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항공업계, 노딜 속에 오리무중

범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하늘길이 셧다운에 걸렸다. 국내 항공사의 생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업계 내 다양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경영난 속에서 발생한 항공업계 재편의 움직임을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지난달 14일 항공업계가 공시한 올해 2분기 실적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 9개 중 화물 운송에 주력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7개 항공사가 큰 적자를 떠안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7개 항공사는 승객 유치를 주요 목표로 하는 저비용 항공사(LCC)기에 여객 수요 감소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았다. LCC 1위 항공사인 제주항공은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1.3% 감소했으며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 1분기에서 이미 적자 전환한 타 LCC 역시 2분기에서도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때까지 꾸준히 제기돼 온 ‘국내 LCC 포화’에 대한 우려가 코로나발 경영난을 통해 가시화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은 재편의 바람에도 제동을 걸었다. 특히 ‘노딜’로 인해 이스타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거취가 불투명하다. 제주항공은 작년 12월 국내 LCC인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을 발표했으나 지난 7월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공시했다. 한편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인수협상 과정 역시 현산 측의 재실사 요구와 더딘 협상에 대한 양측의 책임 전가가 계속되면서 업계 재편의 향방이 모호한 실정이다.

 

벼랑 끝 이스타, 어쩌다 떠밀렸나

제주항공이 인수를 포기한 이스타항공은 현 21대 국회의원인 이상직 의원이 2007년 수도권 및 중부권을 중심으로 설립한 LCC다. 이스타항공은 2009년 김포-제주 정기편을 시작으로 2020년 기준 국내선 5개와 국제선 34개 노선에 대한 염가 여객편을 제공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2017년 157억 원, 2018년 53억 원의 이익을 냈으나 최근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해 2019년 793억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더불어 2019년 말에는 자본잠식률이 200%를 넘었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접어들면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사태가 겹치며 이스타항공은 2020년 1분기 약 359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2019년 말 약 1,174억 원이었던 *결손금의 규모도 약 1,584억 원으로 늘어났다.

외적인 잡음 외에도 내부 문제가 존재했다. 이스타항공 임직원들은 올해 2월부터 임금체불에 시달렸으며 그 규모는 약 260억 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리 논란도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이 의원이 페이퍼컴퍼니를 다수 동원해 상속세를 내지 않고 두 자녀가 관리하고 있는 이스타홀딩스에 이스타항공 지분을 넘겼다고 주장하며 이 의원을 조세포탈혐의로 고발했다. 논란이 일자 이 의원은 지난 6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가족의 지분을 모두 회사에 헌납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완전자본잠식에 접어든 기업의 주식을 헌납하는 것은 오히려 ‘꼬리 자르기’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이은 적자 속에서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마저 무산되며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항공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1,500억 이상의 적자 전환임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파산이 가시화됨에 따라 1,600명이 넘는 이스타항공 임직원의 대량 실직 사태도 우려된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7월 23일 브리핑을 통해 이스타항공이 스스로 경영정상화를 위한 ‘플랜B’를 제시한다면 정부가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스타항공은 내실 점검과 재실사를 거쳐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난기류 아시아나, 누구 품에 착륙하나

잇따른 적자와 이스타항공의 파산 위기로 LCC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은 여객편이 아닌 화물 운송에 주력해 깜짝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달 7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2분기 115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흑자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에 2,082억 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수치다. 그러나 여객기를 개조해 화물 운송을 하거나 인건비 및 유류비 등의 고정비를 감소시킨 미봉책으로 흑자를 봤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하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특히 고정비 감소의 경우 여객 사업의 침체로 인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객기 운항이 줄어듦에 따라 연료비 지출이 함께 감소했으며, 여객 사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무·유급 휴직을 권고함으로써 영업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던 현산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며 계속해서 협상 연기와 재실사를 요청했다. 현산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인 금호산업 측에 인수 의사를 밝힌 후 12월 2조 5천억 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불거짐에 따라 현산은 올해 4월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취득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후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에 인수조건 원점 재검토를 요청했고, 이에 대해 금호산업은 현산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인수종결을 서두를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 열띤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현산의 재실사 요청과 금호산업의 인수종결 요구가 계속해서 엇갈리면서 계약은 무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현산은 약 8개월간 기업 결합 신고, 인수 자금 조달 등 인수 절차에 만전을 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현산이 지속적인 대면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거래종료일에야 12주간의 재실사를 서면으로 요청한 것은 거래 종결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며 재실사 요구를 거부했다. 지난달 11일 현산이 재실사를 전제로 한 대면 협상을 제안하긴 했으나 협상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수무산 내지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26일에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구 현산 회장 간 전격회동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타협점이 없는 상황에서 관계자들은 업계 재편에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위축되는 하늘길, 그 여파는

항공업계 전반의 운항 양상 변동은 연쇄적인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이스타항공의 경우 9월 한 달간 700명 내외의 임직원에 대한 정리해고 수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 사태 이후 첫 항공업계 대규모 실직 사례로, 인수 불발 이후 재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처로 여겨진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이스타항공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자구책으로 작용하지 못해 이스타항공이 청산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다만 국토부에서 임금채권보장기금 등 지원 의사를 브리핑했고 이스타항공 역시 정상화 이후 정리해고 대상자들을 모두 재고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임직원들의 실직 관리와 기업 부채 탕감 등 전반적인 피해의 규모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가라앉은 항공업계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으로 여겨졌으나 무산될 위기에 놓이며 침체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수무산에 따른 대안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국유화 노선도 거론되나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들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등 해외 사례를 들어 명목만 유지하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악의 경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아시아나항공 측과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협의를 진행”한다고 발언한 이후 국유화에 대한 기대로 아시아나항공의 주가가 급등하자, 금융위원회는 해당 발언이 원론적인 취지였다며 사태를 진화하기도 했다. 대규모 적자 전환으로 혹독한 상반기를 겪은 항공계는 이제 하반기 실적에 주력하게 된다. 수요 감소와 인수무산 문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업계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업의 순자산이 감소하는 경우 그 감소분을 누적한 것이다.

 

권민규·신형목·이가영 기자

dmaria47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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