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미얀마의 민주주의

지난달 1일 미얀마에서 문민정부 출범 5년 만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유엔과 현지 외교사절단의 자제 촉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얀마의 입법·행정·사법 전권이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에게 이양된 상태다. 세계 각지에서 미얀마를 향한 민주주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지금, 미얀마 쿠데타에 얽힌 미얀마 내외의 문제를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미얀마 군부는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해 11월 총선에 꾸준히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쿠데타를 암시해왔다. 쿠데타 직후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실권자인 아웅 산 수 치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과 윈 민 대통령을 구금했다. 또한 이날 군부는 장·차관을 새로 지명하고 1년 뒤 새로운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지난달 7일 약 10만 명이 쿠데타 항의 시위를 벌여 주요 도로가 봉쇄되고 병원과 은행, 정부 기관 대부분의 영업이 중단됐다.

 

쿠데타의 배경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민간 정부가 쿠데타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군부가 오랫동안 쌓아온 정치적 자신감과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 집권 당시 미얀마에서 군은 행정부 산하 조직 이상의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미얀마군의 전신 버마 독립군(BIA)은 독립운동과 정부 수립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이에 더해 소수민족의 자치 운동에 대처하기 위해 예산과 인재가 지속적으로 투입되면서 군대가 비대해졌다. 이런 군을 등에 업고 1962년 당시 국방장관이던 네 윈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해 독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국제사회의 압력과 아웅 산 수 치 주도의 민주화 운동으로 1990년부터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마침내 2015년 총선에서 수 치 고문이 이끄는 NLD가 승리하면서 문민정부 1기가 출범해 53년간 이어졌던 군정이 끝났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여전히 세력을 유지했다. 군사 정권 당시 제정한 헌법에 따라 군부는 선거와 무관하게 상·하원 의석의 25%를 할당받는 것은 물론 내무·국방·국경 경비 등 3개 안보·치안 부처의 수장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군은 독립 이후 70년 넘게 계속된 종족·지역·종교 분쟁에서 국가 통합과 질서를 확립한 주체였다. 이에 수 치나 민주화 운동 세력도 미얀마의 통일을 지키는 군부의 역할을 인정하며 일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미얀마 내에서는 민간과 군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쿠데타 위협은 점점 강해졌다. 전체 의석 중 군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86%에서 지난해 30%까지 급감하자 군부는 총선 결과에 불만을 내비쳤다. 2017년 문민정부에 대한 타국의 지원이 끊기면서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당해 군부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가한 학살을 수 치 고문이 옹호하면서 수 치 정부에 대한 타국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미얀마 내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타국 세력이 수 치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그의 민간 정부는 완전히 고립됐다. 이에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이 꾸준히 확대된 끝에 결국 지난달 현실이 됐다.

 

저항하는 국민, 탄압하는 군부

 

쿠데타 직후인 지난달 2일부터 양곤을 포함한 미얀마 주요 도시에서 미얀마 군정에 항의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시위대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또한 수 치 고문의 초상화와 NLD의 상징색인 빨간색 끈과 깃발을 흔듦으로써 수 치 고문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석방을 촉구했다. 시민들은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 유혈탄압을 자행했던 군부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행진로를 우회하거나 경찰에 장미꽃을 달아주는 등 비폭력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 내 각국 대사관과 타국의 미얀마 대사관에서도 시위에 호응하며 민주화 운동은 세계 각지로 퍼졌다.

이번 쿠데타 반대 시위에선 미얀마 국민 절반이 사용하는 페이스북과 더불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가 시위 조직의 핵심 도구가 됐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 운동에 관한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퍼트리며 도움을 호소했다. 저항 운동이 SNS를 통해 미얀마를 넘어 세계적으로 퍼지자 군정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달 3일부터 모든 SNS를 하나씩 접속 차단했고, 이어 6일 미얀마 전역의 인터넷을 봉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날 유엔 인권사무소와 페이스북 측에서 철회를 촉구하고 이틀 연속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다시 인터넷 접근이 가능해졌다.

시위가 계속되자 군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인터넷 봉쇄가 해제된 후 군부는 곤봉 및 고무탄에 실탄까지 동원하며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피해 영상이 SNS에 게시돼 발포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군정은 지난달 15일 다시 통신을 전면 차단하고 무력 대응을 유지 중이다. 26일에는 군정이 친군부 시위대를 고용해 쿠데타 반대 시위 참여자에게 폭력을 휘둘러 숨지게 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시위를 폭력사태로 변질시켜 진압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규탄하는 서방국, 침묵하는 주변국

 

미얀마 쿠데타 발생 이후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는 가운데 지난달 14일 미국과 영국, 유럽 연합(EU) 대표단 등 미얀마 주재 17개 대사관은 공동으로 시위대를 지지하고 군부의 시위대 체포와 인터넷 차단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태가 발생한 1일 당일 성명을 발표해 버마(미얀마)의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며 미얀마에 대한 제재 상황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미얀마 군부 인사와 관련 기업에 제재를 가하고 미국 내 미얀마 정부 자금 동결과 수출 제한 등의 조치를 시행하며 미얀마 군부를 압박했다. 영국과 EU는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는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회의를 앞두고 쿠데타를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고, EU는 로힝야 사태로 미얀마에 부과한 제재에 추가 조치를 시행할 것을 시사하는 등 서방 국가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로 지역 정세에 변화를 맞이할 주변국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이번 사태에 우려를 표했다. 싱가포르 외무부는 쿠데타 발생 당일 즉각 평화적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을 주문한 바 있다. 이후에도 발라크뤼시난 외교장관이 지난달 16일 의회에 출석해 미얀마 군부의 일련의 제한 조치들과 무력 충돌에 우려를 표하며 평화로운 해결책 마련을 재차 요구했다. 필리핀은 쿠데타 당일 대통령궁 대변인을 통해 내정간섭 불가 방침을 밝혔으나 이후 10일 록신 외교장관이 싱가포르의 표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전 상황의 완전한 회복”을 요구하며 쿠데타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두 정상 또한 5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동남아시아 역내 국가 공동체인 아세안(ASEAN)에서 미얀마 문제에 관한 특별회의를 열 것을 의장국인 브루나이에 요청할 것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얀마의 인접국인 라오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심지어 태국은 부총리가 미얀마 쿠데타가 미얀마 국내 문제로써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더해 총리가 미얀마 흘라잉 최고사령관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며 간접적인 지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베트남과 캄보디아도 아세안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근거로 내세워 논평을 거부했다. 사실상 미얀마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의 미온적인 반응은 이들 국가가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고 있거나 독재자 혹은 정당이 장기 독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태국의 경우 현재 집권 중인 쁘라윳 총리가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으며 라오스와 베트남은 수십 년간 공산당이 장기 독재를 이어오고 있다. 캄보디아 또한 군 지휘관이었던 훈 센 총리가 35년째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정부는 미얀마 군부의 민주주의 전복을 지적할 경우 자국 정부의 정통성이 동시에 부정될 수 있고, 이번 사태에 아세안 회원국 혹은 아세안이 개입해 내정 불간섭 원칙이 흔들리는 것 또한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세안 각국의 자본이 미얀마에 투자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얀마의 정치적 위기가 지속되는 것 또한 이들이 바라는 방향이 아닌 바, 이들 국가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미얀마

 

미얀마 쿠데타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미얀마가 현재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간국’에 속한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 두 국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며 외교적으로도 중국에 의존하되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동남아 지역 가운데 가장 성장세가 가파른 베트남과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다는 점과 아직 체제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미얀마는 미중 갈등의 핵심에 위치하면서도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격전지이다.

본래 미국은 1988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얀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 시위 이후 미국은 미얀마를 북한, 쿠바와 더불어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고 미얀마 군부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가했다. 경제 제재는 물론 미얀마의 ASEAN 가입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미얀마 문제를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UN 안전보상이사회에 상정하는 것에도 미국이 앞장섰다.

미국이 다소 강경하게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원한 이유는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얀마에 친미 정권이 수립되면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중요성은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더욱 두드러졌다. 오바마 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한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을 완성하는 데 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해지면서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최초로 미얀마의 떼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졌으며, 2016년에는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등 우호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2017년 미국이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 사태를 비난하며 두 국가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된 상태다.

미국이 미얀마 군부에 가하는 제재를 상쇄하고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 주체는 중국이었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세우며 미얀마에 제재를 가할 때 중국은 매년 미얀마에 사회 간접 시설 건설비용으로 2억 달러 상당을 원조해 왔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미얀마 군부가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됐다. 1990년 이후 미얀마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점점 불어나 현재까지도 중국은 미얀마의 최대 교역국으로 남아있다. 그 대가로 중국은 미얀마가 가진 천연자원을 확보하고 미얀마를 경유하는 석유 및 천연가스 수송관을 활용해 현재 중국에서 소비하는 물량의 1/4을 운송한다. 중국은 본래 수입원유의 80%를 미국이 장악한 말라카 해협을 통해 수송했으나, 해당 수송관 건설 후 미국의 자원 수출 제재로부터 오는 타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그 밖에도 중국은 미얀마의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본을 무이자로 제공하는 등 미얀마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 사회 내에서 중국에 무분별하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반중국 정서가 나타나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 세력은 미중 갈등 속에서 미얀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중국에 대한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친중 성향이 강한 미얀마 군부마저 인도와의 관계를 증진하고 중국과의 연대 예산을 축소하는 등 ‘탈중국 정책’을 내세워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힝야족 학살 사태 이후 미얀마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탈중국 정책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년까지도 미얀마는 중국으로부터 35억 194만 달러(한화 약 3조 9,000억 원)에 해당하는 투자액을 받고 전체 수출의 30%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미중 갈등에서 노선을 결정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한국과 미얀마, 멀지만 가까운

 

우리나라는 쿠데타 발생 이전 정국 불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쿠데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지난 1월 29일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어떤 불만(grievance) 혹은 의견차(disagreement)도 정치적 대화와 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모든 이해당사자가 미얀마의 개혁과 국민의 이익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쿠데타가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2일에는 성명을 통해 미얀마 내 정치적 상황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16일에는 주한 미얀마대사와의 면담을 통해 수 치 고문 등 구금된 인사의 즉각적 석방과 시위대에 대한 폭력 자제 등을 요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얀마 군부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양상이지만 정부는 실질적 압박이 될 수 있는 제재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가 작년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신남방정책 플러스 정책에 따라 급속도로 이뤄지던 한국과 미얀마 사이의 경제협력과 그 과정에서 투입된 한국 자본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과 미얀마는 장관급 채널로 통상산업협력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미얀마 내에서는 ‘한-미얀마 경제협력산업단지(KMIC)’가 작년 12월 착공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BNK캐피탈 현지 법인이 지난달 17일 영업을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미얀마 내 한국 기업과 교민의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가 섣불리 적극적으로 쿠데타 비판 대열에 합류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편 한국 내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사태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6일부터 재한 미얀마인 단체는 미얀마 대사관 등지에서 군부를 규탄하고 한국의 시위대 지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정치권에서도 지난달 8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행위’로 규정하며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했다. 동시에 민주당은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고 미얀마 민주주의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국회 차원의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수 치 고문의 방문과 광주인권상 수상 등으로 미얀마 민주화 인사와 연이 있는 광주에서도 연대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군부가 부정선거의 어떤 근거도 내놓고 있지 못함을 비판했고, 5.18 기념재단은 광주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과 함께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를 가졌다. 재한 미얀마인 사회는 물론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 그 결말에 세계가 달렸다

 

현재 미얀마는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군부와 민정 회복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대립이 점차 심화하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시위대는 군부의 탄압에도 계속해서 불매운동 등 대내적 노력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대외적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제재를 시행했으며, 한국 또한 지난달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하는 등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최근 수단, 말리 등지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제3세계 국가에서 민주 정부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미얀마의 사례는 미중 갈등 양상 속에서 미얀마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과 이번 사태가 바이든 정부의 첫 외교적 시험대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가 선거 당시 내걸었던 기조인 ‘세계 질서의 회복’에 완전히 어긋나는 사태인 점에서 미국이 미얀마 군부 및 중국과의 충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도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수준을 높이는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미얀마 쿠데타의 결말은 국가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치 외교의 바이든 행정부와 신남방정책의 한국 정부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원겸·신형목·최혜지 기자
202015007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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