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 사이로 흘러내린 신당역의 피

지난달 14일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이 다른 역무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2019년부터 피해자를 스토킹해왔던 입사 동기 전주환(남, 31세)이다. 전 씨는 피해자에게 수백 차례의 “만나달라”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도 모자라 피해자를 불법 촬영한 뒤 유포 협박까지 해왔다.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부분은 전 씨가 이미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행위로 재판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범죄가 발생하자 책임 소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날, 9월 14일의 재구성

 

2018년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동기로 안면을 튼 전 씨는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2019년 11월부터 불법 촬영물과 함께 350차례 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피해자를 협박했다. 이에 피해자는 작년 10월 전 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전 씨를 긴급 체포하고 피해자에 대해 한 달간 신변 보호 조치를 취했다.

이후 전 씨는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했다. 그런데도 전 씨는 풀려난 뒤 작년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피해자에게 또다시 20여 차례 메시지를 보내 합의를 요구했다. 그러자 피해자는 지난 1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혐의로 전 씨를 추가 고소했다. 검찰은 1차, 2차 고소 사건을 병합하고 지난 2월 전 씨를 ▲촬영물 이용 협박 ▲불법 촬영 ▲스토킹 혐의로 기소했다. 전 씨는 기소 당일 오후 서울교통공사의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집 주소 ▲근무지 ▲근무 일정을 조회했다.

이후 전 씨는 선고 하루 전날인 지난달 14일 9시경 피해자의 근무지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한 시간가량 대기하다 순찰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자는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구멍 뚫린 법망

 

현재 스토킹 범죄에 대한 대처는 작년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에 기초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여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현행법이 스토킹 발생 이후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부분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스토킹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형사소추가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합의를 요구하며 2차 범행을 저지르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곤 한다. 이번 신당역 살인사건에서 피해자가 전 씨를 스토킹으로 고소하자 전 씨가 피해자에게 20여 차례 메시지를 보내며 합의를 강요한 이유다.

법원의 사법처리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작년 피해자가 불법 촬영물 유포 협박 혐의로 전 씨를 고소하자 경찰은 전 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 또한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서부지법은 영장을 기각했다. 전 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올해 피해자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전 씨를 추가 고소했을 때는 구속영장 신청 자체가 없었다. 앞선 고소 때 법원의 기각 사유에 해당했던 요소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의 안전조치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2차 고소 당시 피해자의 상황이 스토킹 대응체계 3단계 중 2단계인 위기 단계에 준한다고 판단했음에도 위험경보 판단 회의를 실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피해자는 전 씨를 작년 10월 처음 고소했을 당시 112 시스템상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된 게 전부였다. 안전조치 대상자가 되면 경찰이 제공하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시스템상 관리를 받는다. 이는 전 씨의 위해 시도가 없고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년 11월에 종료됐다.

하지만 조치가 종료되지 않았더라도 스마트워치 착용은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19일 KBS1 라디오에서 “스마트워치를 아무리 줘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5분 안에 여성이 사망하지 않냐”며 스마트워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뒤늦게 법안 개정에 나선 정치권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정부의 대응을 질타했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를 살릴 4번의 기회를 사법당국에서 놓쳤다”며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나 가해자 구금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역시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후에도 가해자가 지속해서 문자를 했는데 경찰에서 영장조차 청구하지 않았다”며 미흡한 대응을 지적했다.
가해자의 전 직장이었던 서울교통공사에도 비판이 잇따랐다. 이미 직위해제된 가해자가 피해자의 근무지를 파악하기 위해 회사 내부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적절한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 또한 스토킹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 했다.

정부와 각 정당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앞서 논란이 된 반의사불벌죄를 두고 국민의힘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 중임을 밝혔다.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하여 해당 내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포함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검토 중에 있다. 한편 정의당은 근본적 대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스토킹 범죄 친고죄 폐지와 피해자 보호 및 신변안전 등을 강조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정 사항이 기존의 법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작년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가해자의 재범이 우려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는 피해자 접근 금지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법 개정은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과잉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법률 개정안보다는 사법기관에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중 형량·피해자 보호에 초점 맞춘 해외 스토킹 법안

스토킹 범죄가 일찍부터 법제화된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토킹 범죄에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처벌하고 있다. 그중 영국은 스토킹으로 최대 징역 10년 형을 선고할 수 있어 한국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형량을 부과할 수 있다. 미성년자 대상 스토킹에 대한 가중처벌이 없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피해자가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경우, 미국은 18세 미만일 때 가해자를 가중 처벌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95년 여성 폭력 담당 기관(이하 OVW)을 설치해 스토킹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그중 하나는 피해자가 스토킹 사건 기록표를 작성하도록 해 추후 스토킹 피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OVW는 지역사회 연계 협조를 통해 ▲관련 기관의 정보 공유 ▲스토킹 피해의 조기 파악 및 신속한 개입 ▲역할 분담 및 상호 지원 방안에 대한 협업 매뉴얼 제작을 담당한다. 피해자 지원책과 사회 안전망 구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건강한 사회를 위해

신당역 살인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와 함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더불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및 지원을 통해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야 하는 형법의 특성상 모든 범죄를 완벽히 방지하는 법을 제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과 같이 법망을 벗어나는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법률 재개정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법망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 구조의 확립도 중요하다. 더욱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신재용·김은서·김채현·조유솔 기자
202115004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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