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材가 아니라 人災

지난달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구청장 1명을 뽑는 보궐선거지만 사실상 전국구급 선거였다. 뼈아픈 국정 중간 평가 결과에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 처음으로 ‘반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돌아봐야 할 여러 가지 요소 중 거듭된 인사 실패를 The HOANS가 면밀히 살펴봤다.

 

지난달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7.15%P라는 격차로 참패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지난해 대선 ▲지난해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연이어 승리하며 기울어졌던 정세가 2년 만에 뒤집힌 격이다. 총선 전 마지막 선거에서 여당에 빨간불이 켜진 요인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간 ▲청와대 이전 ▲국민의힘 당권개입 의혹 ▲바이든·날리면 사태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특혜 의혹 ▲잼버리 파행 등 민심을 악화시키는 사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패배의 원인으로 인사 문제가 지목된다. 인사 문제 이면에는 부실한 인사 시스템과 전투적 인사 철학이 존재한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직후 민정수석비서관실(이하 민정수석실) 폐지를 예고하며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에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정수석은 한때 대통령의 직속 비서관으로서 고위 공무원 등의 인사 검증에 막대한 영향력을 휘둘렀다. 윤 대통령은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신상털이와 뒷조사를 벌여왔다”며 폐지 이유를 덧붙였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해 공무원과 민간인 정보를 불법 사찰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은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대통령령)’ 시행을 공고해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으로 이관했다. 인사 검증 업무가 청와대에서 법무부로 넘어가며 언론에 노출될 여지가 커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정보관리단이 출범하기 한 달 전 “앞으로는 인사 검증이라는 업무 영역이 국회에서 질문을 받게 되고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되고 이렇게 언론에 질문받는 영역이 되는 거다”고 설치 의의를 설명했다.

 

인사정보관리단 취지와 완전히 반대로?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앞두고 ▲법무부 비대화 ▲검찰 라인의 인사 요직 독점 ▲인사 정보 비공개 등 우려가 쏟아지기도 했다. 본래 법무부는 범죄 수사와 공소 제기를 담당하는 검찰을 산하에 두며 형사 사건의 상당 부분을 맡는다. 또한 법원의 판결에 따른 행정 절차와 입국심사나 비자 등 국적 업무를 주로 처리했으나 인사 검증 업무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고위직 공무원의 비리 수사 역시 검찰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상위 기관인 법무부가 고위직 인사 임명에 개입한다는 사실은 검찰 수사에 차질을 빚을 소지가 다분하다.

한편 투명한 인사 검증 정보 공개라는 당초 취지에 어긋난 법무부의 행태도 논란을 야기했다. 지난달 10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인사 검증 매뉴얼과 담당 업무 등 인사정보관리단에 대한 정보를 법무부에 답변 요청했으나 돌아온 건 인사정보관리단장과 담당관이 포함된 조직도뿐이었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5건의 업무 보고서 200여 쪽 중 경향신문이 확보한 인사정보관리단 내용은 고작 한 쪽이었다. 법무부 사이트에도 인사정보관리단장과 담당관 세 명이 표시된 조직도만 공개했다. 해당 조직도에는 전화번호조차 공개돼 있지 않다. 이에 박용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은 “원래 이 검증단을 설치하려고 하셨을 때 설명하셨던 것과 지금 장관의 태도가 안 맞다”며 비판했다.

법무부는 검찰 라인 독점 및 법무부 비대화 논란에 비검찰·비법무부 출신의 인사 분야 전문가를 단장으로 채용할 예정이며 법무부 장관은 중간보고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인사정보관리단 사무실을 법무부에서 독립시켜 설치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초대 관리단 단장으로 박행열 인사혁신처 리더십개발부장이 임명됐다. 이러한 인사 검증 시스템적 한계는 현재 윤 정부의 계속된 ‘인사 실패’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구멍 숭숭 검증

 

이러한 부실한 인사 검증 체계는 윤 정부에서 많은 낙마 사례를 만들었다. 첫 낙마는 김인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다. 김 전 후보자는 한국외대 총장 재임 시절 교육부 감사로부터 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으로 14번의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추가로 김 전 후보자가 방석집에서 논문 심사를 받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다. 결국 김 전 후보자는 지명 21일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녀 의대 편입 및 병역과 관련해 ‘아빠 찬스’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낙마했다. 박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논문 중복 게재와 학제 개편 논란에 취임 한 달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장관을 포함해 부실 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는 말을 남겨 더욱 논란이 됐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은 임명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정 변호사의 사례는 부실한 검증 시스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였다. 인사 추천부터 검증까지 같은 검찰 출신이 관할해 검찰 식구끼리 자정능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증명했다. 윤 대통령을 포함해 한 법무부 장관, 이원모 인사비서관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보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에서 같이 근무했기에 사전에 이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경찰 탓, 정 변호사 개인 탓으로 그 책임을 돌렸고 법무부 또한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난달 6일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약 10억 원대의 비상장주식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과 자녀 김앤장 인턴 특혜 등의 여러 의혹 탓에 35년 만에 임명동의안 부결로 낙마한 대법원장 후보자가 됐다. 비상장주식 미신고 사실을 미리 알리며 “법이 바뀐지 몰랐다”는 해명은 ‘판사가 법도 모른다’는 탄식을 불렀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로 직무 수행하는 데 있어 능력과 자격에 여러 문제가 있는 후보라고 판단했다”며 당론을 부결로 채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새로운 후보자를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반복적인 인사 참사에도 정부는 서로 떠넘기기 바쁜 모습이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한 법무부 장관은 인사 부실 검증 의혹에 인사 검증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피한 채 “의견을 부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서관실로 넘기는 역할까지만 한다”며 검증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실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스타 싸움꾼을 원하는 대통령

 

계속되는 인사 참사가 온전히 인사 시스템 탓은 아니다. 대통령의 인식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7월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서 각 부처 장관에게 “잘하든 못하든 언론에 자주 등장해 다 스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9일에는 “국무위원의 존재 의의가 논리와 말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고 선언했다. 홍범도를 위시한 이념 논쟁을 강조하며 “현재 여야의 스펙트럼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점잖게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며 국무위원에게 적극적으로 싸움을 종용했다.

지난 9월 12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채 상병 사건으로 탄핵 추진에 직면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2차 개각을 단행했다. 개각 대상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3개 부처였다. 각각 ▲유인촌 전 대통령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 ▲신원식 전 의원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낙점됐다. 이들 모두는 논란이 되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 재임 당시 욕설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 또한 유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야당과 문화계에서는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명백하게 입증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발했다. 발언 논란뿐만 아니라 탈세 의혹도 제기됐다. 유 장관의 두 아들이 금전적 지원을 받아 각각 7억 원, 17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여당이 이에 대해 증여세 탈세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유 장관은 두 아들의 증여세 납부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과거 보수 집회에서 했던 막말이 논란이 됐다. 신 장관은 ▲“문재인 모가지 따는 것은 시간문제” ▲“5.16은 혁명” ▲“12.12 쿠데타는 나라를 구하러 나온 것” 등의 막말이었다.

김행 전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월 14일 첫 출근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를 해체한다는 것이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에 아주 드라마틱(dramatic)하게 엑시트(exit)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2013년 김 후보자는 청와대 대변인을 맡게 되면서 소셜 뉴스의 본인 지분 주식을 시누이에게 팔았다 대변인 활동 이후 다시 사들였다는 이른바 ‘주식 파킹’ 논란이 불거졌다. 김 전 후보자는 “당시 소셜 뉴스는 적자구조에 빠져있어 매수자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며 “진짜 주식 파킹을 시도했다면 시누이 것만 다시 사줬지 남의 것을 왜 샀겠나”고 반박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김 전 후보자가 대표로 있는 위키트리가 범죄사실에 대한 비윤리적 묘사와 2차 가해성 내용이 담긴 기사들을 보도했던 점이 질의 대상이 됐다. 결국 인사청문회 도중 퇴장하는 등 신상 관련 논란을 해소하지 못한 김 전 후보자는 “선당후사의 자세로 결심했다”며 후보자직을 자진 사퇴했다.

 

인사 실패, 선거 참패로 이어지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역시 대통령 인사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판결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에 강서구청장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재가한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돼 사면받았다.

김 전 구청장이 다시 강서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 무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9월 17일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에 김 전 구청장을 공천했다. 김 전 구청장이 보궐선거 비용 40억에 대해 “애교로 봐 달라”고 발언해 더더욱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선거 결과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3만 7천여 표를 얻어 최종 득표율 56.52%를 기록하며 승리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9만 5천여 표, 39.37%로 17.15%P로 패배했다.

보궐선거 참패 나흘 후 국민의힘이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날 김기현 대표 사퇴론 등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나 결국 김기현 지도부 재신임으로 결론 났다. 임명직 당직자 전원 교체로 인적 개편에 시동을 건 김 대표는 당정 관계 재정립을 약속했다.

김 대표는 당 조직과 예산을 총괄해 내년 공천을 책임지는 자리에 윤 대통령 대선캠프 수행단장 출신 이만희 의원을 임명했다. 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여의도연구원장 자리에는 작년 수해 현장에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입방아에 오른 김성원 의원이 앉았다. 이런 상황 속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여당 집단 묵언수행의 저주를 풀어 달라”고 말하며 눈물로 당내 변화를 촉구했다.

 

인사가 萬事 아니라 亡事 되면 안 된다

 

인사가 만사(萬事)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하던 말이다. 사람의 일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끝난다. 어느 사회 집단이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야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만고불변의 진리를 망각하고 선거 공신이나 정권의 나팔수를 등용하면 그 정권에게 더 이상 동력은 없다. 인사 검증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다. 이는 어느 정권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윤 정부에서는 야당 등 비판 세력을 무조건 적으로만 보는 위험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싸움꾼을 뽑으려 한다. 선거 참패 후 자기반성을 통해 현재 기조로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를 바란다.

 

오정태·박예나·정상우 기자

jeong300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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