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진실을 마주볼 때 이룰 수 있는 화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망자 수가 6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대학살은 사실상 유대 자본으로 움직이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많이 됐다. 그러나 1937~1938년 소련 스탈린 체제 아래 ‘피의 대숙청’은 꽤 신선한 소재다. 8월 23일 국내 개봉한 러시아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가 이달의 추천작이다.

밖에서는 권력을 잡은 히틀러가 소련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안에서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당서기이자 절친인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되면서 스탈린은 수세에 몰린다. 스탈린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옛 소련의 비밀경찰 NKVD(내무인민위원부)를 통해 대숙청을 시작한다.

‘한 명의 스파이를 놓치는 것보다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것이 더 낫다’는 표어 아래 1년간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 지침을 거부하거나 스탈린에 배치되는 언행을 하는 경우 처형된다는 공포가 지배하던 시기를 영화는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대숙청이 절정을 이루던 1938년은 극단적인 불신의 공포가 스탈린의 사냥개 NKVD까지 스며들었던 해다. 주인공인 볼코노고프 대위는 원래 NKVD의 유능한 경찰관이었다. 군화로 반국가세력을 걷어차고, 공산당의 상징인 빨간 운동복 차림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처리해 왔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던 어느 날 그는 출근길에 주검을 본다. 직속상관의 갑작스러운 투신자살이었다.

새로운 상관이 부임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동료 경찰관들은 ‘재평가’를 받기 위해 잇달아 불려 간다. 그 평가는 끔찍한 고문 및 즉결 처형과 매장의 대상을 만들었다. 다음 차례가 자신임을 직감한 볼코노고프 대위는 충동적으로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다.

도망친 볼코노고프가 도달한 곳은 재평가받은 동료들이 집단 매장된 무덤이었다. 그곳에서 평소 절친했던 동료의 환영을 본다. 이 동료는 끝없이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받게 된 시지프스처럼 지옥에서 영겁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내일 석양이 질 때까지 피해자 중 한 사람에게라도 용서받는다면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용서를 통해 죄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정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죄와 벌〉의 살인자 라스콜니코프를 구원으로 인도한 소냐와 같은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숙청당한 시체와 함께 지내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 아들이 죽은 후에도 당국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거짓말만 하는 남자 등 따듯한 용서의 장면이 아니라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처참한 인간 군상뿐이다. 이를 의심과 거짓이 생명과 직결되던 냉혹한 시기와 분리한 채 생각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시대 속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속죄와 양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억압적인 국가가 어떻게 범인(凡人)들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영혼을 위축시키는지에 대한 고찰 또한 담고 있다.

볼코노고프가 겪는 구원의 과정은 복합적이다. 단순히 생존본능에 기인한 두려움에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화해’의 모습이 나타난다. 화해는 ▲과정 ▲결과 ▲목표를 가리킬 수 있다. 이전에 존재한 과거의 갈등 등 정서적·인식론적·물질적 유산을 만족스럽게 처리해 미래지향적 관계가 발생하는 경우를 화해라고 한다.

용서가 없는 화해가 있을 수 있을까? 피해자가 가해자와 관계 회복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화해가 존재할까? 긍정적인 태도의 재정립 없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평화로운 공존, 협력 또는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를 용서 없는 화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에 볼코노고프는 ‘용서’를 받지 못했지만 ‘화해’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에도 여러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이곳은 북한의 남파간첩과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을 취조 및 심문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그러나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암흑기인 군사독재가 횡행하던 시절 권력에 비판을 가하는 노동운동가나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을 빨갱이로 모함해 온갖 고문과 취조를 통해 반신불수로 만들거나 죽여서 내보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 등을 명목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독재의 추억은 그것이 국가를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까지 파괴한다는 교훈을 줬다. 역사적 특수성으로 반공을 입에 달고 살며 그것을 명분 삼아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던 시기를 겪은 우리는 그것이 어떤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영화에서의 “이렇게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 잘못해서가 아니라 잠재적 적들을 위한 예방조치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다. 곱씹어 볼수록 이토록 무서운 말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에 참석하여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며 발언한 바 있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없이 언어공작을 비소처럼 사용하는 비상식적 행태가 만연하다.

국론을 통합해야 할 막중한 지위에 자가 진실을 외면한 채 이념을 무기 삼아 정쟁만 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에 김광동을 임명한 것이 증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 시에 일어났던 다양한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등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 이를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기관이다.

그러나 김광동의 과거 발언은 그가 적임자인지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4·19혁명이 ‘밥 달라 우는 백성의 얘기’라고 깎아내렸으며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 개입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보고서에 부역 등급을 매기는 등 진실화해위원회 취지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다. 국가범죄나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원래 목적은 이미 상실된 지 오래다.

좌나 우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태도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용기와 진실을 바탕으로 화해의 기반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아직도 이념에 빠져 과거 전체주의 파쇼정권이 범했던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볼코노고프 대위가 그랬듯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위협의 스펙터클을 만드는 일이 영화 속 이야기로만 남아있길 간절히 바란다.

오정태 기자

jeong300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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