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3월의 인물,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신문사 The HOANS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주년을 맞아 본교 출신 언론인으로, ‘노동 OTL 연재기획’ 등의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짚어낸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재학 중 고대문화 편집장을 맡기도 한 안 교수는 대학 언론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The HOANS 독자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본교 사회학과 91학번으로, 1997년 한겨레에 입사했고 기자 생활 22년간 ▲사건팀장 ▲탐사보도팀장 ▲한겨레21 편집장 등을 맡았다. 2021년 3월부터는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며 본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와 언론학 박사를 했다. 본교에서 평생 공부한 셈이다.

  • 학창 시절이 궁금하다.

입학하자마자 1991년 봄 투쟁을 겪었다. 전국 곳곳에서 많은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자가 시위 도중 경찰 폭력으로 사망하거나 그것에 항의해 자살했다. 입학 후 수업은 제대로 안 듣고 시위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혼란스러워서 공부를 제대로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1년 여름방학 때 교지 편집실에 들어갔다. 그때 대학 언론에 발을 들였고 나중에는 고대문화 편집장까지 했다. 당시에 모든 학내 언론이 속해 있던 고대언론출판협의회에서 각 대학 매체의 편집장들과 이런저런 논의와 사업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 기자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화나 보람을 느꼈던 일이 있다면.

과거에는 출입처 제도를 중심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관행에 대한 대안이 없을지 고민하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접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이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사건 ▲사람 ▲배경 등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사람에게 집중해서 구조를 드러내는 기사이고, 심층 탐사 보도와도 연결된다. 영미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한국에 소개하고 내가 쓰는 기사 혹은 후배들과 함께 쓰는 기사에 이를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 덕분에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지난 10여 년 사이에 많이 확산됐다. 물론 나 혼자 한 일은 아니고, 여러 학자나 기자 중 한 사람으로서 조금 기여했다.

  • 2009노동 OTL 연재기획기사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지.

지금은 ▲불안정 노동 ▲비정규직 노동 ▲최저임금 등의 노동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후반은 비정규 노동이라는 말이 이제 막 등장해 공론화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노동 OTL 연재기획’이 불안정 노동 문제를 의제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해당 문제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는 점을 알리는 여러 계기 중 하나이긴 했다.

또한 ‘노동 OTL 연재기획’은 다들 한국이 굉장히 발전했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경제적 발전 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며 살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 르포르타주였다. 일종의 참여 관찰을 적용한 잠입 취재 방법을 활용했다. 그 이후로 빈곤·노동 현장에 기자들이 잠입 취재하는 일이 많아졌다. 잠입 취재가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공적인 사안을 다루는 하나의 방법으로 조금씩 번진 듯하다.

  • 취재 및 기사 작성 과정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기자가 된 후에도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10년 정도 기자 생활을 하고 ‘노동 OTL 연재기획’을 포함한 노동·빈곤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현장에 가고 당사자와 밀착해 취재하다 보면 생각보다 현실이 복잡하고 중층적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노숙자를 취재한다면 기자들은 노숙자들이 힘들게 살고 그들이 불행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만나 보면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행복하다’가 무슨 뜻인지 기자가 더 밀착해서 취재해야 그 말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더 파고들고 알아보고 확인해야 한다. 나의 취재가 깊고 넓은지, 또 나의 기사가 그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 세명 대학언론상 심사위원을 맡고, 대학언론인 컨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등 대학 언론과 관련된 일도 하고 있다. 대학 언론 관련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대학 언론이야말로 정치적·상업적 압력이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세상의 다양한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언론이다. 대학 언론이 건강하게 활성화된다면 더 많은 대학생이 여러 대학 언론을 통해 이 세상을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사회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경험과 공부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원 기관처럼 변하며 학생들도 압력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학 언론에서 하는 활동이 학생들에게 가욋일, 힘든 일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대학 당국도 대학 언론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키우는 것이 대학 전체의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겠다는 대학 언론이 있으면 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조금씩 도움을 주고 싶다.

  • 대학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글로컬리즘과 하이퍼 로컬리즘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글로컬리즘은 인류 공통의 문제를 지역 커뮤니티와 대학에 투영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다. 기후 위기, 전쟁 등의 주제가 대표적인 예시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보도하는 것은 기성 언론의 일이고 그 문제와 관련해 대학과 대학을 둘러싼 지역의 시민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도하는 것이 대학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결국 대학 언론은 대학생만 보는 게 아니라 대학생, 대학원생, 교직원을 물론 지역 주민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매체여야 한다.

하이퍼 로컬리즘은 지역 안에서 중요한 혹은 화제가 될 만한 사람이나 사안을 다루는 것이다. 예컨대 정문 앞에서 30년간 영업했던 가게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주류 언론에서는 보도하기에 곤란하지만 지역민·대학생 입장에서는 중요한 이슈일 수 있다. 지역에서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이슈를 발굴해서 보도하는 것도 대학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 좋은 기사가 탄생하려면 기자의 글쓰기 실력도 뒷받침돼야 할 듯하다. 어떻게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지 묻는 학생들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지.

글쓰기의 근본 문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쓸 것인가다.

치열하게 취재해서 얻은 정보와 사실이 풍부할 때 이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다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돈하고 압축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정돈하고 압축하는 방법부터 배우려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련된 정보를 축적하는 과정을 거치면 글은 따라오게 돼 있다. 또 좋은 기사와 좋은 글을 열심히 찾아 읽어야 한다.

  • 언론인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저널리스트는 언론에 대한 불신 이야기가 오가는 환경에서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저널리스트를 꿈꾼다면 어떤 형태이건 대학 언론에서 활동하길 권한다. 대학 언론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저널리스트가 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활동하게 되면 1년 이상, 가급적 2년을 채우면 좋다. 6개월 정도 잠깐 있어 보는 것만으로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양과 경험을 쌓기에 부족하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면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으로 오라. 내게 언제든 연락하면 진로·진학 상담을 해 드릴 수 있다.

 

정지윤·권예진 기자

alwayselois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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