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뒤늦은 소각 작전, 빌라왕 근절할 수 있을까

지난달 2일 빌라왕 사태에 대한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빌라왕의 원조로 불리는 화곡동 빌라왕이 활동을 시작한 지 무려 7년이 지난 시점이다. 주택 283채를 사들인 화곡동 빌라왕에 이어 1,139채를 사들인 빌라왕 김 씨 등 여러 빌라왕이 초래한 전세 사기 피해액은 20억 원에서 2천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불완전한 보증금 환수 절차를 겪으며 긴 시간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 빌라왕 근절 정책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는 가운데 빌라왕 사태를 다시 정리하고 그에 대한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해봤다.

 

수도권 빌라가 모두 ‘그들’ 손에

 

빌라왕은 ‘동시진행’, ‘무자본 갭 투자’로 불리는 사기 수법을 이용하는 임대인들을 칭한다. 이들은 매매와 전세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부동산 수법으로 매매가에 웃돈을 붙여 전세금을 받고 그 돈으로 다시 건물을 사들인다. 향후 보증금 또한 다른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돌려막는 식이다. 이 같은 수법으로 빌라왕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건물을 사들이고, 웃돈만큼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은 주택 중에서도 신축 빌라를 택했다. 세입자들이 정확한 매매가를 확인할 수 없고 신축·풀옵션 등을 혜택으로 내세워 비싼 값에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유자금이 넉넉지 않은 20·30세대를 겨냥해 전세금 대출 이자 및 이사비를 지원해준다는 식으로 계약을 유도했다.

빌라왕의 사기 행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화곡동 빌라왕 강 씨는 2015년부터, 그리고 ‘모녀 전세 사기 사건’의 어머니 김 씨는 2017년부터 일을 벌여왔다. 빌라왕 사태가 최근에야 논란이 된 건 금리 상승과 관련이 있다. 금리는 지난해 5월 1.75%에서 지난달 3.5%로 크게 상승했다. 세입자들은 고금리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으로 전세가 아닌 월세를 찾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세금이 들어오지 않자 빌라왕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다.

결국 빌라왕은 연쇄 파산으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으며 가지고 있던 부동산 상당수가 세금 환수를 위해 압수당했다. 궁지에 몰리자 각각 주택 240여 채, 50여 채를 소유했던 빌라왕 정 씨 및 송 씨는 자살을 택했고, 1,050여 채를 소유했던 김 씨 등은 잠적했다. 세입자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압류당하고 보증금을 잃게 됐지만, 당사자 부재로 문제해결은 요원해진 상황이다.

 

빌라왕은 어떻게 탄생했나

 

올해 1월 경찰 조사 결과 빌라왕 사태는 매매 컨설턴트를 배후로 둔 ▲건축주 ▲브로커 ▲컨설턴트 ▲빌라왕의 합작품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우선 건축주는 브로커에게 동시 진행을 맡긴다. 브로커는 전세 컨설턴트 및 매매 컨설턴트와 접촉한다. 이들은 각각 세입자 및 빌라왕을 구한다. 세입자가 입주하면 빌라왕은 세입자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본인 명의로 빌라를 매수한다. 전월세 보증금을 실제 매매가보다 높게 책정해 발생한 이득은 공범자들에게 건당 수백만~수천만 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데 쓰였다.

지난 1월에는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 신 씨가 구속됐다. 신 씨는 사망한 정 씨를 포함한 총 7명 빌라왕의 배후로 지목됐다. 신 씨는 2017년부터 3년간 서울 강서구·인천 등에서 주택 628채를 매수하고, 임차인 37명으로부터 보증금 80억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신 씨를 상대로 한 첫 재판이 열렸고, 오는 3월 15일 다음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은 공개된 피해 규모가 극히 일부라며 추가 수사를 예고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들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다. 신축·이자 지원 등의 조건으로 고가의 전세금을 지불했는데 소리소문없이 주택 소유주가 바뀌고 끝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돌려주고 보증금 환수 절차를 위임받는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미가입 세입자들은 원칙적으로 빌라왕 소유 주택을 사서 직접 경매에 넘기거나 정부 공매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주택 가격이 전세금만큼 높은 탓에 낙찰되기는 쉽지 않다. 운 좋게 낙찰되더라도 주택에 붙은 세금 체납이 이뤄져야 하므로 세입자들이 받을 보증금은 계속해서 연기되는 상황이다. 빌라왕 김 씨에게 2억 9천만 원의 보증금을 떼인 한 세입자는 주택이 경매에 낙찰되지 않아 20%씩 깎이는 경매가를 손 놓고 봐야 했다. 그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유찰돼 깎인 금액 ▲경매 비용 ▲체납 세금까지 총 1억 4천만 원을 잃게 생겼다며 호소했다.

HUG에 가입한 이들도 제시간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빌라왕 김 씨 사례와 같이 빌라왕이 사망하면 세입자가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할 대상이 사라져 HUG가 규정한 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대위변제 절차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체납된 세금으로 빌라왕 유족이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변제가 더욱 지연됐다. HUG에 따르면 지난달 1일까지 김 씨 피해자 회원 중 36.4%만이 변제를 받은 상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수습하며 변제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이 빌린 전세금 대출 이자는 계속 오른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는 2021년부터 꾸준히 올라 2년 만에 600% 상승했다. 빌라왕 피해자 상당수는 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채무 해결도 어려워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정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빌라왕 사태의 여론이 뜨거워지자 검찰과 행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검찰은 일부 빌라왕 사건에 지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 예시가 화곡동 빌라왕 사태다. 빌라왕 강 씨가 2019년 4월 잠적했고 당해 8월 피해자들이 형사고소 했으나 1년 뒤에야 검찰에 송치됐고 지난달 1일 강 씨는 구속기소 됐다. 경찰 수사 1년, 검찰 수사 2년 반이 걸려 총 3년 반이 소요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일이 돼서야 ‘전세 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HUG 전세 보증금 사고 금액이 2018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등 빌라왕은 5년 전부터 기승을 부려왔지만 올해에서야 제대로 된 방안이 발표됐다. 브리핑룸에 올라온 보고서의 전세 사기 피해 예방 및 지원 정책은 크게 ▲처벌 수위 강화 ▲기획 조사 실시 ▲전세가율 조정 ▲대출 조건 완화 ▲임대차보호법 개정 등으로 이뤄졌다.

전세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처벌 수위 또한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6월부터 공인중개사법이 개정돼 원스트라이크 아웃 식으로 자격 박탈을 진행한다. 또한 작년 7월부터 이뤄진 특별단속이 6개월 연장되며 전세 사기 기획조사를 연중 실시하기로 했다. 꾸준히 지적받았던 HUG 반환 보증 전세가율도 5월에 조정된다. 이번 방침 이후 HUG 신청조건이 전세가율 100%에서 90% 이하로 하향 조정된다. 결과적으로 빌라왕이 세입자를 안심시킬 유인전략이 사라질 전망이다.

현 피해자를 위한 지원 대책도 마련됐다. 금리 1~2%대 특례대출 대상과 한도가 이번 달 확대된다. 대출 상환이 불가해 신용불량자의 위기에 놓여있던 피해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피해자가 빠르게 HUG 보증금 반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도 개정된다. 지난달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 절차만이 남은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구제받을 수 있을까

 

이번 정부 정책은 개혁이 필요한 부분을 두루 다뤘지만 여러 방면에서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 지난달 출시된 안심보증앱은 ▲다수의 주택 시세가 확인 불가한 점 ▲관련 법안 부재로 ‘나쁜 임대인 명단’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점에서 사용자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보증 전세가율 인하는 그만큼 보증 대상 가구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증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도 포용하는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다수의 정책이 5~7월에 추진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정부의 조속한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박예나·조유솔 기자

june2310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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