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전국민 고용보험제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던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코로나19로 나라 경제가 벼랑 끝에 놓인 지금,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튼튼하고 효과적인 안전망이 될 수 있을지 The HOANS가 알아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열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전국민 고용보험제 실현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과제로 설정한 강기정 청와대 정무 수석의 발언을 대통령이 다시금 확인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확고한 의사를 내비친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 완화를 위해 고용보험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는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기 힘들어 보인다.

 

고용보험제, 왜 바꿔야 하나

고용보험제란 ▲실업보험사업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사업 등 노동시장 정책을 연계해 통합적으로 실시하는 사회보장보험이다.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소극적 사회보장뿐만 아니라 취업 알선, 직업 능력 개발 등 적극적인 고용 시장 정책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고용보험제는 1993년 고용보험법 제정 이후 고용노동부를 위시해 1995년부터 실시 중이며 오늘날까지 꾸준히 가입 대상자와 보장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실업 급여 및 각종 지출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하는 고용보험료로 충당한다. 보험료는 보수에 실업 보험료율을 곱해 산정하며, 고용주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을 부담한다. 고용안정 등 적극적 복지에 대한 비용은 고용주가 전부 납부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은 현행 고용보험제도가 많은 근로자를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취업자 수는 약 2,400만 명에 달한다. 지난달 11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자영업자를 포함해 1,400만 명 미만으로 취업자 수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가입대상에서 제외되는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와 프리랜서 등을 포함한 천만 명이 넘는 취업자가 고용보험의 사역에 존재하는 셈이다.

임금노동자 가운데서도 비정규직의 가입 비율은 정규직에 비해 현저히 낮다. 통계청 경제활동부가조사에 따르면 2019년 8월 고용보험 가입률은 ▲임금노동자 전체 70.9% ▲정규직 87.2% ▲비정규직 44.9%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중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 종사자)와 파견근로자 등을 포함한 비전형 근로자의 가입률은 29.0%에 그쳤다. 자영업자의 가입률은 0.4%로 임금 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현 제도의 빈 공간을 여실히 드러냈다.

 

어떻게 바꿀지는 미지수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지난 20일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20대 국회를 통과하면서 발의 1년 6개월 만에 고용보험 적용 대상자의 확대개편이 결정됐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통과 과정에서 약 200만에 달하는 특고 종사자를 제외한 채 5만 명 남짓의 문화예술인만을 대상자로 포함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초안에 비해 대폭 줄어든 수혜 범위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부재 외에도 문화예술인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직 전 2년 동안 9개월 이상 일해야 한다는 조건은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 연습 기간이 긴 문화예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각종 비판에 대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1일 브리핑을 열고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대한 로드맵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향한 첫발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은 야당과 노동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서 특고 종사자를 제외하는 데 성공한 미래통합당은 전 국민 고용보험의 가능성,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며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에 찬성하는 노동계도 특고 종사자가 개정안에서 빠진 데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문화예술인의 특례 조항 적용이 특고 종사자나 플랫폼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고 차등적인 고용보험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넘어야 할 산

막 시작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수많은 장애물을 목전에 두고 있다. 모든 노동자를 아우르는 고용보험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다. 코로나19로 위험에 처한 국민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급부상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이지만, 이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면 피폐해진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줘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탓이다.

실업 급여 지원과 각종 고용 증진 정책을 위해 사용되는 고용보험기금이 적자라는 것 역시 고민을 더한다. 2019년 고용보험기금은 2조 1,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고용보험기금 수입이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데 반해 지출액은 매년 일조 원가량 늘고 있어 2018년 이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범여권은 단계적 추진으로 재정 출혈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제 실현이 나라 곳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프리랜서나 특고 종사자를 포함할 경우 고용주가 누구인지 역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금 노동자와 달리 여러 단계를 거쳐 근로 계약을 체결하는 특고 종사자 특성상 고용주가 누구인지를 정하기도 쉽지 않다.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고용주가 누구인지 명확한 기준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고용보험료를 조세 형식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고용보험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해 적지 않은 반향이 예상된다.

근로자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노동 상황이 안정적인 임금 노동자는 오랜 기간 보험료를 납부해 고용보험기금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이에 반해 실업 상태에 빠지기 쉬운 특고 종사자는 보험료는 적게 납부하지만 실업 급여는 자주 지급받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많이 기여하는 주체와 혜택을 받는 주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실현될 경우 보험료율 인상이 필연적인 만큼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하는 임금 근로자의 반발이 예상된다.

 

먼저 가본 나라들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유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면에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부터 꾸준한 제도 개혁을 통해 자영업자 및 예술계 종사자의 실업 급여 수급을 가능케 했다. 본래 근로자가 함께 납부하던 고용보험료 역시 고용주가 전액 부담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수혜 대상자 확대와 근로자 분담금 폐지로 인한 추가 비용은 모든 국민이 납부하는 사회보장조세에서 충당토록 했으며,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업 급여의 수급 기간과 금액을 하향 조정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고용주가 고용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일반 고용보험과 별도로 분리된 자영업자 및 특고 종사자를 위한 보험은 이탈리아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내 수공업 및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Dis-Coll(디스콜)은 2017년 확립됐다. 일반 고용보험과 마찬가지로 가입이 강제되며, 일정 소득 이상의 근로자가 디스콜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의 삼 분의 일을 부담해야 한다. 수혜 대상자를 매우 넓게 정의해 장학금을 받는 박사 과정 학생까지 실업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갈 길은 멀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세운 전 국민 고용보험이지만 거시적인 청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를 포용하면서도 재정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보험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실업급여로 9천 399억 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는 25년 전 고용보험이 도입된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로 인한 악재 속에서 빠른 속도로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이 허황된 꿈이 아닌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 계약된 고용주에게 종속되나 스스로 고객을 찾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실적에 따라 소득을 얻는 근로자

 

 

장윤서·권민규 기자

yunseo0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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