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LE을 돌아보다

  이번 달 12일부터 제51대 본교 총학생회장단 선거를 위한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이 시작되며 제50대 본교 총학생회 ABLE(이하 ABLE)의 임기도 끝을 향하고 있다. ‘가능성을 넘어 결과를 만들다’는 기치 아래 출범한 이래 ▲입학금 폐지 ▲단과대 공간문제 해결 ▲총장직선제 도입 등 가능성에 도전했던 ABLE의 지난 1년을 돌아봤다.

ABLE의 성공적인 공약들

  ABLE은 ‘상처받는 구성원이 없고 모두가 하나 되어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기조로 내세웠다. 이러한 기조는 ABLE이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학교 본부는 청소노동자의 인원 유지 약속을 어기고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해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들의 인력을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ABLE은 1월 28일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학교 당국의 독단적인 행정을 규탄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연대로 학교 측은 1월 30일 청소노동자의 인원 유지를 재확인하고 아르바이트 용역업체 선정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학생뿐 아니라 본교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총학생회로서 일을 잘 해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ABLE은 임기 초부터 입학금 폐지를 비롯한 등록금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등록금문제특별위원회(이하 등특위)를 구성해 ▲법인의 법정부담금 납입 비율 증대 ▲입학금 폐지 및 등록금 인하 ▲학생 측 요구안에 대한 예산 우선 배정 ▲무분별한 외국인 등록금 인상 지양 ▲실험실습비 및 교과과정운영비 사용 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등특위는 5차례에 걸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에 참가해 학교위원들과 논의했을 뿐 아니라 등심위의 불균형한 구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ABLE이 주도한 이번 등특위에서는 ▲입학금 점진적 폐지 ▲실험실습비 및 교과과정운영비 사용 내역 공개 ▲법인의 지원금 60억 원 확보 ▲10%로 책정됐던 외국인 등록금 인상 폭을 5%로 고정 등을 학교 측과 합의하는데 성공했다.

  애기능생활관 학생식당(이하 애기능 학식)의 재도입도 학생들의 요구가 수용돼 구체화된 예다. 본교 자연계 캠퍼스 학생들이 인문계 캠퍼스의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학생식당 이용에 불편함을 겪자, 폐점됐던 애기능 학식을 부활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애기능 학식의 메뉴와 가격대는 물론, 식당의 이름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됐다. 이는 자연계 캠퍼스 학생들의 학식 관련 불편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단발에 그친 기숙사 신축 노력

  2013년 부지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성북구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기숙사 신축은 논의가 수면 위로 등장한 이후 역대 본교 총학생회들이 꾸준하게 문제의식을 공유한 공약이었다. 그러나 ABLE의 경우 애초에 제시한 공약과 활동폭이 좁은 편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기숙사 신축과 관련한 ABLE의 유일한 공약이 지방선거를 의식해 기숙사생들의 주소권 이전을 권장하는 주소 이전 캠페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실현된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ABLE은 6월 지방선거와 12월 본교 총장 선거를 의식해 올해 1학기를 학생들의 주거권을 주장할 중요한 시기로 삼고 4월 12일 기숙사 신축을 요구하며 본교 중앙광장부터 성북구청까지 행진하는 ‘뉠곳행진’을 기획했다. 하지만 같은 달 성북구청장과 일회성으로 면담한 뒤에는 학교 본부나 성북구청 측에 신축을 위한 논의를 촉구한 바가 없어 단발성에 그쳤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3월에 주거복지국에서 기숙사 문제 대책 위원회를 신설했으나 이는 구관 내 점호제도와 취식 장소 부족 등 내부 문제의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또 기숙사 신축에 대해서는 주거권 향상을 위해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여전한 공간문제

    ABLE의 기조와 정책이 현실화된 좋은 사례와 달리 SK미래관, 홍보관과 관련된 공간문제 해결은 순조롭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SK미래관은 2014년 본교 발전계획서에서 문과대학(이하 문대)의 공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SK인문미래관의 현 이름이다. 염재호 총장(이하 염 총장)이 제시한 ‘개척하는 지성을 키워내는 대학’이라는 비전에 따라 SK인문미래관은 세미나실과 개인연구 공간으로만 구성된 SK미래관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4월 11일에 총학생회장단이 진행한 총장과의 면담에서 염 총장은 “SK미래관의 토론실을 강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공간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문대 소속 과들의 과실이나 자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ABLE이 공간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키는 총장을 필두로 한 학교 본부가 갖고 있어 학생사회 차원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ABLE은 학생들의 의견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총장 선거에 학생들의 영향력을 제고하고자 총장직선제를 추진해왔다.

걸어온 길만큼 먼 총장직선제

  ABLE은 당선 전 공약에서부터 총장직선제를 제시했다. 총장직선제는 본교 총장을 최종적으로 선출하는 재단 법인이 본교의 외적 성장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학내 구성원의 실질적인 복지에 관련한 공약을 평가 절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ABLE은 ‘2만 총학생회원이 참여하는 총장선거’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이만총총 프로젝트-내 손으로 뽑는 고려대학교 총장(이하 이만총총)’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총장직선제의 개념과 당위에 대한 카드뉴스를 제작해 사업을 진행했다. 이밖에도 대동제에서 이만총총 부스를 운영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학내 관심을 유도했으며, 염 총장의 공약이행도 평가에 대한 학생 설문조사를 진행해 총장선출 과정에 학생 의견이 확대돼야 할 당위를 찾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총장 선거에서 학생 표 반영 비율을 확대하고 총장선출 최종 결과에 학생 의견을 직접 반영토록 하라고 주장한 것은 구체적인 방안 없는 추상적인 내용이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편 지난 7월 17일 진행된 ‘총장의 민주적 선출을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총장선출 관련 사안을 학내 구성원에게 공개하고 총장선출제도 개정 권한이 있는 개정위원회에 학생 단위와 직원 단위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보다 구체적인 요구안이 제시됐다. 9월 4일에는 논의를 미루는 법인에 대항해 전체학생대표자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총학생회장이 노숙 단식을 진행했으나, 7일 차인 9월 10일 법인의 논의 약속을 받고 농성을 철회했다. 실제로 9월 19일과 28일에 총장선출제도협의회가 개최됐다. 그러나 2차 협의회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지난달 31일 개최된 개정위원회에서는 학생의 발제 등 제한적인 참여만 인정되었으며, 관련 논의로 소집이 요구되면 학생 단위 요구 개정안을 참조하겠다고 약속한 데서 성과가 머물렀다.

  총장추천위원회에 학생 단위 비율을 늘리고 개정위원회에 새로이 학생 단위를 포함시키자는 ABLE의 요구는 기존의 밀실 논의와 막대한 법인의 권한을 감안한다면 이사회와 재단을 상대로 유례없는 사업을 개시한 신중하고 좋은 전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교가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의 총장직선제를 지향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가령 특별기획 카드뉴스에서 동국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이미 총장직선제를 도입하고 학내 담론에 힘을 실어준 타 대학의 각색 형태를 살피긴 했으나 본교에는 어떤 형태가 적용돼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명확한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본교에서 직선제에 관한 담론이 학내 구성원 사이에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지난 2016년 학생총회와 본관 점거 등 학생사회의 총의를 모으기 위한 행동에 비해 총장직선제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모에 걸맞은 학내 구성원의 공감과 합의를 체감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불통 총장’을 외치며 총장직선제를 꿈꿨던 ABLE이 학생들이 실감할 만한 합의점에 수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직선제 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후임 총학생회들에게 여전한 과제를 남겼다.

도약도, 한계도 많았다

  ABLE은 임기 초부터 청소노동자 투쟁과 입학금 폐지를 성공으로 이끌며 순조롭게 1년을 시작했다. 반면, 공간문제나 총장직선제 등에 관해서는 학교 측과 논의의 장을 형성하면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학생사회의 사업 참여 부족이라는 ABLE 외부의 문제점 또한 존재하지만 여전히 학생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는 것은 ABLE의 역할이다.

  공약의 폭이 좁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ABLE은 임기 말인 2학기에는 사실상 총장직선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실질적으로 유의미하게 진척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가오는 제51대 총학생회장 선거가 오랜만의 경선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본교 총학생회의 앞날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재은·김동후·박지우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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