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누군가에게 응원받을 자격

지난달 Y 학생과 진행하던 과외 수업을 마무리하게 됐다. 작년 11월경부터 수업을 시작했으니 반년 넘는 기간 동안 매주 두 번씩 있던 일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만남을 마무리하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고정적 수입이 끊김으로 인한 곤란함도, 학생 성적에 대한 ‘쌤’으로서의 걱정도 아닌 ‘한 사람과의 만남’이 끝난다는 아쉬움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여러 학생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지만 이런 감정이 앞선 것은 처음이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Y 학생과 학생의 어머님이 그 차이를 만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들이 보여준 존중이 그 이유였다.

사실 20대 초반의 대학생 과외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존중을 기대하는 일은 욕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수업하던 고3 학생들과는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쌤’이라는 호칭보다는 형이나 오빠가 더 자연스러울 나이며, 학부모들에게는 그들의 자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린 애였다. 담당하던 국어 과목 수업이 영어·수학 과목과 비교해 고3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을 단기간에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특성도 영향을 끼쳤다. 당연한 것이고 내게 요구되는 역할이기는 하지만 ‘심적 여유가 부족한 고3 학생과 학부모에게 나는 그저 대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여겨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었다. 물론 돈을 가운데 둔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도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맨 처음 과외를 시작하면서부터 ‘편한 쌤’이 되고 싶었기에 이러한 사실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잠시 온라인게임 이야기나 가수 이야기를 하며 심리적인 거리감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수업을 위해 학교에서 지하철로 이동하던 중 D 학생이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수업을 취소할 수 있겠냐는 부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선불로 받은 수업료 중 1회치를 D 학생이 전달한 계좌로 송금했다. 이후에도 D 학생은 온갖 핑계를 대며 비슷한 부탁을 반복했다. 문제는 내게 수업료를 송금한 계좌는 학부모 계좌, 내가 환불 처리한 계좌는 학생 계좌였다는 점이다.

세 차례 정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D 학생이 나를 학부모에게는 알리바이를, 그에게는 돈을 제공하는 존재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로 바로 남은 수업료를 학부모 계좌로 환불하고 D 학생과의 수업을 그만뒀다. ‘편한 쌤’이 어느 순간 ‘만만한 쌤’이 돼버렸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절망스러웠다. 4개월 넘게 수업했던 학생임에도 도저히 D 학생의 대입을 응원할 수 없었다.

물론 극단적 사례인 D 학생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에게는 조그마한 아쉬움이 있었을지라도 진심으로 그들의 미래를 응원했다. 그중에서도 초반에 언급했던 Y 학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Y 학생과 함께한 7개월간 나는 단 한 번도 ‘만만한 쌤’이 아니었고, ‘도구’가 아니었다. Y 학생 또한 쉬는 시간에 나한테 스스럼없이 주변 친구 관계나 학교생활에 대해 털어놓을 정도로 편한 관계였지만 항상 ‘쌤’에 대한,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빠뜨리지 않았다.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간식은 항상 내게 먼저 권했으며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쑥스럽지만 스승의 날에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어머님 또한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며 매번 끼니를 물으셨고 명절 선물까지 따로 챙겨주시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분 모두 정성스럽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주셨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부족했던 ‘쌤’이었지만 상투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 가득한 감사 인사 겸 작별 인사를 건네셨다. 차곡차곡 쌓인 그들의 존중과 배려는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Y 학생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유가 됐다.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하던 중 뜻밖에 가르침을 받았다.

 

 

박찬웅 기자

pcw0404@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