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땅인지 내땅인지… 무너져버린 공기업의 신뢰

‘LH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다루는 사안이 거시 경제는 물론 개개인의 미시적 삶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부동산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The HOANS에서 LH 사태의 전말과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공무원의 이해충돌 문제에 대해 알아봤다.

 

사회 전반을 뒤흔든 LH 사태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공동으로 연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두 단체는 LH 임직원 10여 명이 3기 신도시 경기 광명·시흥 지구에 100억 원대의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원 공익 감사 청구 계획을 밝혔다. 해당 주장이 사실일 경우 이는 관련 공무원이 본인의 직무를 남용해 법과 행정의 기본 원리인 수직적 형평성과 공정성을 해친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참여연대와 민변의 공익감사 청구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자 정부는 즉각 반응했다. 기자회견 당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산하기관장 간담회에서 LH 투기 의혹을 언급하며 청렴도 제고를 강조했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투기를 집값 불안정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과 맞물려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 리얼미터, 한국갤럽 등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지지율 조사에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이번 LH 사태는 수목보상금을 겨냥한 희귀 품종 나무 심기, 토지 쪼개기 투자, 농지 편·불법 매입 등 다양한 투기 수법과 일부 직원의 온라인상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특히 LH에서 지난달 8일 직원에게 발송한 사태 관련 언론의 취재에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말라는 요지의 공문이 유출되고 일부 직원이 직장인 익명게시판에 조롱성 글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됐다. 일부이기는 하나 현재 상황에 대한 LH 내부의 안일한 분위기와 최근 드러난 사례가 일부 직원의 일탈이 아닌 만연한 관행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LH 사태는 비단 정부 부동산 정책과 LH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낮췄을 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의 재보궐 선거 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했듯 여당 지지율이 사태 발생 이후 전반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본래 앞서가던 여당의 박영선 후보가 사태 발생 이후 박영선-오세훈-안철수 3자 구도에서부터 뒤처졌으며, 오세훈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지고 난 후 지지율 차이가 20%p 가까이 벌어지게 됐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지난달 30일 전세보증금 인상 논란에 휩싸인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을 경질하는 수준까지 번졌다. 투기 논란에서 야당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 시장 후보는 해운대 엘시티 특혜 분양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LH 사태와 함께 엘시티 논란도 조사해야 한다는 공세를 펼치는 상황이다.

 

구멍 난 법안 파고든 LH

 

현재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의 이해충돌 문제다. LH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다량의 비공개 정보, 특히 부동산 개발 예정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정보를 제한 없이 활용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들이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은 물론 부동산 정책의 시행과 시장 질서에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에 현행법상에서도 LH 직원의 직무상 비밀 누설 및 도용 금지와 업무와 관련된 비공개 정보를 이용한 본인 혹은 제3자의 주택·토지 공급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LH 직원의 비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세운다는 농지법은 반복되는 규제 완화로 이미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지 오래다. 박석두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위원은 한국농어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농지법상으로는 서울에 살면서 제주도에다 농지를 사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현행 농지 소유 규제를 농지 전용 규제로 전환해 농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행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의 경우 직무상 비밀 도용 시 형량이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특히 징역 5년 이하 혹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금지 규정은 주택 혹은 토지의 본인 혹은 제3자에 대한 ‘공급’에만 국한된 규정이라 이번 사태에 적용하기 어렵다. 더 많은 형량을 부과할 수 있는 부패방지법과 횡령·배임죄 역시 직무상 관련성을 더욱 엄밀하게 증명해야 한다. 특히 배임죄의 경우 이번 투기가 LH에 끼친 피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등 여러 법적 난관이 산재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후속 조치

 

논란이 심각해지자 관련 기관은 각각 다양한 후속 조치를 들고 나왔다. LH 내부에서는 먼저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직원 14명 중 이미 퇴직한 2명을 제외한 12명을 직무 배제했고 자체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또 지난달 4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모든 직원과 가족의 토지거래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고 신규 사업 추진 시 관련 부서 직원과 가족의 토지 소유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LH가 자체 조사한 기관의 청렴도 조사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고 적발된 사례가 0건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LH 내 자정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H 자체 조사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한 문재인 대통령은 LH 사과문 공표 당일 직접 국무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 국가수사본부가 수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됐으며 ▲국토교통부 ▲LH ▲경기주택도시공사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달 12일 공개된 정부의 1차 전수조사 결과, 국토부와 LH 임직원 14,000여 명 중 의심자로 적발된 것은 7명뿐이었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광명·시흥지구 전체 면적의 0.2%만을 조사해 13명을 적발한 것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적은 수치다. 이에 야당 측에서는 정부 측의 ‘셀프 조사’는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려 할 뿐이라며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국회는 LH 사태의 재발 방지와 관련인 처벌을 위해 법률 개정에 나섰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할 경우 부당 이익의 3배에서 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환수제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벌금을 내더라도 징역형을 면제하지 않고 부당이익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강력한 조항이 포함됐다. 이는 주식시장에 적용되는 자본시장법의 벌칙 조항이 적용된 입법안으로 투기 문제를 금융범죄와 마찬가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형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또한 등장했다. 해당 개정안은 LH와 같이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거나 부동산 정보를 취급하는 공직 유관단체 직원 모두 재산등록을 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산등록 의무자와 이해관계인은 부동산의 취득도 제한받는다. 아예 초단기 투기 전반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보유 기간 1년 미만의 토지의 거래는 전면 규제하는 법안도 포함됐다. 위 정책들은 모두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속전속결로 통과했다. 그러나 최근 투기 의혹에 연루된 LH 직원에게 개정안을 소급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뒷북 법안’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LH 사태의 불씨, 어디까지 퍼질까

 

공공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기관에 큰 위기로 작용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특히 서울 시장과 부산 시장의 공석을 건 4.7 재보궐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이번 사태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맞물려 여당에게 엄청난 타격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에 여당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LH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LH 사태를 기점으로 시행된 전수조사에서 ▲해운대 엘시티 ▲가덕도 신공항 ▲용인 반도체 공장단지 등에서도 공무원들의 불법 토지 투기 의혹이 제기되며 투기 관련 입건자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LH 사태의 불씨가 어디까지 번질지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김원겸·신형목 기자
2020150077@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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