는 초석이었다. 이어 지난 5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발표’에서 국내 공급망을 공고히 하는 것을 목표로 ▲공급안정성 조기 확보 ▲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 ▲강력한 추진 체제를 통한 대대적 지원이라는 3대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국제사회에 현 사태의 정당성을 따질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3일과 24일에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는 ‘일본 수출규제’가 정식 의제로 다뤄졌다. 정부는 수출규제가 다자무역 질서를 흐린다며 WTO 정식 제소까지 움직임을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이날 일본은 자국 안보를 명분삼아 한국이 요청한 1:1 면담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는, 일본의 예고대로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시행된 지난달 28일 ‘일본 수출규제 대응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WTO 제소를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방어뿐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성 장관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해 다소 강경한 태세를 취했다. 본래 4대 국제 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국가는 ‘가’ 지역으로,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나’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에 기존 백색국가인 ‘가’ 지역을 ‘가의1’과 ‘가의2’로 세분화하되, 일본은 ‘가의2’로 분류해 상기 체제에 모두 가입했지만 원칙에 맞지 않게 제도를 운용하는 중간지역으로 따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전체 포괄허가에서 일부 포괄허가로의 전환 ▲5일에서 15일로 늘어난 개별수출허가 심사기간 ▲늘어난 개별수출허가 제출서류 등 대일본 수출통제가 강화될 예정이다.

본격적인 대일 수입 규제 또한 시작됐다. 지난 16일 한국 정부는 “석탄재에 이어 폐배터리, 폐타이어 등 수입 폐기물에 대한 환경안전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분기별 1회 실시하는 폐기물의 방사능 및 중금속 검사 주기를 월 1회로 강화할 계획이며 기준 초과 등 위반사례에 대해서는 반출명령 등의 조치를 검토 중이다. 수입폐기물에서 일본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일본을 간접적으로 겨냥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경과③: 기업 차원의 반격

관련 기업도 방어와 반격에 나섰다. 국내기업의 피해를 감쇄하기 위한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수출이 규제된 소재의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생산을 국산화하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지난달 6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일본산 소재를 모두 배제하기로 소위 ‘탈(脫)일본’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 대만에서 수입한 불화수소와 국산 불화수소를 동시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SK하이닉스도 같은 행보를 밟았다. 9월부터 국산 액화불화수소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수요를 대부분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한 국내 반도체 소재 생산업체 솔브레인을 선두로, SK그룹 계열 산업용 가스 제조업체 SK머티리얼즈도 확보한 고순도 불화수소 기술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시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화수소뿐만이 아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0월까지 국산 폴리이미드의 생산라인을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SK그룹 계열 화학소재 전문사 (주)SKC는 오는 10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의 국내 생산을 앞두고 있으며 삼성디스플레이가 SKC에 공급 협력을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국내 중소기업과 협업해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연구개발에 착수한 바 있다.

금융당국 또한 기업의 대응에 힘을 실었다. 지난달 4일 금융위원회 및 정책금융기관, 금융감독원, 시중은행이 함께 ‘일본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를 진행해 국내기업이 대일의존도를 줄이고자 자체기술 확보 및 수입처 다변화 목적으로 해외기업을 인수합병하면 법인세 세액공제 및 2조 5천억 원가량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국책은행 차원에서도 기업 규모 구분 없이 피해기업에 대한 대출을 전액 1년 만기연장을 시행했으며 시중은행에도 자체 협조를 요청했다. 이들은 8월 5일부터 ▲기존 대출 만기연장 ▲신규 대출 ▲금리 우대 등 지원책을 시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1조 3천억 원가량의 특례보증을 실시한 데 더불어 정부와 은행으로부터 최대 6조 원에 달하는 신규자금이 유입될 예정이다.

보이지 않는 종결의 실마리를 찾아

8월 하순에 접어들며 양국 모두 확전을 자제하고 있지만 위태로움은 여전하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발표한 지난달 2일 일본 정부는 이미 3차 보복을 함께 예고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로 말미암아 WTO에 한국 조선업을 제소할 계획을 밟아나갈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조선업계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일본 조선업이 피해를 봤다는 명분으로 작년 11월부터 WTO 제소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농수산업에서도 경제전쟁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일본이 한국 농수산물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검역 규제 조치를 내릴 경우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관했다. 일본이 한국 농수산식품의 최대 수입처라는 점을 고려하면 농가에 미칠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24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를 종료할 것으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지소미아 종료는 현재의 경제전쟁 국면을 조금 더 유리하게 끌기 위한 한국의 강수로 분석된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국 간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에서 전술적 측면으로는 (지소미아 종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한국으로서는 지금 일본의 태도가 동북아 안보를 위해하는 요인임을 미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평했다. 미국 입장에서 한일 양국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전략적 우방국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일 간) 정보 교류에 대한 협정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발표했으며 미 국방성 또한 “이 결정을 내린 문재인 정부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을 아끼며 다소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막상 정부와 대통령의 반응이 엇갈리면서 미국이 한일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지는 아직 미지수나 미국의 개입에 따라 경제전쟁 국면이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이번 수는 일본 정부를 회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달 27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11월 23일까지 3개월 가까이 남았다”며 “그 기간 동안 타개책을 찾아 일본 정부가 한국에 했던 부당한 조치들을 원상회복하고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며 명시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일관계, 어디로 가나

일본 정부가 지난 28일부터 개정된 수출무역관리령을 예정대로 시행하면서 앞으로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만으로 경제 전쟁을 종시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WTO 제소를 통한 해결은 결과 고지까지 2년에서 5년 이상이 필요하기에 당장 경제적인 타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1일 이뤄진 한중일 외교정상 회담에서도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던 양국이기에 대화를 통한 해결도 요원해 보인다. 이번 경제전쟁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일 양국이 현재 전망되는 수준보다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경제전쟁 내외로 복잡한 역사·외교적 요인이 얽혔고 국민정서까지 반목하는 가운데 뾰족한 수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양국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박지우·오성원·조수현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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