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사회정의와 상징입법, 그 함정 속으로

근래에 사람들의 분개를 사는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아동 성폭력 범죄,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인사건, 고위공직자의 뇌물 수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발언 등 국민 정의감정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사건이 신문 정치·사회면을 뜨겁게 채웠다. 이와 같은 사건들에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청와대 국민 청원 등을 통해 국가에게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국회와 정부는 각종 특별법 제정이나 법정형 상향 등의 입법을 통해 국민의 정의실현 요구를 관철해 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법이 과연 실제 사회정의 실현에 효과적인 방안일지는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국내 다수 형사법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특별법이 매우 많은 나라에 속한다. 특히 형사상의 특별형법은 그야말로 난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별형법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는데 여기에 민법, 행정법 등 다른 법 영역에서의 형사제재를 추가로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과잉범죄화의 수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사상의 특별법은 ▲상징입법 ▲형벌불균형 ▲중형주의 사고 ▲중복·유사 규정 ▲미미한 실제 적용 등이 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례로 대표적인 형량 가중적 형사특별법인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처법)’을 살펴보면, 폭처법은 제정 당시의 폭력적인 사회분위기와 군부정권에 적대적인 민심 안정을 위한 보여주기식 입법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폭처법의 구성요건은 기존 형법의 구성요건과 거의 동일한데, 이는 기존 형법으로 규정이 가능한 사안을 별도로 특별법으로 규정해 법의 해석과 적용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같은 사안이라도 어떤 법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형량이 바뀔 수 있으므로 기소권자의 자의가 개입되는 형벌불균형의 문제도 제기된다. 다른 예시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이미 형법에 범죄로 규정돼 있거나 지나치게 모호해 처벌의 범주를 분명하게 할 수 없는 조항들로 대부분이 이뤄져 있다. 이런 규정 역시 사회의 요구에 따른 보여주기식 상징입법으로서, 입법 이후부터 이 규정을 적용한 판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입법 작용에는 대부분 도구적 기능과 상징적 기능이 혼재하고 있다. 도구적 기능은 실질적으로 입법필요성에 따른 효과를 실현시킬 목적으로서 법률이 선언되는 작용을 말한다. 상징적 기능은 입법이 사회구성원들의 감정이나 가치관, 의식 등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말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상징입법 측면에서 비판받는 수많은 특별법들은 도구적 기능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상징적 기능에 압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상징입법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국회와 정부가 국민적 관심이 민감하고 격렬하게 나타나는 특정 사안을 두고 입법필요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그저 사회적 우려를 피상적으로 덮기에만 급급한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즉 일시적인 이슈에 대해 오로지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즉흥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렇게 양산된 특별법들은 시간이 지나 해당 사안이 기억에서 사라지면 일반인에서부터 법률가, 사법기관, 심지어는 입법자 자신까지도 전혀 주목하지 않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남게 된다. 즉 이런 상징입법은 현실에 대한 실효성이나 적합성이 거의 없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국민의 본래 요구나 입법목적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범죄나 사회문제에 대해 여론이 뜨거워지고 국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고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한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대책은 국민의 요구에 대한 실질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이 형사사법에 거는 기대를 저버림과 동시에 법치국가원칙에도 어긋나는 행태이다. 입법자나 정책입안자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합리적이고 목적지향적으로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심을 찌르지 못하는 말일진대 차라리 입 밖에 내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채근담의 격언이 다시금 떠오르는 바이다.

이풍환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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