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사회를 바꾸는 방법

고등학교 1학년, 우리 학교에 처음 부임하신 미술 선생님은 갓 입학한 우리에게 ‘나만의 명함 만들기’를 첫 과제로 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했다면 ‘어떠한’ 직업인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과제를 내주신 건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막막한 고등학교 생활의 갈피를 조금이라도 잡으라는 의도였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 과제를 받고 ‘어떻게 하면 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조금 더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필자는 기자, 작가, 정신과 의사 등 여러 직업을 고민하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런 필자로서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껏 가졌던 꿈과 관심사의 공통점을 살펴 어떠한 인간이 되고 싶은지 대신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항상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이러한 의미를 담아 프라이팬 모형 위에 지구 그림을 그려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형태로 명함을 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필자는 이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라는 위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 허무맹랑할 수 있는 꿈이지만, 사회를 변화하는 데 필자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학창 시절 공부를 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대학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필자가 원하듯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꿈에 더욱 가까워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스펙 쌓기와 학점을 따기 위한 노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어야만 하는 진로 선택,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등은 ‘재빨리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흐릿한 어떻게 달성할지도 애매한 꿈을 쫓기는 힘들었다.

대학 입학 후 느낀 또 다른 점은 모두가 꿈꾸는 ‘자신이 원하는 사회’는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필자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가 가지는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고 연대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누군가는 경제 성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누군가는 자신 혹은 자신의 집단이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모두가 잘 사는 것에 반대하고 이기심을 부리는 사람들, 집단 사이를 갈라치며 잇속을 차리려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이처럼 모두가 원하는 사회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원하는 사회가 다른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테제인데 필자는 이를 깨닫고 매우 허무함을 느꼈다. 이는 지금껏 필자의 목표이자 마음을 끓어오르게 했던 무언가가 사실은 허상이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데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미술 선생님도 우리에게 ‘어떠한’ 직업인이 되고 싶냐고 강조하신 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느냐를 넘어선 것일 수 있다. 필자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순간마다 필자가 선하다고 믿는 ‘어떠한 것’, 즉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대학생의 신분에서도, 훗날 직업을 갖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사회를, 환경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려고 한다. 사소한 것의 실천, 진부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필자는 이 실천의 힘을 믿는다. 사소한 걸 바꾸어 나간다면 언젠가 사회 역시 변화하지 않을까?

이민지 기자
ymj020110a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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