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법망은 촘촘한가

200명이 넘는 피해자를 낳은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담론에 불이 붙었다. ‘N번방 사건’은 ▲여성들의 신상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한 후 ▲이를 빌미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촬영토록 하고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사건을 일컫는다. ‘박사방’ 운영자였던 조주빈을 비롯해 이번 사건 주동자들의 처벌 수위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지대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률은 아직 미비한 수준이라는 평이 많다.

 

디지털 성범죄란?

법률상에는 디지털 성폭력이 명시적으로 정의돼 있지 않다. 다만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디지털 성폭력을 ‘디지털 기기 및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 사이버 공간에서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포괄’한다고 정의한다. 디지털 성폭력 중 현행법상 범죄로 간주되는 ▲불법 촬영 ▲비동의 유포 ▲유통, 소비 ▲유포 협박 ▲성적 괴롭힘은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과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해 처벌된다.

 

구멍 뚫린 법망

N번방 사건으로 인해 관련 법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현행법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성착취물의 소지는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됐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물의 소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8조에 의거해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되지만, 성인이 대상이 된 착취물의 소지는 관련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피해촬영물을 다운로드 및 시청하는 행위 모두 범죄임을 인지해 가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보는 것도 가해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낮은 형량과 양형 기준의 부재 또한 자주 지적된다. 흔히 언급되곤 하는 미국은 모든 죄의 형량을 더하는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어 직접적인 비교를 하긴 어려우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양형기준이 설정되지 않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낮은 형량이 반복된 것은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중 하나였던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인 손정우는 22만 건의 아동 성착취물을 유통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6월의 징역을 선고받았으며, 청소년에게 성착취물을 요구하며 협박한 경우에도 재판부는 징역 6월을 선고했다. 법정형 상한선보다 훨씬 낮은 형량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통과된 ‘N번방 방지법’, 그 내용은?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자 정치인들은 앞다퉈 ‘N번방 방지법’을 내놨다. 허술했던 법망을 더욱 촘촘히 해 더 많은 사이버 성범죄 피해를 막겠다는 의도다. 여론의 눈초리가 매서운 가운데 국회는 지난달 30일 열린 본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에는 ▲특례법 ▲형법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범죄수익처벌법) ▲아청법 등이 포함됐다.

2017년 이후 발의된 19개의 발의안을 모두 종합해 쓰인 특례법 개정안은 불법 성착취물을 다운로드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이 직접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물이라 하여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할 경우 처벌이 가능토록 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단순 소지자는 처벌이 불가능한 현행법에 대한 비판과 가해자들의 강요에 못 이겨 스스로 영상을 촬영한 피해자들의 상황을 모두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불법 촬영과 유포에 대한 형량 상한선 또한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됐다.
형법 개정안은 의제강간 기준연령 하향과 강간 예비·음모죄 신설이라는 굵직한 내용을 담았다. 이번 개정안은 1953년 형법 제정부터 유지됐던 기준연령인 13세를 16세로 상향했다. 의안원문에는 해당 개정의 이유에 대해 “성범죄로 인한 피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 서술했다. 강간 및 유사강간 등의 죄를 음모할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N번방에서 피해자를 강간할 계획을 세우는 대화가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는 점을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범죄수익법 개정안은 성착취물 유통을 통해 얻은 소득을 국고로 보다 수월하게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주빈은 박사방을 통해 1억 원을 벌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범죄를 통한 수익을 환수하려면 특정 범죄 사실과 수익 간의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이번 개정안은 성착취물을 통해 얻은 범죄 수익에 한해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로 입증책임을 완화함으로써 국고 환수가 보다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게 했다.

아청법 개정안은 성매수 범죄의 대상이 된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 아동·청소년’에서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바꿔 정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현행법에 따르면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청소년은 소년법상 보호처분 대상으로, 수사 기관에 의해 조사를 받은 후 소년부에 송치될 수 있다.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협박의 도구로 이용되거나 성매매 연루 아동·청소년이 신고를 꺼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 의안 원문의 설명이다. 이에 이번 개정안에서는 성매매 연루 아동이 소년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고, 국가와 지자체 단위에서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 센터를 설립도록 해 이들에 대한 보호책을 마련했다.

 

끝나지 않은 변화, 우려도 존재

여야는 20대 국회 안에 N번방 관련 법안 처리를 완료할 것을 공언했지만, 잔여 임기 내 많은 발의안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법안 중에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N번방 3법’ 중 하나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포함된다. 이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네이버와 같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불법 성착취물을 발견한 즉시 ▲삭제 ▲전송 방지 ▲전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법안이라는 호평과 동시에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수천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의 대화를 모두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 먼저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텔레그램의 경우 한국 법인이 존재하지 않아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기업에만 높은 수준의 감시와 책임을 요구하고, 막상 불법 성착취물이 성행하는 해외 메신저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요지다.

아직 발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잠입수사 도입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음지화되는 만큼 신고에 의존해서는 효과적인 수사가 힘들다는 것이다. 수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이 많지만, 명확한 선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잠입수사로 수집한 자료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범행의도를 가지지 않은 이에게 접근해 범행을 유도한 것으로 생각될 경우 불법 ‘범의유발형 수사’로 간주하며, 해당 수사로 얻은 정보는 증거로서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으려면

N번방 상태로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정치인들은 각기 다른 N번방 방지 대책을 만드는 데 분주하다. 디지털 성범죄를 엄벌하는 법안이 순탄하게 통과되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위원회가 열리는 등 많은 변화가 일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교묘하고 잔인해진다. 짧은 기간 이뤄지는 무더기 입법보다는 오랜 시간을 들여 법체계를 보완해 나갈 것이 권장되는 이유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기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형기준: 선고형을 정하고 집행 유예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지침이 되는 기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양형 기준에서 벗어날 시 이유를 판결문에 적시해야 한다.

 

장윤서·황제동 기자
yunseo0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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