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은 그대로 문제점은 제로인 게시판을 위해

지난달 22일 본교 정대후문(이하 정후) 게시판에 본교 교수 85명이 낸 ‘강제동원 배상안 철회 요구 성명서’가 부착됐다. 24일 기준으로는 115인의 교수가 참여했다. 학생들은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연대 의사를 표했다. 정후 게시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정후 게시판에는 주로 대자보와 더불어 일반 게시물이 붙는다. 대자보는 사회 현안이나 학내 사안에 대한 필자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독자가 소통하는 장을 형성한다. 공동체 유산으로서의 가치도 갖기 때문에 본교 생활도서관에서는 정후 게시판의 대자보를 페이스북 페이지(kuboardrecord)에 이미지 파일로 올려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익명 대자보 및 비난 목적으로 쓰인 대자보 등은 정후의 대자보 문화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찬권(사회 21) 씨는 “공론화와 메시지 전달의 무게감을 담기에 실명 자필의 형태가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대자보 문화 자체가 어느 정도 숭고한 아우라를 가지는 듯한데, 익명 워드 프린트 대자보는 학생 문화 퇴행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한편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양측 선거운동본부를 저격하는 대자보가 남발되며 정책보다는 선거 출마자 간 개인사가 더 주목받기도 했다.

본교 서울 총학생회 일반규칙 제5호 게시물 관리 자치규약 제3장 제16조 ‘게시물의 위계’에 따르면 대자보는 총학생회 각 기구의 게시물 중 사무처리세칙에 의한 법규문서·공고문서와 더불어 가장 높은 위계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대자보가 최고권위를 갖는 만큼 그 무게에 대해서는 재고가 요구된다.

한편 매년 초 정후 게시판에서는 각종 학과나 단체의 홍보 포스터가 가득 붙여진다. 총학생회는 과도한 포스터 부착 경쟁으로 인한 갈등을 막고자 게시물 총량제를 시행한다. 게시물 총량제는 개강 후 15일 동안(주말 및 공휴일은 산입에서 제외) 총학생회원·자치단체의 포스터에 크기 제한을 가하고 도장을 날인해 게시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제도다. 올해는 날인 대신 날짜가 적힌 스티커를 매일 특정 시간 내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게시물 규격은 최대 A2 이하여야 하며 게시물에는 ▲개인 또는 단체명 ▲1인 이상의 연락처 ▲게시 기간 혹은 행사 기간을 기재해야 한다.

그러나 게시물 총량제를 지키지 않는 단체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가 부족해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월 27일, 28일 시행된 총학생회 게시물 총량제 OT에서는 ‘도로, 건물의 바닥, 표지판 등 게시판이 아닌 곳은 게시 불가 공간’이라고 안내했으나 이는 잘 준수되지 않았다. 게시물 총량제 참여를 인증하는 카카오톡 사진방 모니터링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많은 교내 단체가 안내한 시간이 지나 날인(스티커)를 부착했지만 이에 대한 경고나 제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외부 단체의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 게시물 총량제 규격을 준수한 학내 단체의 게시물 위에 부착되기도 했다.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게시하며 게시물 총량제에 참여했다는 김희원(전전 17) 씨는 이에 대응해 “게시물 총량제를 더욱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벽 ▲담 ▲화장실 등 적법한 게시판이 아닌 곳에 홍보물을 부착하는 단체에는 엄중히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후 게시판은 학내의 다양한 의견과 여러 활동이 표현되는 공간이다. 바람직한 게시판 문화 조성을 위해 우선 대자보의 무게와 영향력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또한 게시물 총량제는 비록 지난달 22일부로 종료됐으나 평소에도 게시판 질서 유지를 위한 학내 각 단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정지윤 기자

alwayselois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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