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농가 현실,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농촌에 대한 2021년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이 국가 경제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농업에 대한 기대치와 중요성과는 별개로 농업의 현실은 암울하다. 쌀농사 추수를 마치는 시기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자 지정된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The HOANS가 취재를 진행했다. 농업의 결실을 기쁘게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농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녹록지 않은 농민 현실

 

올해 상반기에 통계청이 발표한 ‘2022 농림어업조사 결과’에는 고령에 따른 농업 포기 등으로 인해 농가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 농가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9.8%로 절반에 육박했다.

도농 소득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농업소득은 연평균 1,000만 원을 밑돌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59%에 그치는 수치로, 농촌 연 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보다 3,200만 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농업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71.9%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여 년 만에 12%P가 하락한 것이다.

자연재해는 농가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올여름은 집중 호우로 농지를 둘러싼 둑이 무너지거나 나무가 부러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7월 호우에 따른 농작물 피해는 전국적으로 침수 2만 6천893.8㏊‧낙과 39.7㏊를 합친 2만 6천933.5㏊로 약 8천만 평에 달했다. 유실 매몰 기준으로 면적을 계산한 농경지 피해도 180.6㏊, 약 54만 평으로 집계돼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인건비 및 비룟값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농민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사일에 한숨만 쉴 뿐이다. 전남 화순에서 26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갑진 씨는 지난 7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끝없이 오르는 물가와 인건비에 생활조차 힘들어 올해는 외국인 노동자조차 고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어려운 경제적 사정을 설명했다. 또한 “3년째 냉해와 장맛비로 제대로 된 농사를 짓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장마 폭우까지 내려 농사를 망쳐버리다니 하늘도 무심하다”며 현재 상황이 ‘엎친 데 덮친 격’임을 드러냈다.

지난달 1일 8개 농민단체 연합인 ‘국민과함께하는 농민의길’(이하 농민의길)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1.11 전국농민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농민의길은 “20년 만에 ▲가장 낮은 농업소득 ▲폭등한 농업 생산비 ▲추락하는 농산물 가격 ▲연이은 자연재해로 농민들의 고통은 깊어졌다”며 농심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갈 길 먼 정부 정책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이라는 구호와 함께 ‘공익직불금 2배 확대’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공익직불금은 농업 활동을 통해 ▲식품안전 ▲환경보전 ▲농촌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도록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2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예산 확보 방안은 발표되지 않았다. 2027년까지 2배 예산을 달성하려면 예산이 매년 5,000억 원 이상 확대돼야 하지만 농업인의 올해 직불금 전체 예산은 작년에 비해 약 3,285억 원 늘어났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직불제 확대 개편이 ‘말 잔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집행계획과 예산편성이 임기 전반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피폐해진 농촌 경제와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공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농민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농민수당은 2018년 전남에서 도입돼 전국 곳곳에서 시행되는 중이다. 그러나 지급 금액과 범위가 지자체별로 통일돼 있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방 재정으로써는 사실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가 공익형 직불금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일렀다.

농작물 재해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피해 농민들에 대한 재해보험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요구한 ‘2022년 농작물 재해보험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원예시설과 버섯을 제외한 농작물 재해로 인한 손해액 중 자기부담금 비율은 약 43.6%에 이른다. 이는 가축 재해보험의 자기부담금 비율인 11.5%와 무려 4배가량 차이 나는 수치다. 잇따르는 농작물 피해에 실질적인 보상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정부의 발전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스마트농업 보급률은 농업 생산의 30%로 확대될 예정이다. 전 정권 시절부터 ▲전북 김제 ▲전남 고흥 ▲경북 상주 ▲경남 밀양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해 청년들을 지원했지만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할 수 없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지난해부터 농식품부는 충북 제천 등 9개소에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을 추가로 조성 중이다. 다만 현재까지 완공된 곳이 없어 청년 농업인 3만 명 육성의 목표 아래 형평성을 갖춘 스마트팜 보급이 이행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 농가에 간절한 것은

 

당선 당시부터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던 것과 다르게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임영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장은 “전 정부 및 윤석열 정부의 발전계획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과거 정부들의 정책을 답습하는 방식으로 피상적인 정책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찾는 접근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농가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을 내놔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달 홍천군은 농작업 영농대행을 위한 ‘청년e그린협동조합’을 설립해 수확기에 일손이 부족한 고령 농업인에게 20~40대의 청년 농업인을 소개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고령 농업인은 온라인을 통해 쉽게 신청할 수 있고 청년 농업인에게는 새로운 수입원이 돼 농민들의 반응이 좋다. 영농 대행 비용은 3.3㎡에 500원인데, 절반은 홍천군이 지원해 금전적 부담도 적은 편이다.

거제시는 지난 4월 거제시 농작물을 농부가 직접 판매하는 ‘로아팜@농부시장’(이하 로아팜@)을 열었다. 로아팜@은 판로확보가 필요한 농가에 기회를 마련하는 커뮤니티 시장이다. 유통단계가 단축돼 각종 수수료가 붙지 않은 상태로 농작물을 판매할 수 있다. 또한 관광객의 방문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보탬이 된다. 이처럼 거창한 농업 발전 정책보다는 농업인의 요구를 반영하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당장 필요해 보인다.

 

농업인이 웃는 농업인의 날을 바라며

 

식량안보와 직결된 농업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어두운 농가 현실을 다시 밝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더 나은 농업 환경을 위한 공동체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농업인들과 국민들이 함께 웃는 농업인의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현‧박예나‧정지윤 기자

bem236@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