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웃는거 잊지 마!

영화 ‘조커’에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푯말에 적힌 ‘Don’t forget to smile!’ 중 ‘forget to’를 지워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웃는 걸 잊지 말라는 조언은 금세 웃지 말라는 겁박으로 변질한다.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며 주인공의 행동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아서의 불우한 삶이 자체적으로 웃음을 지워버렸다’, ‘부조리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주인공의 작은 화풀이’ 등과 같은 각자의 해석을 들고 꿈속을 빠져나온다.

관객들은 아서의 삶에 공감하고 있다. ‘나라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투영됨과 동시에 주인공의 기분에 같이 심취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공감은 총을 쏘고 여러 명을 살해하는 플롯이 아닌, 그 플롯의 기저에 깔린 사회적 배경에 대해 이루어진다. 누군가가 ▲가난에 시달리고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으며 ▲취직마저 잘되지 않는 상황이 단순히 허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문제가 산발적으로 분포한다. 세대별로도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도 각기 다른 아픔을 겪는다. 이 시대의 사회인들이 지니는 그 아픔들이 이 영화 속에도 스며있는 것이다.

아픔은 지표로 명확히 드러난다.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작년 기준 10.5%로, 2017년 기준 10.3%보다 상승했다. 2014년에 10% 선을 넘어선 뒤 계속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잠재성장률 하락과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게 원인으로 꼽힌다. 자살률도 높다. 지난 24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8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670명으로 작년보다 9.7% 증가했다. 하루 평균 37.5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셈이다. OECD 표준인구로 계산한 ‘연령 표준화 자살률’을 따져보면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36개 국가 중 1위다. 리투아니아의 자살률 증가로 2위로 내려갔던 2017년을 제외하면 2005년 이후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적 여건은 사람들이 인식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와 정부, 나아가서는 범국가적인 연대와 관심이 필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그 열악함을 탓하고 우울 속에 침전해 있기만 하면 아무런 변화도 존재할 수 없다.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면서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웃을 수 없는 괴로운 상황이라고 해서 자신을 웃음없는 감옥에 가둔다면 차츰 웃음의 감정은 속에서부터 소멸해버리고 만다. 하루하루마다 누구나 사소하게나마 기쁜 일이 있을 것이고, 민망해 말은 못하더라도 고마운 일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크게 볼 수 있는 긍정이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보건복지부에서 작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9세에서 17세 아동과 청소년 2천여 명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10점 만점에 평균 6.57점이 나왔다. 현재 생활 수준과 미래 안정성 만족도는 평균 7점을 크게 밑돌았고,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점수보다 1점이나 낮은 수치였다. 타 국가들과의 비교 수치는 이 소식을 접하는 이들을 자조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의 접근성은 우리의 삶 주변에 그득히 산적해 있다. 거시적인 개선도 차츰 따라와야 한다. 하지만 웃음에는 우리가 ‘직접’ 다가갈 수 있다. 우울함이 밀려오더라도 웃음에 한 번 가닿아 보는 건 어떨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먹고, 달콤한 음료나 맥주를 가볍게 마시면서 담소를 나눠보자. 늦가을이라 부르기 미안한 쌀쌀함도 그 행복, 그 웃음 근처엔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권민규 기자
dmaria4749@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