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신상공개, 그 정당성과 일관성을 향해서

최근 고유정 사건이나 한강 몸통시신 사건 등 흉악범죄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들 사건의 피의자인 고유정이나 장대호는 신상공개가 결정되면서 여론의 공개적인 질타를 받았다. The HOANS가 흉악범 신상공개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과거 사례를 조사하고 그 개선점을 찾아봤다.

끊이지 않는 흉악범죄

최근 강력범죄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고유정 사건’이었다. 해당 사건은 지난 5월 말 제주도 한 펜션에서 피의자 고유정이 전 남편 강 씨에게 마약성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인 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사건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에 따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를 열어 당시 피의자 신분이던 고 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경찰 측에서는 ▲범행 수법의 잔혹성 ▲범행 결과의 중대성 ▲범행 도구도 압수된 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8월에 일어난 한강 몸통시신 사건은 마곡철교 남단 부근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면서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의자 장대호는 8월 8일 자신이 일하던 구로구의 한 모텔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숙박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한강에 유기했다. 경찰은 고유정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특강법에 따라 심의위를 진행하고 피의자 장 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가리거나 밝히거나

이처럼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은 특강법에 따라 신상공개가 가능하다. 이는 2010년 4월 특강법에 신설된 제8조 2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해당 법 개정 이전엔 죄질이나 여론의 압박과는 관계없이 피의자 신상공개가 불가능했지만,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와 더불어 당시에는 신상공개를 다룬 법이 없었음에도 언론에 의해 강호순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명확한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불붙은 신상공개 논란은 피의자 신상공개 법제화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2010년 개정을 통해 신설된 특강법 제8조 2항은 신상공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적시하고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살인·강간 등 특강법 제1조에 정의된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하는 피의자일 것 ▲범행수단이 잔혹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재범방지와 범죄예방 등 공익성이 있을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 피의자의 이름, 얼굴을 비롯한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신상공개 여부는 심의위에서 결정한다. 지방경찰청 형사과장 주도하에 열리는 심의위는 외부전문가 4명과 경찰위원 3명으로 구성된다.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과 같은 해 발생한 제주도 성당 살인사건 심의위에서는 각각 정신과 의사와 목사가 초빙되는 등 사건의 특성에 따라 외부전문가 구성도 달라진다. 심의위에서 피고인의 범행이 특강법 제8조 2항에 명시돼있는 모든 조건에 부합된다고 의결할 때 신상공개가 이뤄진다. 현재 경찰은 구속영장 발부 후 신상을 공개하는 걸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단 피의자의 실명이 이미 알려진 사건에 한해서 구속영장 발부 전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신상공개 10년, 그 면면과 찬반양론

특강법 제8조 2항 신설 이후 현재까지 고유정, 장대호를 포함해 총 20건의 신상정보가 해당 법률에 근거해 공개됐다. 2010년 6월에 일어난 영등포구 초등생 납치·성폭행 사건의 김수철은 해당 법안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첫 피의자가 됐다. 특강법 개정안은 당시 국회에 계류 중이었지만 경찰은 “개정안의 요건을 참작해 사안별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겠다” 고 밝히며 피의자의 사진을 직접 공개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김수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10년간 신상정보 공개와 30년간 전자발찌 착용을 명했다. 이 밖에도 ▲수원 성폭행 미수·토막살인사건의 오원춘 ▲수원 팔달산 토막시체 유기사건의 박춘풍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의 조성호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의 김학봉 ▲제주도 성당 살인사건의 첸궈레이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의 이영학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 등 여러 흉악사건 피의자들이 해당 법안에 의해 신상이 공개됐다.

다만 재판 전에 신상을 공개하는 특강법의 해당 조항에 대한 반대 의견 역시 존재한다. 반대 측에서는 우리 헌법에 규정된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든다. 재판을 통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이뤄지지 전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이다. 특강법이 규정하는 신상공개 조항은 범죄사실이 완전히 증명되기 전에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완전히 위배하는 조항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아울러 범죄자 신상공개가 범죄예방에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형사정책상 함의를 내세우는 입장도 존재한다.

신상공개가 주변인에 대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꼬집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고유정 사건이나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의 가해자 신상공개 이후 일부 누리꾼이 이들 가족의 신상까지 공개해 버리면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중부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장현석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신상공개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나, 공익에 기여할 경우 등 예외적으로 가능하다”라고 설명하면서도 “그럼에도 신상공개는 자칫 명예살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찬성 측에서는 흉악범 신상공개를 통해 흉악범이 누군지를 국민에게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피의자에 대한 광범위한 제보를 받아 수사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 피의자인 조성호의 신상이 공개되었을 때 이것이 계획범죄임을 알려주는 제보가 이어져 수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해당 입장을 더욱 강화한다.

신상공개에 일관성은?

그러나 신상공개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흉악범 신상공개의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일관되지도 않다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공통적이다. 흉악범 신상을 법에서 규정한 요건에 맞으면 ‘공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요건이 갖춰진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할지 말지는 담당 심의위 위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진다. 이 점이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의 경우엔 신상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역시 일관적이진 않다. 2016년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의 김학봉은 조현병 경력에도 불구하고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신상공개를 통해 재발방지와 범죄 예방 효과가 크다고 본다”라고 신상공개 이유를 밝혔다. 같은 해 5월 강남역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심신미약으로 인해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지난 사례를 보면 토막살해와 같은 흉악사건은 대부분 신상공개 대상으로 판정됐지만 그 조차도 일관성이 부족했다. 일례로 지난 4월 이웃집 노인을 토막살해하고 유기한 50대 남성의 경우 1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지만 공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상공개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심각한 범죄라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등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라며 “지방청마다 열리는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통일하거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신상공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범죄자 신상공개에 관해 가장 많이 구설수에 오르는 주제가 범죄자의 인권 문제다.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흉악범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범죄자의 권리란 형사사법기관이 처벌수단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일컫는다. 법치국가는 흉악범이라고 할지라도 공정하고 적법한 형사절차를 통해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특강법에 따른 신상공개 사례들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MBN과의 인터뷰에서 “신상공개의 요건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관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봤다. 신상공개의 요건을 더욱 명확히 명시해 일관성을 갖춘다면 이는 흉악범 신상공개에 있어서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자의 권리 사이의 균형을 잡을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풍환·권민규·오성원·장윤서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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