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산타 할아버지는 몇 살인가요

“산타 할아버지는 몇 살인가요?”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피식. 이런 대화를 보고 ‘우문현답’이라고 하는 걸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iN’에서 일전에 인기 차트에 오른 답변 중 하나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이 글에 답변을 달았던 녹야(綠野) 조광현 할아버지(이하 녹야)를 모 방송사에서 직접 인터뷰한 이후부터 말이다.

몇 달 전,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게 인터넷을 켰던 내가 놀라움과 아쉬움에 한참동안 창밖을 내다본 기억이 난다. 16년 동안 지식iN에 답변을 달아 왔던 녹야가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그만둔다는 글을 읽고 나서였다.

댓글창은 떠나려는 그를 붙잡으려는 누리꾼들의 응원 일색이었다. 질문으로 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소소한 고민들, 삶의 회의에 빠진 사람들이 내뱉는 진지한 한탄에도 독수리 타자로 하나하나 ‘옹골찬’ 답변을 달아주던 그의 재치와 성실함에 감동받은 사람들 덕일까. 그를 붙잡아두려는 누리꾼들의 응원에는 눈가에 눈물이 고인 듯한 애잔함이 묻어났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온라인상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전직 치과의사라는 화려한 커리어와 여든이 넘은 연세에서 나오는 관록이 그를 지식iN 19등급 중 18등급의 ‘수호신’으로 빛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견 단순해보일 수 있는 질문에, 사람들이 ‘알고 싶었던’ 이야기, ‘듣고 싶었던’ 답을 재치 있게 직설적으로 달아줬던 녹야의 정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사람들은 참 ‘듣고 싶은’ 이야기에 주로 혹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세상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만 이뤄진다면 시와 소설은 왜 있고, 영화와 드라마는 왜 모두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려 안달이겠는가.

요즘 부쩍 참 듣기 싫지만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불행하게도 차고 넘친다. 옆자리의 접시를 치우지 않았다고 해서, 전 여자 친구였다고 해서, 자신의 전 부인이라고 해서 상대 목 밑에 칼을 대는 일이 대낮에도 흉흉하게 벌어진다. 그런가하면 한편에선 상대방 운전자가 술에 인사불성이 됐다고 해서, 남자친구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이유 없이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하는 참극도 벌어진다. 이 모든 게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니. 누군가 실수로 시계를 돌린 건 아닐까. 이건 사람들 사는 세상이 아니다.

‘들어야 할’ 이야기, 그리고 ‘듣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각박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도피하고 싶은 그 심정 때문일 테다. “산타 할아버지는 몇 살인가요?”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질문도 그런 현실에서 탈출하겠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련해진다. 물론, 별 이유 없이 달린 질문이겠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건, ‘들어야 할’ 뉴스에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그 신문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앞으로는 ‘들어야 할’ 이야기 하나하나에 ‘공감(共感)’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칼럼의 소재로 담기지 않을 만큼 당연해지는 날이 와야 한다. ‘함께’ 느끼는 인정 어린 세상이야말로 ‘사람들 사는 세상’이다.

“산타 할아버지는 몇 살인가요?”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녹야는 공감을 이끌어낸 사람이었다. 그의 답변에서는 왠지 모를 재치와 공감대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따로 있다. 공감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감을 ‘주는’ 데까지 능했던 그였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흉악범 사형, 어떻게 보세요?”

“그런 동물만도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인권 어쩌고저쩌고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2010년 답변 中)

 

조재현 기자

njs0417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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