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넷은 넷으로, 다섯은 다섯으로.

어려서부터 나의 어머니는 애국자라고 불리곤 했다. 종종 어머니께서 나와 두 동생을 주렁주렁 데리고 아파트 안을 걸을 때면 동네 어르신 열에 아홉은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것이 우리 어머니가 애국자인 가장 큰 이유였는데, 내가 태어날 당시인 2000년대 초반의 합계출산율이 고작 1.2명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그럴 만했다고 생각된다.

어렸을 때는 두 동생과 함께 웃음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놀이터에 나가 함께 놀 친구들을 찾지 않아도 내게 두 동생은 언제든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글바글한 가족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세 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께서는 막냇동생이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맞벌이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입원이 하나 늘어났음에도 우리 삼 남매는 최신 휴대전화와 과외 따위는 거의 누려보지도 못했고 내 동생들은 내가 입었다가 작아져 버린 옷을 종종 물려 입곤 했다. 이렇게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항상 사람 냄새 가득한 곳에서 자란 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두 동생도 몇 년 후면 대학에 입학할 만큼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을 입학한 나는 다자녀 장학금을 마주한 이래로 우리나라의 모든 다자녀 가구들이 불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자녀 가구의 학자금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다자녀 국가장학금은 자녀가 셋 이상이면서 8분위 이하에 속하는 학생에게 학기 당 225~26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가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혜택이었다. 맞벌이인 것이, 가족이 많은 만큼 큰 집으로 이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니다. 문제는 자녀 수가 몇 명이든지 고려 않고 일률적으로 4인 가구 기준의 소득 분위를 적용한다는 점이었다. 상식적으로 4인 가족이 8구간 경곗값인 월 975만 원으로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소득으로 5인 이상의 가족이 한 달을 살아가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날 터였다. 심지어는 5인 가구 기준의 중위소득이 이미 산정돼있음에도 적용은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누굴 대상으로 한 다자녀 장학금인지 납득할 수 없는 4인 가구 기준의 소득분위 적용은 우리 가족이 다자녀 가족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마음에 걸렸던 때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매 학기 다자녀 국가장학금을 꿋꿋이 신청하지만, 종종 ‘곧 막냇동생까지 대학생이 되면 학기마다 등록금으로만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목돈이 필요할 텐데 휴학이라도 해야 하나’는 근심에 그저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내가 태어날 적과는 달리, 합계출산율이 1명도 되지 않는 지금도 다자녀 관련 정책은 끊이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도 다자녀 가구에게 아파트 청약 혜택을 주는 다자녀 특별 공급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다자녀 특별 공급 청약이 줄줄이 미달됐다기에 이유를 살펴보니 대부분의 아파트가 전용면적이 고작 15평에서 18평에 불과한 곳이었다. 다섯 이상의 식구가 15평짜리 공간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기라도 바란 건지, 또다시 무늬뿐인 다자녀 정책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심지어 2022년부터는 다자녀 기준을 3인에서 2인으로 점차 축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자녀 기준 자녀 수 축소에 앞서 선행돼야 할 과제는 현존하는 다자녀 가구들이 응당한 복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다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이 아니다. 넷이면 넷답게, 다섯이면 다섯답게 그 수에 맞는 기준을 적용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저 우리 가족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다자녀 가구들이 가족 수가 많다는 사실을 불편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정채빈 기자
jcbid102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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