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죽음으로 내몬 해병대… 반복되는 군 사망사고

10월 1일은 국군의 날로, 대한민국 국군의 발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군 장병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는 매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The HOANS가 수해 복구 현장에서 순직한 채 상병 사건과 함께 군 장병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 군 인권 실태를 살펴봤다.

 

“예방할 수 있는 일을 왜 항상 일이 터진 뒤에야 뒷수습만 하느냐.” 지난 7월 수해 현장 복구 작업 중 숨진 해병대원 채수근 상병의 어머니 하 모 씨가 해병대 관계자에게 토로한 말이다.

지난 7월 15일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본 경북 예천군 지역의 현장 복구 및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해병대 1사단이 투입됐다.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해병대원 채수근 일병(당시 일병)은 내성천에서 급류에 떠밀려 실종됐다. 이에 해병대는 민간인 수색 작업을 중단하고 채 일병 구조에 주력했으나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해병대는 채 일병을 상병으로 추서했고 정부에서도 유감을 표명하며 보국훈장 광복장을 서훈했다. 사고 이후 해병대 측은 “호우피해 복구 작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병대원의 명복을 빌고 유족 여러분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채 상병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의 많은 문제점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

 

채 상병과 동료 장병들이 수색하던 내성천의 유속은 매우 빨랐다.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는 상륙돌격장갑차(KAAV)까지 동원됐지만, 이 장갑차도 빠른 유속에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수색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이에 따라 군 지휘부가 사전에 기상 조건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소방대원에게는 ▲헬멧 ▲안전로프 ▲구명조끼 등 최소한의 안전 장구가 주어졌으나 군 장병에게 보급된 것은 ▲삽 ▲갈퀴 ▲고무장갑뿐이었다. 채 상병을 포함한 해병대원들은 ‘인간 띠’를 만들어 수색했다. 그러던 중 돌연 하천 바닥이 무너지면서 해병대원 3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이 중 2명은 자력으로 나오거나 구조됐지만 단 한 사람, 채 상병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 소식을 접한 채 상병의 아버지는 “구명조끼를 왜 안 입히냐,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냐?”며 호소했다.

JTBC 뉴스룸에서는 지난달 5일 수색 작전 현장을 지휘한 대대장 대화방을 입수해 공개했다. 그 내용에는 ‘사단장이 엄청 화났다’고 전하며 여러 자세한 지시를 한 정황이 담겼다. ‘포병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질책부터 ‘수색 작전을 하는 장병들은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바둑판식 수색을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포함됐다.

 

재난 현장 = 군대 투입?

 

그동안 재난 상황 시에는 군부대가 동원돼 대민 지원을 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이번 수해 현장에도 해병대가 투입돼 현장 복구 및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게다가 올여름 집중 호우 기간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방부에 직접 군부대를 적극적으로 동원해달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미국·중국 등에서도 재난이 발생하면 군부대가 나서 대민 지원과 복구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군 장병들은 대부분 재해 복구나 관련 작업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인력이다. 게다가 재해 현장에서는 안전이 온전히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최소한의 안전 장비 없이 작업을 펼치는 장병들은 더욱 위험하다. 채 상병도 포병이어서 수영이나 구조 훈련을 받은 바 없지만, 이번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어쩌다가 K-노예까지

 

2020년 국방홍보원이 수해 복구 홍보를 위해 게재한 포스터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문제가 된 지점은 유명 트로트 곡을 패러디한 ‘수해 복구할 땐 나를 불러줘 어디든 달려갈게~’라는 문구였다. 이를 접한 누리꾼은 ‘군인이 K-노예냐’, ‘국민 머슴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등의 반응을 보이며 분노했다.

군 장병을 투입하면 국가 입장에서는 전문 구조 인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을 훨씬 절감할 수 있다. 대민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장병들을 수해 현장 복구 작업에 배치한다면 추가적인 인건비 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인 이점 때문에 국가는 군 장병을 값싼 노동력 혹은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채 상병 사건도 군인들에게 그 흔한 구명조끼 하나 제공하지 않아 일어난 비극이었다.

채 상병 사건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마스크 대란이 터졌을 당시 급증한 수요를 메꾸기 위해 마스크 공장에 군 장병이 동원되기도 했다. 국방부에서는 이것이 대민 지원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수해복구와 달리 영리성을 띠는 마스크 사설 업체에 군을 동원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채 상병처럼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방역을 위해 전문 인력이 아닌 군 장병이 투입되기도 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거나 많은 이들이 꺼리는 작업에 투입되는 것은 결국 군 장병이 되는 것이다. 상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군의 구조상 군 장병은 어떤 상황의 현장이라도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높으신 분한테는 중요한 이미지

 

국가 차원에서 수해 복구를 위해 군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군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장병들을 재해 현장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에 군 수뇌부가 군에 대한 긍정적인 대외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대민 지원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태풍 힌남노 피해 현장에도 해병대 장갑차가 투입돼 민간인을 구조했다. 일각에서는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해병대가 ‘국민과 함께하는 국군’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채 상병은 군의 이미지 챙기기의 피해자였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채 상병이 속해있는 중대 대화방에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언론을 의식한 듯 ‘웃는 표정이 안 나오게 할 것’ ‘눈에 띌 수 있도록 적색 티 입고 작업하라’라는 지시가 담겨있었다. 서 의원은 “사단장이라면 ▲구명조끼는 입혔는지 ▲군화를 신고 수색하는지 ▲로프로 서로의 몸을 묶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임 사단장을 비판했다. 이에 임 사단장이 해병대 마크가 가려져 잘 노출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구명조끼를 금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람 잡는 해병대

 

흔히 해병대를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6·25전쟁에서 미국의 한 종군 기자가 우리 해병대의 전투력을 보고 붙인 칭호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해병대는 다른 군보다 맹렬한 전투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귀신 잡는 해병대원이라 해서 모든 일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수해 현장에 투입되는 것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 군이 나서 군 장병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러 입대한 것이지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 위해 입대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해병대는 끈끈한 전우애와 연대감으로 잘 알려진 조직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에서 해병대 특유의 전우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병대의 이미지를 위해 장병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도리어 그 이미지를 ‘사람 잡는 해병대’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병대원이 위험한 상황에서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아직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압 의혹 등 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순직한 채 상병과 그 유가족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

 

정상우·오정태·유성규 기자

jungsw0603@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