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으로 혁신의 길 막히나

최근 정부의 연구개발비(이하 R&D) 예산 삭감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낭비되는 예산이 많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의견과 ‘현재도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과학계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에 본교에서도 R&D 예산 삭감 대응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 중이다. 현재 R&D 예산 삭감 현황과 과학계 반응을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33년 만의 R&D 삭감

 

2024년 전체 R&D 예산안은 25조 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16.6%, 5.2조 원 삭감됐다. 지난 8월 브리핑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R&D를 R&D답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나눠주기 사업·성과 부진 사업과 같은 낡은 R&D 관행과 비효율을 구조조정해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고 정책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른 예산 배분·조정 결과 ▲인공지능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전략기술 분야에는 올해보다 6.3% 증가한 5조 원이 투자된다. 대한민국이 우위에 있는 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또한 ▲범죄 ▲자연재해 ▲국방과 같은 국가 임무 수행에 필요한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 역시 확대된다.

33년 만의 R&D 예산 삭감은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 집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예산이 23%,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예산이 28% 삭감됐다. 대학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해당하는 4대 과학기술원 예산이 이전 수준에서 10~15% 삭감됐다. 이에 연구기관의 특성상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연구가 많으며,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손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삭감?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에 대한 이권 카르텔, 예산 나눠 먹기 등 문제를 언급하며 비판했다. 이후 정부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언급된 문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갑자기 행해져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0월 과학기술계연대회의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수 및 연구원 ▲박사 연구원 ▲대학원생 등 2,8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구 현장에 카르텔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설문 문항에 동의하지 않은 인원은 83.3%에 달했다. 오히려 ‘R&D 카르텔에 대한 정부의 부족한 설명’과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과학계에서는 R&D 예산 삭감이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 ▲현장 연구원의 사기 저하 ▲대학 이공계 기피 현상 심화 등을 현실화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상황이다. 해결책으로 삭감 전의 과학기술혁신본부 원안대로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36.8%로 가장 높았다.

이런 가운데 정권에 따라 R&D 예산을 바꾸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민 의원 역시 해당 의견에 공감하며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기 국회 예산 심사에서 꼼꼼히 따져 예산 복원을 통해 국가 과학 기술 경쟁력 약화를 막아낼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과학과 기술 혁신에 드리운 그림자

 

대한민국의 GDP 대비 R&D 지출 비중은 세계 5위에 달한다. 현시점에서 R&D 투자를 줄일 경우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또한 어떤 점이 낭비이고 비효율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낭비해 왔으니 R&D 예산을 줄이겠다’는 일방적인 정책은 과학계와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면 요소를 특정한 후 ‘핀셋형 삭감’을 해야 한다. 2024년도 예산안은 지난달 1일을 기점으로 국회로 이관돼 심의 중이다. 최대 규모의 R&D 예산 삭감이 예고된 가운데 국회 내에서 최종 예산안이 어떻게 확정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인형진·김은서 기자

dundisoft@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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