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숫자보다 중요한 가치

2024학년도 수능이 수일 내로 다가왔다. 수능은 단순히 대학 입시를 위한 관문을 넘어 향후 진로 선택과 밀접히 연관되므로 그 무게가 상당하다. 최근 학생들의 희망 진로는 인문계열의 경우 로스쿨, 이공계열은 의과대학(이하 의대)으로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하는 추세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오던 여권이 이례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의사 부족 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지만 민심잡기용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The HOANS에서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을 짚어보고 그 유효성 및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짚어봤다.

증원을 통한 목표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는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다. 응급실 외상 환자를 전문으로 다루는 외상 전문의와 같은 필수 진료 의사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태 등이 여론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증원을 통해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지역 의료 활성화가 나온다. 지역인구 감소로 지역 필수의료의 악화가 가속되며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중이다. 또한 거대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설립이 경쟁 구도로 전락하면서 지방의 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 필요한 곳에 보건의료 인력을 충원해서 지역 간 불균등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늘 내일 일이 아닌 의대 증원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정책이 논의된 것은 이번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마지막 정원 확대인 2006년 이후로 오랜 시기에 걸쳐 여러 방안이 모색됐다. 국내 의대 정원이 연간 3,058명으로 고정된 이후 18년간 변화는 없었다.

전 정권에서도 증원을 추진하다 실패한 바 있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400명씩 의대 정원을 증원하여 총 4,000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 양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파업과 의대생 국가고시 거부 등의 반발 때문에 추진 논의를 중단했다.

지난달 19일 윤석열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올해 초부터 의료체와 협의체를 꾸려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해 왔지만 대통령을 통해 직접적으로 추진 의향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아직 그 확대 규모에 대해서는 미정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논의를 여야 모두 찬성 중이라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권 시기부터 증원을 추진해 왔으나 윤 정부가 최근 들어 갑작스레 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서다. 그러나 이러한 여당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는 내년 총선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중이다.

 

말만 나온 채 답 없는 증원 논의

 

의대 쏠림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달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의대생의 인원을 얼마만큼, 몇 년에 걸쳐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도 제시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300~400명가량의 증원이 예상됐으나 최근에는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증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실제 정원이 확대되는 데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은 보건복지부에서 구체적 규모를 확정한 이후 교육부와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정원이 늘어난다면 대학별 할당할 의사의 수와 양성한 전공의에 대한 관리 차원의 논의도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국립대학병원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의대 신설에 대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대학 졸업생이 지역의사가 된다면 지방보건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실제 전국 40개 의대 평균 정원 76.5명이지만 17곳은 정원이 50명이 되지 않아 인원이 불균등하게 배분돼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할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부족해 보이는 시점이다.

 

숫자만 늘리는 인력 확충?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측이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난·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 해결을 이유로 드는 것과 달리 의대 정원 확대가 총선 득표율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과 연관돼 있어서 최근 몇 년간의 의대 쏠림 현상과의 상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의대 진학에 대한 과도한 수요와 경쟁을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분별한 증원 확대가 이런 문제들의 적절한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측은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법조계의 변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로스쿨 도입 이후 법조인의 수는 증가세를 보였으나 판검사 등과 같은 고위법조인의 수는 늘지 않았고 대신 변호사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2009년 1만 명 남짓에 불과한 변호사 등록자 수는 2023년 현재 3만 명으로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법조시장의 경쟁 구조 심화의 여파로 변호사 급여도 하향 평준화됐다. 또한 법률사무소의 ‘서초·강남’ 집중 현상이 심해져 지역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변호사업계는 법조시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신규 법조인의 업무 영역 확대 없이 무분별하게 수만 늘려왔기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토대로 의대 쏠림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휩쓸려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지역 의료 격차 완화와 필수 의료 인력난 해결에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의대 쏠림 현상과 의대 내 인기과 쏠림 현상의 심화에 대한 우려다. 단순 인력 증원은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없고 도리어 의대에 대한 수요를 과도하게 집중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대 진학 후에도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 치우쳐 위치한 인기과인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에 대한 편중만 심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쏠림 현상과 이러한 과도한 수요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정원 확대에 앞서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인프라 구축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병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은 보건복지부와의 포럼 자리에서 “증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적합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응급의학 ▲외상 ▲중증 등 필수 의료 분야에는 고위험군 환자가 많아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의료행위의 과도한 형벌화가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요인으로 작용하니 인력 확충을 위해서는 정원 확대보다도 필수의료지원법 개정과 근무요건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정주 여건 개선이다. 정부는 정원 확대와 함께 지방자치 의대와 지역의사제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의 비슷한 시도를 보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일본은 1972년부터 자치의과대학 및 지역의료 구제 방안을 수립해 왔는데, 그에 따른 의료 인력의 지방 분산의 효과는 미미했다. 이와 관련해 하시모토 히데키 도쿄대 의대 보건정책교수는 “의사 지역 편재 현상은 여전히 존재하며 지역에 종사할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의료 노동의 선택 자유를 심각히 침해한다며 소송도 제기가 됐다”고 밝혔다. 대신 과잉지역·과소지역의 유동적 의료 인력 배치를 위해선 정주 여건 개선이 우선이라며 대안을 내놨다. 지방 인프라 구축과 지역의사의 커리어 지원 방안 등이 같이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에 적합한 톱니바퀴

 

대한민국은 인구 1천 명당 평균 임상 의사가 2.6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 드러났듯이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확충은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민심몰이용 정책으로 정원을 확대한다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 내에서의 구조적 문제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 공급이 아닌 인기과 쏠림 현상과 지역 근무 기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먼저다. 정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의료계와 협의하여 사태에 대응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임재원 기자

kb1115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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